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된 제품을 검증할 수 있는 실증 테스트 환경이 부족해 사업화가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 기업들이 제품 실증 테스트와 전투 시연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에서 관할 부대를 지정해 사격장을 개방하는 등 실증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올해 1월, 대전·충청권 방산 중소기업들이 참여한 방산 전문 협동조합이 전국 최초로 출범했다. 이계광 대전방산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K방산의 호조에도 수출 성과는 대기업에만 집중되고 있다며 이번 협동조합 출범으로 개별 기업의 한계를 넘어 공동생산과 공동개발, 정부 과제 참여, 공공조달 및 수출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산 사업체 성진 테크윈을 오랫동안 운영해 오신 걸로 안다. 사업체 운영만으로도 바쁘실 텐데 협동조합 결성 계기가 궁금하다.
다른 산업에 비해 국방산업은 특수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인데 사업화까지 수년이 소요되는 등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사업을 보면, 이런 산업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다른 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의 예산과 기간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 지원은 많으나 현실과 괴리가 있어 중소기업의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개별 중소기업이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어도 이를 발휘할 기회를 얻기 어려운 구조다. 이런 환경에서 중소기업들이 함께 모여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수익화 등을 추진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모색하게 됐고, 그 결과 협동조합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조합을 결성하게 됐다.
대전이 방산 하기 좋은 도시인가?
그렇다. 대전은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국방 연구개발(R&D)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군 관련 기관과 정부 출연연이 가장 많이 집적돼 있으며, 국방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는 방위사업청도 2028년까지 대전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국방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췄다고 생각한다.
현재 조합원사 현황은 어떤가.
지금은 105개의 회사가 함께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함께 뜻을 모아야 방산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도 커지고 정책 제안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조합원사를 지속적으로 늘려갈 생각이다.
협동조합을 통해 어떤 일들을 해나갈 계획인지.
조합원사들이 보유한 기술과 제품을 상용화할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우선 조합원사들의 핵심 기술을 모아 지역 전략산업과 연계되는 분야를 발굴해 정부 출연연에 맞춤형 R&D 컨소시엄 구성을 제안하려 한다. 또한 출연연들이 이미 확보한 기술을 조합원사들이 이전받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업화 여건을 만들어 볼 예정이다. 아울러 협동조합이 활용할 수 있는 정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적인 방안도 모색하려 한다.
대학과의 협력도 사업 방향의 하나로 꼽았는데.
현재 정부에서 산학협력을 통해 지역 전략산업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정주를 지원하는 ‘라이즈 사업’과 ‘글로컬대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산학협력이 원활하지 않다. 이에 조합 차원에서 대전·충청권 대학과 연계해 인턴십을 확대하고 학생들의 취업까지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려 한다. 또한 성과 관리와 멘토링을 제공하는 체계도 구축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나름의 괜찮은 기술과 환경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고, 기업 입장에서도 이미 회사를 경험해 본 학생들을 채용하기가 용이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산업이 그렇지만 방산도 양극화가 심한데, 어느 수준인가?
상당히 심각하다. 우리나라 방산정책 대부분이 대기업 위주로 추진되는 상황이고, 현 정부 들어 중소기업 지원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과거에는 대기업이 개발부터 제조까지 거의 대부분을 주도해 왔지만, 지금은 중소기업들이 국방 장비 개발의 핵심 영역까지 역할을 확장하는 등 방산 분야 저변을 지탱하고 있다. 중소기업 없이는 우리나라 방산이 유지될 수 없다. 현 상황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
해외시장에 비해 유독 한국의 중소·스타트업이 약한 건가?
그렇지만은 않다. 방산 강대국인 러시아의 경우에도 자국 방산 중소기업들이 무너지며 공급망이 완전히 붕괴됐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중소기업들이 업종을 전환하거나 문을 아예 닫게 돼 방산 공급망이 붕괴될 수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에는 샤프 코호트(SHARPE Cohort)라 불리는 평균 업력 10년의 혁신기업들이 방산시장을 이끌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막강한 자금력에 더해 방산을 뒷받침하는 기술들이 오픈소스로 활용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정책적으로 연방 R&D 예산 일부를 중소기업에 배정하고 있으며, 특히 국방 물자 조달 부문의 연방 예산 중 약 23%나 되는 규모를 중소기업에 배정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중소기업들이 성장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갖췄으나, 국내는 대기업 위주의 구조인 데다 신규 기업들의 진입 장벽도 높다. 설령 진입하더라도 경직된 국방획득 체계 때문에 성장 단계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결과 대부분의 중소·스타트업이 이른바 ‘데스 밸리’를 넘기조차 어려우며 힘든 고비를 넘긴 이후에도 힘들게 각자도생해야 하는 구조다.
국방획득 체계가 경직돼 있다는 게 무슨 뜻인가.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무기·전력지원 체계를 기술적·행정적·경제적 관점에서 획득하는 시스템을 국방획득 체계라 하는데, 이 체계가 유연하지 않다. 과거에는 국방 기술이 민간으로 이전되는 ‘스핀오프(Spin-off)’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민간 기술이 국방으로 유입되는 ‘스핀온(Spin-on)’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현재의 경직된 획득체계가 문제가 되는 거다. 현재는 절차가 복잡하고 획득하기까지 소요 기간이 길어 중소기업 제품이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특히 국내 레퍼런스가 없는 중소기업들은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신뢰 확보가 어려워 수출 확대에도 제약이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군이 중소기업 제품을 운용 전 단계의 테스트용이나 교육용으로라도 소량 구매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때 테스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같은 피드백을 기업에 제공한다면 기술과 장비를 고도화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단순히 기업에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국방에도 AI 기술이 활용되고 있을 텐데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는 어떻게 확보하고 있나.
국방 AI 개발에도 학습을 위한 기본적인 정보와 데이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방’이라는 분야의 폐쇄성으로 관련 데이터가 기업에 충분히 공유되지 않을뿐더러 일부 제공되더라도 대기업에만 제공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중소기업이 아무리 AI 기술을 개발하고 싶어도 제대로 준비할 수가 없다. 현재 미국은 안두릴이나 팔란티어 등 방산 테크기업들이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는 데이터 개방 등으로 성장 기반이 잘 구축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현재 방산 중소기업 지원을 보면 R&D 등 특정 분야에만 치중돼 있다. 이제는 기업이 성장하는 데 어떤 장애요인이 있는지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실질적인 맞춤형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개발된 제품을 검증할 수 있는 실증 테스트 환경이 부족해 사업화가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 전투체계 장비 실증을 위해서는 실탄 사용과 사격장 확보가 필수인데 대기업에서도 자체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일을 중소기업이 어떻게 하겠나. 기업들이 제품 실증 테스트와 전투 시연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에서 관할 부대를 지정해 사격장을 개방하는 등 실증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미국처럼 정부 R&D 예산과 국방 조달의 일정 부분을 중소기업에 배정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야 국내 방산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질 것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무엇보다 정부가 정기적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