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중국은 가격경쟁력 발판으로 한국과 제조기술 격차 더욱 줄여나가고, 구글과 애플은 고유의 운영체제 더욱 공고히 다져 ㆍ사물인터넷 통한 에너지 효율성 향상 40%에 이를 전망, 역사상 가장 큰 산업 변혁 가져올 ‘3차 산업혁명’ 이미 시작돼
지난 수십년간 국내 경제에서 ICT 부문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ICT는 반도체와 휴대폰을 중심으로 수출과 부가가치에서 높은 비중(각각 약 30%, 13%)을 차지하며 경제성장을 견인해 왔고, 초고속인터넷과 이동통신(특히 최근의 LTE)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와 보급률을 자랑하면서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수단이 됐다. 정보통신부 시절 정부 주도의 기술개발과 정보화촉진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MB정부 시기에는 정보통신부가 해체되면서 ICT는 그 자체의 산업적 가치보다는 산업적 활용을 강조해 지식경제부를 중심으로 ICT와 타 산업의 융합정책이 추진된 바 있고, 박근혜정부도 ICT 전담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를 설치해 ICT를 창조경제와 융합 신산업 창출의 주요 수단으로 보고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제도적 장벽에 막혀 뒤처진 ICT 융합, 제2의 위기론까지 등장
하지만 지난 수년간 의료, 금융 등 대표적인 ICT 융합 분야가 제도적 장벽에 막혀 우리 ICT 융합은 외국에 비하면 한참 뒤처져 있다. 더욱이 최근 중국산 저가단말기의 급부상과 애플의 리바운드에 따라 삼성전자 실적이 급속히 악화되는 가운데 2009년에 이은 제2의 국내 ICT 위기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안드로이드 모바일 운영체제를 빌려 제조기술을 기반으로 1차 아이폰 위기를 극복한 바 있으나, 현재 위기상황에는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가격경쟁력은 기본이고 국내와 제조기술 격차를 줄인 데다 소프트웨어 능력까지 갖춘 반면 우리는 구글이나 애플과 같이 고유의 운영체제와 앱·콘텐츠 에코시스템을 갖추기까지는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위기론은 ICT 분야뿐 아니라 기술력을 갖춘 일본 기업들이 엔저를 기반으로 가격경쟁력까지 확보하고 있는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전 산업적 위기 상황에서 모든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꿀 새로운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다름 아닌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다. 아직 연결되지 않은 수백억개의 기기와 사물에 센서와 컴퓨터칩을 부착하고 인터넷에 연결해 데이터를 축적·분석함으로써 생산성 향상과 새롭게 창출되는 사업 기회 규모가 2020년까지 수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3차 산업혁명」과 「한계비용 제로 사회」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지난 두 차례의 산업혁명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이 14% 향상된 반면 신재생 에너지와 스마트 그리드를 기반으로 한 사물인터넷을 통한 에너지 효율성 향상은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역사상 가장 큰 산업적 변혁을 가져올 ‘3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으로 정부의 산업정책적 역할에 소극적이었던 미국, 독일, 영국 등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의 전후방 연관효과, 고용창출효과, 경기 복원력(economic resilience) 등에 주목해 개도국으로 이전(off-shoring)됐던 제조업을 되찾아올(re-shoring)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서 ICT 융합을 통한 자국 제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 많은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사물인터넷을 제4의 산업혁명으로 규정한 ‘Industry 4.0’ 정책을 통해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도 미래창조과학부의 사물인터넷 활성화 정책과 산업통상자원부의 제조업혁신 3.0전략 등을 통해 사물인터넷 육성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제조업 혁신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미래창조과학부는 웨어러블 등 신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생산과정의 고도화(지능화·자동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나 사물인터넷이 기존 산업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것인지, 그 결과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에 닥칠 위협에 대한 인식은 미흡한 것 같다.
데이터를 가치로 연결하고 수익으로 전환하는 비즈니스 모델 필요
그렇다면 사물인터넷은 글로벌 산업지형을 어떻게 바꿀까? 경공업 제품인 신발을 예로 들어보자. 신발 생산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전통적인 방안은 인건비 등 투입물 비용 절감, 공정 효율화·자동화, 디자인 혁신, 새로운 소재·기능 추가 등일 것이다. 그러나 신발에 사물인터넷이 접목되면 업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신발에 사용자의 운동량(걷기, 점프 횟수·높이 등), 신체조건, 위치, 주변 환경 등을 측정하는 센서를 부착한다. 여기서 나오는 정보를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에 전송하고 인터넷에 연결해 여러 신발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하면 사용자 개별적으로 운동·헬스와 관련된 평가와 조언을 제공해 지속적 매출이 발생하는 헬스 정보서비스 사업이 가능해진다. 신발에 진동모터를 달면 GPS와 지도앱을 통해 조깅 경로 안내까지 받을 수 있다. 신발과 연동되는 스마트폰 앱은 제조사가 직접 또는 서드파티(Third Party) 개발자에게 개방된 플랫폼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다. 신발 자체보다 정보에서 더 큰 부가가치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나이키사와 인도의 스타트업인 두체레 테크놀로지스의 최근 실제 사례다.
우리 주력 분야인 자동차산업은 어떨까. 센서와 컴퓨터칩이 엔진, 타이어 등 자동차 각 부품에 부착돼 인터넷으로 상호 간에 그리고 도로상황 정보시스템과 연결되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최적경로 안내, 충돌 방지 및 자동운전까지 가능해지며 주요 부품의 실시간 모니터링과 원격 리콜(업데이트)까지 가능하다. 구글의 무인차,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원격 엔진리콜, 엔진 제조사 롤스로이스의 빅데이터 기반 엔진 예측관리 서비스업 등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애플과 구글이 자동차산업을 지배하는 날」(모모타 겐지 저)은 자동차기업의 경쟁자는 애플(카플레이), 구글(안드로이드)과 같은 IT기업이 되고 있고 자동차산업의 거점이 디트로이트에서 실리콘밸리로 넘어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사물인터넷 세상에서는 개별 제품 하나를 잘 만드는 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고 제품에 센서와 통신 기능을 포함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핵심은 빅데이터와 소프트웨어다. 기술이나 프로그래밍 능력뿐 아니라 데이터를 가치로 연결시키고(value creation) 가치를 수익으로 전환하는(value capture)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서드파티 및 이용자들을 끌어들여 앱을 개발·업데이트하면서 생태계를 조성하는 플랫폼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대부분의 국내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들에도 매우 생소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 상황 인식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고 관련 역량 확보를 위해 많은 논의와 투자가 있어야 한다. 산업혁명은 새로운 기회와 승자를 가져왔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변화하지 않는 기업과 국가는 몰락했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