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화석연료에 묶어두려 했던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전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붐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사이먼 스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이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국제회의에서 결연한 어조로 한 말이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도 지면을 통해 트럼프를 ‘재생에너지의 영웅’이라고 비꼬았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역설적으로 에너지 자립의 긴급성을 각인시키고, 미국이나 산유국들의 화석연료 지정학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줬기 때문이다.
에너지 위기 때마다 화석연료 수입 다변화로 대응해 온 세계 각국,
이번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전환 논의 심화
호르무즈 해협이 닫혀 있는 동안 되레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지난 5월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에너지 안보에 대한 전 세계적인 요구가 가속화되면서 5년 만에 투자자들이 가장 빠른 속도로 재생에너지 펀드에 몰리는 데다 관련 주식도 급등하고 있다. 또 영국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3월 중국은 68GW 규모의 태양광 장비를 수출했는데 이는 직전 달인 2월에 비해 두 배로 증가한 규모다. 50개국이 넘는 나라들이 중국산 장비를 사들였고, 특히 에너지 타격을 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수요량이 급증했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쟁 이후로 옥상 태양광 장비 수요가 두 배 이상 늘었다. 여기에 더해 네팔에서부터 케냐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전기차 판매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각국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4월 콜롬비아에서 열린 탈화석연료 국제회의에서는 이번 전쟁이 ‘재생에너지 혁명’의 시발점이 될 거라는 확신이 남실댔다. 과연 이번에는 달라질까?
그동안 유가 위기 때마다 재생에너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된 건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1970년대 오일쇼크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꼽을 수 있다. 1973년 중동 산유국의 금수·감산 조치 규모는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5%에 불과했지만, 당시 세계경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침체를 겪어야 했다. 이에 에너지 전환 요구가 빗발쳤다. 풍력, 태양광 연구에 대한 투자가 쏟아지고 자동차 연비 기준이 강화됐다. 하지만 금세 바람이 잦아들었다. 재생에너지 확대 대신 북해 석유,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 다변화로 방향을 틀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다를 바 없었다. 러시아 가스와 화석연료 의존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소수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 미국산 셰일가스로 몰려가면서 당장의 불을 끄는 데 급급했을 뿐이다. 역사의 교훈 따위는 없었다.
이번에는 다른가?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다. 호르무즈 해협 사태가 지리적으로 집중된 화석연료 공급과 운송 경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라는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세계 LNG의 4분의 1과 세계 원유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그 비좁은 병목이 막히자 유조선의 발이 묶이고, 유가가 폭등하며, 인플레이션으로 수많은 나라가 고통받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호르무즈라는 송유관 하나에 세계의 운명이 달린 것은 비합리적인 일이다.
지난 10년간 태양광 발전 비용 90% 감소…
재생에너지 생산 높은 스페인, 우루과이 등 유가 충격 적어
더군다나 전과 달리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용이 화석연료보다 낮아졌다. 지난 10년 동안 태양광 발전 비용은 90%, 육상 풍력 발전 비용은 70%, 배터리 비용은 90% 이상 하락했다.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전 세계 전력 수요 증가율을 넘었다. 이미 화석연료를 대체할 만큼 비용이 저렴해졌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을 경유하며 사람들은 재생에너지를 기후위기에 대한 도덕적 대응이 아니라 지정학적 자산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패러다임 자체가 기후위기 대응에서 에너지 안보로 바뀌게 된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확실히 방패로 기능했다. 상대적으로 이번 전쟁의 유가 충격을 덜 받은 몇몇 나라들이 모범 사례로 회자되는 중이다. 단적으로 유럽의 경우 재생에너지 비중이 적은 남부와 중동부 지역은 에너지 충격을 크게 받았지만, 스칸디나비아 및 이베리아반도 국가들은 충격을 흡수했다. 가령 전력 생산의 56%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 스페인의 전력 가격은 독일과 영국의 절반 수준, 이탈리아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포르투갈 역시 저렴한 전기요금을 유지하고 있다.
파키스탄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후 유가 상승으로 고통받던 시민들이 먼저 각자의 집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서 태양광 혁명이 시작됐다. 그로 인해 전력 구성에서 태양광 비중이 25%까지 상승했고, 지난 2월 기준으로 약 120억 달러 규모의 화석연료 수입 비용을 절감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나라가 선망하는 대상은 우루과이일 것이다. 전력의 98%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이 나라는 2008년에만 하더라도 풍력 발전소를 처음 짓는 처지였다. 2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놀라운 속도로 재생에너지 혁명을 이뤄냈다. 덕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때도 충격을 흡수했다. 뿐만 아니라 코스타리카, 알바니아, 덴마크처럼 압도적으로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 비중이 높은 나라들도 전환 모델로 호명되며 부러움을 사는 중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화석연료는 그 자체로 취약하다. 추출, 거래, 운송 등 끊임없는 하향식 흐름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송유관과 유조선 시스템에 필연적으로 종속되기에 지정학적 갈등과 한 몸으로 묶여 있는 운명이다. 반면에 햇빛은 호르무즈 해협에 가둘 수도 없고, 미사일과 드론 공격에도 아랑곳없다. 지난 3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강조한 것처럼, “재생에너지는 그 어느 때보다 저렴하고, 접근성이 좋으며, 확장성이 뛰어나다. 재생에너지는 봉쇄되거나 무기화될 수 없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의 에너지 위기는 우리에게 실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재생에너지로 도약할 것인가, 화석연료로 다시 후퇴할 것인가.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에너지 종속과 에너지 독립 양단간에 우리의 자리가 결정될 것이다. 단기 이익에 골몰하느라 에너지 전환이 늦어질수록 지정학의 인질이 된 채 지불해야 할 비용은 계속 늘어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점점 심화하는 기후위기 속에서 치러야 할 고통과 비용 또한 당연히 올라가게 된다.
바늘귀 같이 그 좁은 해협으로부터 해상 원유의 70% 이상을 공급받는 나라, 그리하여 이번 전쟁의 최대 피해국이 된 나라, 하지만 전력 생산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고작 10%대인 나라,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해 무수히 말하지만 이번 전쟁을 경유하며 석탄발전소 배출 제한을 슬그머니 해제하는 모순적인 나라. 이렇듯 심각하게 지체됐다. 이제 말은 그만할 때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