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다카이치 내각의 여유로운 국회 운영이 가능해지면서 사나에노믹스의 추진력도 강화됐다. 사나에노믹스의 기초는 ‘책임 있는 적극 재정’에 있다. 일시적인 경기조절에 경제 대책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10년 후, 20년 후의 일본경제를 강화하기 위해 미래 성장에 기여할 17개 분야에 자금을 계획적으로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AI·반도체 등 기술혁신 분야, 안보 및 방산 분야, 차세대 원자력 및 희토류 등 주요 광물 분야, 방재·제약·콘텐츠·푸드테크·항만·물류 같은 생활·인프라 분야에 주력할 방침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후계자로 거론됐던 만큼 아베노믹스가 실현하지 못했던 성장전략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17개 전략 분야를 61개 기술로 세분화하고, 그중 27개에 대해 로드맵을 우선 마련할 방침이다. AI, 반도체, 양자, 조선, 그린 철강 등 공급력 강화로 성장과 재정 건전성 개선을 노린다.
전략적 투자로 GDP 끌어올리고 재정적자 비중 낮추려 하지만
관건인 GDP 성장은 관리 어렵고 소비세 인하는 장기 효과 미약
이러한 투자 활성화 전략은 장기불황 과정에서 나타난 투자 부진과 제조업 공동화로 약해진 일본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다카이치 내각은 일본의 반도체산업을 부활시켜 AI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집중할 방침이다. 예를 들면 일본 정부는 2040년까지 자국 내 반도체 매출을 40조 엔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AI·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에 대비해 최첨단 반도체 연구·설계 거점을 구축하고, 산업용지·전력·용수 등 인프라를 지원한다. 대만의 TSMC와 일본의 국책기업인 라피더스 등에 투자를 지원하고 그 주변 지역의 반도체 클러스터화에 주력하면서 7년간 10조 엔 이상 지원할 방침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막대한 재정지출로 투자를 확대해 성장잠재력이 높아지면 세수가 증가하고, 결국 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은 하락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기존의 일본 정부가 재정 운영에서 중시했던 ‘기초재정수지 흑자(지출 비용을 세금으로만 충당)’라는 목표가 다소 후퇴하더라도 경기부양을 우선시할 예정이다. 기초재정수지 흑자화를 단년도 기준으로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겠다는 성향도 보이고 있다.
전략적 투자로 GDP를 끌어올리고 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도 낮추겠다는 사나에노믹스가 성공하려면 결국 ‘GDP 성장’이 관건인데, 이는 정부가 관리하기 어려운 목표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성장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 해외 여건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력은 충분한지, 투자와 혁신의 연계 효과를 높일 수 있는지 등 GDP 성장에는 정부가 관리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요소가 많다. 예를 들면 정부가 국책기업인 라피더스에 투자해 벌어들인 수익이 GDP 상승에 얼마나 기여할지 불확실한 부분이 있고, 정부가 해당 산업에 투자한 결과가 GDP를 끌어올릴 만큼 성공할지도 불투명하다.
다카이치 내각은 이러한 전략 투자뿐만 아니라 민생 지원을 위해 소비세의 부분적인 인하를 촉진할 예정이다. 식료품에 대해 소비세를 2년간 면제하는 방안이 대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미 지난해 다카이치 1기 내각에서 2025년 회계연도 추경과 감세 효과를 포함한 21조3천억 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책정한 데다, 올해에도 122조3천억 엔이라는 사상 최대 예산을 편성했다. 이러한 재정 확대 정책에는 유류 구입비 부담 경감 등 생활 지원 조치도 포함된다. 일본의 경제학계에서는 경기가 완만하게 확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세 인하와 같은 선심성 재정 확대 정책은 장기적으로 효과가 미약하고 재정적자 부담만 확대될 것으로 우려한다. 즉 다카이치 내각의 재정 확대 정책이 결국에는 재정적자를 심화하고 일본 국채시장에서 투자자의 리스크 회피 성향을 유발해 엔저가 지속될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엔저의 지속은 국제유가 상승과 함께 일본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낮추고 소비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금융 완화 정책은 선호하되 ‘지나친’ 엔저는 억제할 전망…
명목성장 확대에 기대 재정적자 축소 기회 놓칠 위험 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와 같이 금융 완화 정책을 선호하고 있으나 일본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인플레이션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일본은행의 완만한 금리 인상 추진과 양적 금융 완화 축소 정책에는 크게 제동을 걸고 있지 않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의 금융 완화 선호 기조는 금융시장에서 어느 정도 기대되는 측면이 있고 엔화 가치의 회복을 억제하는 경향도 있다. 사나에노믹스의 재정 확대 정책에 따른 국채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급격한 금리 인상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면서 경상 GDP가 확대 기조에 있고, 그 결과 인플레이션 택스(Inflation Tax, 정부가 화폐 발행을 늘리면 물가를 올려 화폐를 보유한 모두에게 세금을 부과한 효과가 생겨나는 것)나 실질임금의 감소가 서민층의 생활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 정부로서도 현재의 실질 마이너스 금리 상태를 완화하는 금리 정상화와 금리 소폭 인상으로 지나친 엔저 억제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플레이션 택스에 의한 재정 개선 효과는 일시적이며, 이 기회에 투자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과 부채 관리 강화로 재정 건전성을 개선해 국채금리 상승 압력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사나에노믹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명목성장 확대에 기대 재정적자 축소 기회를 놓칠 위험도 있다. 재정 확대 기대는 국채금리 상승을 초래했으나 이미 10년물 국채금리가 지난해 0%대 후반에서 2%대로 상승했기 때문에 추가 상승 여지는 제한적일 것이다. 올해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2%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17개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 효과는 단기적으로는 불확실하고 실질 GDP 개선까지는 시간이 걸려 재정적자 구조의 획기적 개선에 언제 도움을 줄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이러한 요소와 미국·이란 전쟁의 여파까지 고려하면 올해도 엔저 기조가 지속되기 쉽다. 하지만 최근 150엔대 후반의 엔·달러 환율은 실질실효환율 측면에서 1970년대 수준의 역사적 엔저이며, 이를 뛰어넘는 추가적인 엔저 현상이 올해 더욱 심화될 것이라 예상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다카이치 내각의 재정·통화 정책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줄까. 우선 재정 확대를 통한 전략산업 육성책은 AI,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전략산업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2026년에도 지속될 엔저 기조는 수출경합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원화가 동반 하락하는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거기에 유가 급등, 중동 리스크와 결합돼 원화에 더욱 약세 압력을 가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원화 역시 이미 상당히 약세를 보이고 있어서 추가 하락 폭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