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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원의 전환이 아니라 그걸 지탱해 온 사회의 전환이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2026년 06월호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의 김보림 활동가는 지난 2024년 8월, 환경운동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아시아 최초로 기후소송의 승소 판결을 받아 들었다. 헌법재판소가 청소년기후행동이 2020년 제기한 청소년 기후소송을 비롯해 2021년의 시민 기후소송, 2022년의 아기 기후소송과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에 관한 헌법소원을 병합해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인 ‘환경권’을 인정하면서, 정부가 2031~2049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것에 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으며 환경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한 김보림 활동가를 만나 재생에너지 전환과 기후위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어떤 단체인가?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위기라는 문제를 위험으로 인식한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는 단체다. 단체가 처음 출발할 때 구성원 대부분이 청소년이어서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썼다.

환경운동에 관심 가진 계기가 무엇인가?
혜화역 인근에 지구온난화 관련 전시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어릴 적 그곳에 자주 갔는데 북극곰에 눈길이 가더라. ‘북극곰을 위해,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지.’ 하면서 같은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다 2018년을 맞았다. 폭염이 심한 해였다. 그전까지는 개인적인 실천으로 지구환경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폭염으로 새벽에도 집안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걸 보니 감각이 달라졌다. 무섭고 엄마가 걱정됐다. 그러다가 실제로 엄마 또래의 어르신이 주무시는 중에 더위로 뇌가 손상돼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다. 온열 질환은 실외든 실내든 취약한 사람이라면 그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는 걸 알게 됐다. 정부는 폭염 대책이라면서 실내에 머물라고 말하고, 취약계층에 냉방기기를 지원하는 것이 다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걸 찾기 시작했다. 

새삼스럽지만 기후위기를 정의해 본다면.
단순히 탄소배출로 지구 온도가 오르는 문제라기보다 서로 다른 취약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빠른 속도로 위험이 닥치는 문제다. 2100년쯤이면 폭염이 지금보다 9배 더 많아지고 극한 폭염일수도 8.8일에서 70일 이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이런 수치는 그저 재난이 늘고 영향받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비되지 않은 사회에서 그 위험을 온몸으로 버텨내야 하거나 그러지 못하면 죽는, 존엄한 삶이 훼손되는 문제다. 지금도 극한 폭염에 냉방시설이 없는 급식실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던 사람이 죽었다거나 극한 호우로 산사태나 침수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접한다. 앞으론 이런 일들이 훨씬 잦아질 거다. 기후 재난과 죽음은 폭염일수와 비례하는 게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다.

그런 위기의식에서 기후소송을 제기한 건가?
그렇다.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소송은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 모두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닌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활동 초기에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거리에서 목소리를 냈고, 법과 정책을 만드는 의사결정권자들을 만나 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들의 자발적 의지에 기대 막연하게 변화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법의 영역에서 변화를 촉구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결국 기후소송은 국가에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요구한 소송이고,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이 미흡하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받는다는 것을 알린 소송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결정은 어떤 의미였나.
헌법재판소 판결을 듣고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헌법재판소 판결은 아시아 최초로 환경권 보호 의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환경권이 그저 국민이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라는 것을 넘어 생명권이나 안전할 권리처럼 헌법상 기본권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인정된 거다. 한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법제화했지만 2031년에서 2049년까지의 탄소 감축 목표는 정량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시 말해 국가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이번 결정으로 정부가 앞으로 기후정책을 마련할 때 지켜야 할 국민 보호 의무라는 최소한의 선이 그어진 셈이다.

지난 2월 28일이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대체입법 기한이었는데 여전히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탄소를 얼마나 감축해야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지를 헌법재판소가  제시하진 않았다. 이 추상적인 원칙에 관한 합의가 필요한데, 논의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어려운 논의인만큼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를 거쳐서 경로를 제시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 숙의토론에서 초기에 온실가스를 더 많이 감축하는 ‘오목경로’, 전체 기간 동안 비슷하게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선형경로’, 미래에 온실가스를 더 많이 감축하는 ‘볼록경로’가 선택지로 주어졌다. 시민 다수는 더 많이, 더 빨리 탄소 배출을 감축하자는 경로를 택한 상황이다. 법 개정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청소년기후행동이 바라는 탄소감축 계획은?
수치로 표현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시민단체들이 이야기하는 2035년 감축 목표 65% 선에 당연히 동의한다. 65%는 역사적으로 탄소를 배출한 배출량에 따른 책임, 기술 역량, 미래세대에 대한 형평성 등을 고려해 도출한 값이다. 다만 탄소배출이 0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목표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의 위험이 커졌을 때도 지속 가능한가? 위험이 있다고 해도 회복력이 있을까? 사람들은 그 안에서 함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탄소감축을 위해선 에너지 전환 비중이나 속도가 중요하겠다.
에너지 전환에서 가장 안전하고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재생에너지이고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전환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화석연료, 특히 석탄화력발전소는 조기 폐쇄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기본이다. ‘2030년 탈석탄’, ‘2050년 재생에너지 100%’ 같은 구호만 제시한다면 에너지원끼리의 대치와 싸움밖에 안 될 거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제언한다면.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040년까지 탈석탄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는 했다. 그런데 너무 먼 비전과 먼 선언만 있는 것 같다.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늘릴지, 그 결과가 사회적 에너지 전환 속도를 담보할 수 있는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사람들의 에너지 접근성이 떨어지지는 않는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중심으로 생계를 꾸린 사람들과 해당 지역도 함께 전환할 수 있는지, 즉 정의로운 전환 계획이 마련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결국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원의 전환이 아니라 그걸 지탱해 온 사회가 함께 전환하는 것이다. 강원, 충청, 경남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돌리던 사람들은 그 시설을 중심으로 평생 살아왔다. 지역 재정도 발전소에 의존했을 것이다. 이런 삶을 외면한 채 재생에너지로만 전환하는 게 핵심은 아니다. 정부가 이런 질문과 사회 전환에 대한 답까지 제시하면 좋겠다.

안전한 사회를 중요한 가치로 보는 것 같다. 활동가님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세상인가?
안전한 세상이라고 해도 위험은 존재한다. 누적 배출된 온실가스로 기온은 계속 상승할 것이고, 재난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안전한 세상은 이런 재난에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세상이다.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 같은 재난 역시 대비·대응할 수 있었던 것들 아닌가. 이런 인재(人災)가 줄고 폭우나 침수, 산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더 빠르게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회가 안전한 사회다. 지금은 회복과 일상으로의 복귀가 개인의 문제에 가깝다. 여름에 침수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 자원봉사를 가면 곰팡이가 피니까 도배지를 다 뜯어내고 진흙을 퍼낸다. 그 상태에서 개인이 여력이 있으면 이사를 가버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목숨을 잃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하고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간다. 적어도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대응해 주는 것이 안전한 세상 아닐까.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누구든 안전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진 사회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다양한 당사자의 이야기를 모으려 한다. 기후소송도 기후위기에 문제를 느낀 사람들의 목소리가 쌓여서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기후소송 과정에서 「국민참여의견서」를 제출했는데 국민 5,289명 개개인이 기후위기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를 길고 짧은 글로 소개한 자료였다. 활동가 한 명이 아니라 5천 명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우리 사회의 정서처럼 보이더라. 이야기를 모으면 답이 도출되는 것 같다. 그래서 지역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태안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게 되면 지역이 어떻게 전환해야 할지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통 공공성이 약한 울산에 가서는 재난의 위험에서 지역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등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시작 아닌가.
 
정서현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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