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GDP성장률 7.1%에 주가와 지가가 유례없이 폭등하고 있었음에도 日중앙은행 출구정책 실시하지 않아 -2000년대 극단적 금융완화정책으로 간신히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으나 2009년 금융위기로 다시 디플레이션에 빠져
장기침체기 일본경제의 특징 중 하나는 금리정책이 무력해지는 유동성함정을 경험한 것과, 그 경험에 바탕해 2000년대 중반에는 급격한 양적완화정책(QE)을 실시해본 것이다. 일본 금리정책의 실패와 일본이 실험한 양적완화정책은 2008년 이후 미국과 유럽의 금융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버블이 정점이던 1989년 5월에서야 금리인상
1985년 9월 플라자합의로 엔화가 급격히 절상돼 수출이 타격을 받자 내수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일본은행은 1986년 1월부터 할인율을 낮추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의 정책금리는 콜금리지만 민간은행의 금리에 대한 규제가 완전히 철폐된 1994년 10월 이전까지는 할인율이 정책금리의 역할을 했다. 1985년에 5%였던 할인율은 1986년 1월 4.5%로 하락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 2월에는 2.5%까지 낮아졌다. 1985년 6.3%였던 GDP성장률이 1986년에 2.8%까지 떨어지면서 취해진 조치였다. 1987년 2분기부터 경기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자 일본은행은 할인율 인상을 검토했으나, 그해 10월 블랙먼데이가 일본의 주식시장에도 충격을 주자 출구정책을 연기하게 된다. 버블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던 1989년 5월이 돼서야 일본은행은 2년 이상 2.5%로 유지해 오던 할인율을 3.25%로 인상했고, 이후 단계적 인상을 거쳐 1990년 8월부터 1991년 6월까지 6%로 유지했다. 1988년의 GDP성장률이 7.1%였고 당시 주가와 지가가 유례없이 폭등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작에 출구정책을 실시하지 않은 것은 일본은행의 뼈아픈 실책이었다.
한편 1989년 마지막 장에서 최고점을 찍었던 주가는 1990년 장이 개장하자마자 하락하기 시작했고, 지가상승이 눈에 띄게 둔화된 1991년 일본금융당국은 금리를 다시 낮추기 시작했다. 콜금리의 경우 1991년 3월의 8.28%를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1994년 6월에는 2.06%까지 떨어졌다. 이후 1994년 3분기에 일시적으로 경기가 회복되면서(GDP성장률 1.9%) 같은 해 12월에는 2.29%까지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1995년 3월 이후 엔화가 급격히 절상되자 콜금리는 다시 큰 폭으로 하락하게 된다. 엔화의 절상으로 인한 경기위축을 염려한 통화당국의 팽창정책으로 콜금리는 1995년 3월의 2.19%에서 4월에는 1.53%로 떨어졌다.
1994년 3분기 이후 통화당국이 콜금리의 상승을 방치한 것은 반년 정도에 불과했으나, 그 반년간의 실수는 일본경제에 작지 않은 타격을 줬다. 1994년 3분기에 GDP성장률이 일시적으로 상승했다고는 하나 이는 그야말로 한시적인 회복에 불과했다. 물가상승률은 오히려 계속 낮아지고 있어 디플레이션으로 진입하고 있었으나, 디플레이션의 폐해를 경험해 보지 못한 당시로서는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광란물가로 기억되는 1970년대 초의 30%에 가까운 인플레이션율과 1980년대 말 버블의 경험은 일본은행을 더욱 보수적으로 만들어, 1994년 3분기에 경기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자 버블 붕괴 후 지속된 금융완화정책의 출구시기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콜금리가 상승하자 이는 일본은행이 긴축정책으로 전환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줌으로써 1995년 엔고 현상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되고 만 것이다. 엔고로 수입증가율이 수출증가율을 압도하자 환율은 1995년 9월 달러당 100엔선을 회복했지만, 일시적으로 회복되다가 주저앉고 만 내수경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제로에 가까운 금리도 기업 투자의욕 자극 못해
1995년 7월 1% 미만으로 떨어진 콜금리는 1998년 8월까지 0.4~0.5%대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 일본경제는 디플레이션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1995년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0.12%로 1958년 이후 처음으로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디플레이션으로의 진입은 ‘디플레이션 기대’를 초래, 예상 물가상승률 역시 마이너스가 되면서 예상 실질금리는 명목금리를 상회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일본은행의 ‘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를 사용한 아다치·노구치·오카다 등 일본 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대부분의 기간에 예상 인플레이션율은 실제 인플레이션율보다도 낮았다. 그 결과 예상 실질금리가 실제 실질금리보다 높았으므로 콜금리를 제로에 가깝게까지 낮추는 팽창적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투자의욕을 자극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디플레이션의 지속으로 기업의 채무와 기업보유 현금·예금의 실질가치가 상승하자 기업은 채무를 줄이고 현금·예금의 보유를 늘리게 돼 민간기업의 투자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0.4~0.5%대의 콜금리가 유지되던 1995년 4분기~1998년 2분기의 연평균 실질 GDP성장률은 0.09%에 불과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폴 크루그먼을 시작으로 일본경제가 유동성함정에 빠졌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일본경제가 유동성함정에 빠져 전통적인 금리정책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자, 2001년 4월부터 2006년 6월까지 극단적인 금융완화정책이 실시됐다. 콜금리는 거의 제로 수준으로 유지됐고 본원통화량은 유례없이 증가했다. 1994~1995년 본원통화량의 월별증가율(전년동기 대비)은 3~8%대에 머물러 있었으나, 2001년 9월~2004년 3월에는 10% 이상의 증가율을 유지했다. 특히 2002년 3~4월에는 본원통화증가율이 30%를 넘어서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발표된 많은 연구논문은 이 시기의 양적완화정책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경험은 2008년 이후 미국의 양적완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나 회복기미를 보이던 일본경제는 2009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다시 약세로 돌아서 2006년에 간신히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던 일본은 2009년에 다시 그 덫에 빠지게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