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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박스피에서 오천피로… 코스피 70년의 기록
정채희 한경비즈니스 기자 2026년 03월호
#. 한국 주식시장이 시가총액 기준으로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 증시를 넘어선 날. 김 부장의 기분은 묘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월 28일 집계 자료를 인용해 한국 증시 시가총액이 3조2,500억 달러로 독일(3조2,200억 달러)을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2월엔 그 속도가 가팔라 대만도 제쳤다. 대만과 독일을 누르고, 시가총액 기준 세계 8위다. 한국인에게 독일은 단순한 국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전후 폐허 속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스승이자, 우리가 그토록 닮고 싶어 했던 제조업의 북극성이었다.

이제 제자는 스승을 넘어섰다.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를 버리고 독일이 정체기에 빠진 사이,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벗지 않고 현장을 지킨 한국의 제조업이 마침내 ‘시장의 가치’로 그들을 압도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상장사 12곳 → 2,658곳, 시가총액 150억 원 → 5,181조 원…
외환위기로 277선까지 추락했지만 다시 일어서 

‘오천피’의 시대가 도래했다. 꿈의 숫자 5,000선 안착이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연이은 미국발 AI 쇼크와 내수 공포에도 코스피는 거침이 없었다. 특히 2월 미국발 AI 거품론에 나스닥이 비명을 지르고 전 세계 증시가 ‘블랙 먼데이’ 공포에 파랗게 질린 다음 날에도, 코스피 지수는 단숨에 5,3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전광판에 새겨 넣었다. 외풍에 흔들리던 ‘변방의 천수답 증시’가 글로벌 쇼크를 스스로 이겨내고 뻗어나가는 거대한 엔진이 될 가능성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한국 증시는 굴곡의 여정을 거듭했지만, 위기 때마다 다시 일어나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 뿌리는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 출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상장사는 12개에 불과했다. 정책적 목적으로 상장된 대한증권거래소와 한국연합증권금융 외에 조흥·저축·상업·흥업은행 등 4개 은행과 대한해운공사, 경성방직 등 일반기업 6곳뿐이었다. 전산은커녕 대리인의 손짓과 목소리로 호가를 주고받던 시장이었다. 첫해 거래 규모는 오늘날 화폐 단위로 환산할 때 주식 3억9천만 원에 불과했다. 70년이 흐른 지금, 상장사는 2월 12일 기준 2,658곳(코스피 840곳, 코스닥 1,818곳)으로 늘었다. 개장 첫해 150억 원이었던 시가총액은 같은 날 기준,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시장을 합쳐 5,181조 원을 넘어섰다. 무려 34만 배의 팽창이다.

증시가 기틀을 닦은 건 1962년 「증권거래법」 제정 이후다. 1968년 「자본시장육성에 관한 법률」, 1972년 「기업공개촉진법」이 잇따라 나오며 기업들의 ‘상장 러시’가 이어졌다. 1983년 1월 4일, 코스피는 122.52포인트로 세상에 처음 공표됐다. 1980년 시가총액을 100으로 기준 삼은 지수다. 이후 ‘3저 호황’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의 훈풍을 타고 1989년 3월 31일, 코스피는 사상 첫 1,000 시대를 열며 주식 대중화 시대를 선포했다. 당시 증시의 제왕은 삼성전자가 아니라 한국전력이었다. 1994년 한국전력의 시가총액은 2위였던 포스코의 세 배에 달했다. 그러나 물밑에선 거대한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1992년 외국인에게 시장이 개방됐고,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에 성공했다. 1983년 64K D램 개발로 불씨를 지핀 반도체산업이 드디어 한국의 주력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 증시에서 IT 섹터의 순이익 비중은 7.6%에 불과했으나 1994년과 1995년에는 각각 21.8%, 40.1%로 급증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증시의 가장 뼈아픈 시련이자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1998년 지수가 277선까지 추락하는 공포 속에서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은 종말을 맞았다. 하지만 이 지옥 같은 터널을 통과하며 한국 기업들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생존 근육을 키웠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발판 삼아 비상했고, 2000년 마침내 시가총액 1위에 등극하며 ‘삼성전자 천하’의 서막을 알렸다.
2000년대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엔진이 한국 증시를 밀어 올린 시기였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부상은 조선, 철강, 화학 등 중화학공업의 전성기를 불러왔다. 주식형 펀드 열풍 속에 코스피는 2007년 2,000선을 돌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잠시 주춤했으나, 2010년대 초반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장세로 다시 불을 뿜었다. 

코로나19 시기 3,000 넘은 뒤 비상계엄으로 주저앉았지만
무서운 복원력으로 2025년에만 75.6% 상승률 기록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증시는 다시 한번 체질을 바꿨다. 2016년 사드 사태로 중국 소비주가 꺾인 자리를 ‘알파고(AI)’가 예고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채웠다. 반도체 슈퍼호황이 찾아왔고,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필두로 한 바이오산업이 전통 제조업의 빈자리를 메우며 시가총액 상위권을 재편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였다. 전대미문의 공포에 1,500선까지 급락했던 지수를 끌어올린 건 기관도 외국인도 아닌 ‘동학개미’였다. 수백만 개인 투자자의 유입 속에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라는 새로운 주도주가 탄생했고, 2021년 마침내 코스피 3,000의 벽을 허물었다. 그러나 영광은 짧았다. 인플레이션과 가파른 금리 인상, 그리고 2024년 말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정세 불안이 겹치며 지수는 다시금 2,400선으로 주저앉았다. 시장에는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조롱과 멸시가 쏟아졌고, 한국 증시는 또다시 ‘잃어버린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그러나 한국 증시의 복원력은 무서웠다. 새 정부의 적극적인 증시 부양책과 주주환원정책, 무엇보다 AI라는 거대 패러다임이 한국 제조업의 하드웨어 경쟁력과 결합하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다.

지난해 10월 27일 ‘4,000 시대’를 연 코스피는 지난 1월 22일  5,000선을 넘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75.6%라는 경이로운 상승률을 기록했다. 2월 4일엔 ‘500만 국민주’ 삼성전자가 국내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1천조 원 시대를 열었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22%가 넘는 수치이자, 증시 침체 국면이던 2024년 말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절반에 육박하는 거대한 몸집이다.

1956년 명동의 작은 거래소에서 시작된 한국 증시의 여정은 이제 독일, 대만을 넘어 세계경제의 심장부로 향하고 있다. 70년 전 12개 상장사로 시작한 ‘변방의 시장’은 이제 AI와 반도체, 바이오를 장착한 ‘글로벌 기업들’의 무대가 됐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국의 주도주와 증시가 여전히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고 진단한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식시장 내 포모(FOMO)와 빠른 상승 속도는 버블을 연상시키지만 기업 이익의 상향 흐름과 합리적인 밸류에이션은 아직 정점이 아님을 암시한다”며 “AI 관련 하드웨어 수요에 대한 믿음과 거버넌스 이슈 해결이 이어지는 한 코스피의 우상향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12개월 코스피 목표가는 7,3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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