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의 공공투자, 도로ㆍ터널ㆍ다리ㆍ지방공항 등 비효율적이고 무분별한 투자로 사회문제화 - 적자국채 발행액 1994년 4조1천억엔(전체 국채발행액의 25.1%)에서 2010년 34조7천억엔(전체의 82.0%)으로 급증
일본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실증연구에서 정부가 기존 국가채무를 새로운 국채발행에 의존하지 않고 미래에 발생할 기초재정수지로 상환할 수 있는 이른바 ‘노-폰지-게임(No-Ponzi-Game)’ 조건을 더 이상 충족하지 못하는 시점이 언제일 것인가를 둘러싸고, 일본 재정은 이미 1997년을 기점으로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2011년에 200% 초과
OECD 통계를 보면 일본정부는 1993년 이후 단 한 번도 재정수지 균형을 달성한 적이 없다. 그 결과 국가채무는 누적되기 시작해 일본정부가 ‘재정구조개혁 원년’으로 선포한 1997년에는 GDP 대비 비율이 100%를 넘어섰고, 2011년에는 급기야 200%를 초과했다(<그림 1> 참조). 미국·독일·프랑스 등 다른 선진국의 경우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00%대 전후임을 감안하면, 일본 재정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연구결과에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아베노믹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재정건전화는 장기과제로 유보한 채 단기적으로는 적극적인 경기부양은 아니더라도 ‘기동적인’ 재정정책이라는 표현을 동원하면서 재정확대에 주저하는 기색이 없다. 이것은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그 근저에는 2000년대 이후의 저금리정책과 아베노믹스의 양적완화로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유지되고 있어 정부의 실제 국채상환 부담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정부가 신규국채를 아무리 많이 발행하더라도 국내 기관투자자가 항상 이를 소화하고 있어 이 또한 가능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버블이 붕괴되고 난 후 20여년 동안 일본정부의 세출구조를 보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두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1990년대 초반의 공공투자와 그 이후의 사회보장지출이다(<그림 2> 참조). 비록 일본정부의 세출에서 공공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3년 18.2%를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12년 결산에서는 5.2%까지 하락했지만, 1990년대 초반의 버블붕괴와 199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기대책 명분으로 총 123조엔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투입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만일 일본정부의 공공투자가 민간 부문의 유효수요를 유발해 GDP를 증가시키는 승수효과를 충분히 발휘했다면 국가채무 부담을 완화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학자나 연구기관이 계량모델을 이용해 추정한 일본 공공투자의 재정승수를 보면, 196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2.27에 달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는 1.31로 하락했고 2011년에는 다시 1.14로 떨어졌다. 이처럼 일본 공공투자의 승수효과가 저하되는 이유는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는 변동환율제 아래에서 정부가 공공투자와 같은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금리가 인상돼 자국의 화폐가치가 상승(평가절상)하는데 이에 따른 수출감소는 재정지출효과를 상쇄한다는 점, 둘째는 일본정부의 국채발행을 통한 공공투자는 미래의 증세 가능성을 내포하는데 이를 예견하는 가계가 소비를 억제한다는 ‘리카르도 중립성 명제(Ricardian Equivalence theorem)’가 실현됐다는 점이다. 특히 당시 일본정부의 공공투자는 도로·터널·다리·지방공항 등 비효율적이고 무분별한 투자로 사회문제화되기도 했다.
일본정부의 사회보장비 부담 증가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일본은 1995년에 65세 이상 고령자비율이 14%인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05년에는 그 비율이 20%인 초고령사회를 맞이했다. 예산에서 사회보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더라도 1995년 19.2%에서 2005년 24.1%, 2012년에는 30%를 돌파했다. 사회보장비 중 공적연금이나 공적 의료·간병보험에 투입되는 사회보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70%임을 감안하면 고령화가 재정을 압박하고 있는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소비세 등 증세정책에서 정치적 리더십 발휘 못해
그렇다 해도 일본 재정이 악화일로로 빠지는 과정에서 정부가 일조한 부분은 간과할 수 없다. 첫째, 사회보장비 지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공적연금제도와 의료보험제도의 개혁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공제연금(공무원연금)제도를 후생연금(국민연금)제도로 통합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연금수급액 및 수급시기 조정에는 안이했다. 특히 재원확보 관점에서 소비세(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증세정책에서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둘째, 정부의 재정규율(fiscal discipline) 이완이다. 일본 「재정법」은 재정수지 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적자국채 발행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정부의 적자국채 발행액은 1994년 4조1천억엔(전체 국채발행액의 25.1%)에서 2010년 34조7천억엔(전체 국채발행액의 82.0%)으로 급증했다. 재정적자가 발생하면 이를 국채발행으로 보전하는 매우 안이한 재정운용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일반회계 본예산 대비 추경예산 비중 역시 높은데,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말에는 10%를 초과하기도 했다. 각 정부부처의 과도한 추경예산 편성은 재무성의 예산심사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크다. 예산과정에서의 의사결정시스템 역시 재정규율을 해치는 중요한 요소다. 일본의 정관(政官)관계 특성상 업계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여당 족의원(族議員)의 권한이 비대해 재무성의 예산심사기능이 무기력하고 이 과정에서 예산규모가 팽창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재정개혁과 관련한 일본정부의 ‘좌절’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일본정부가 스스로 재정위기를 인식해 재정개혁을 시도한 사례는 1997년 하시모토 내각이 도입한 「재정구조개혁법」, 2000년대 초·중반 고이즈미 내각이 제시한 세입·세출 동시개혁, 2010년 민주당 내각의 재정운영전략 등 세 차례다. 이들 재정개혁은 세출삭감을 통한 재정균형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세출삭감 측면에서 다소 성과를 거뒀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 재정개혁은 1997년 말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발과 일본의 금융시스템 불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12년 선거패배를 이유로 거의 다 2년을 넘기지 못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현 아베 총리가 어떠한 재정개혁안을 내놓을지 그리고 그것을 중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역대 일본정부의 좌절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