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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3류 정치의 오판, ‘망가진 경제대국’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2015년 01월호

-‘시장 + 정치 + 관료’의 삼각부패, 개혁 시늉만 반복하며 불황을 더 깊고 넓게 악화시켜
-잘나가던 시절 정경유착이 왜곡시킨 복지시스템의 경직적 한계 여전

 

제도경제학이란 학파가 있다. 정치·법률 등 제도가 경제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요지다. 경제성과가 특정 제도에 달렸다니 차별적인 접근이 틀림없다. 일본경제를 제도경제학으로 풀면 꽤 명쾌해진다. 30년 호황과 20년 불황의 연결경로는 순전히 일본적인 제도특징에서 설명풀이가 가능해서다. 일본모델은 장기간 구축·작동된 다양한 하부구조가 톱니바퀴처럼 연결돼 현재상황에 도달했다. 따라서 흥망을 가른 변수가 일본적 특수성에 기인하기에 교과서적 일반이론을 적용하면 곤란하다.

 

패전 이후 관료 주도의 성장모델 구축…80년대 ‘Japan as No.1’ 완수

 

일본경제의 불황 배경은 복합적이다. 고도성장을 견인한 성장변수가 특정 시점을 고빗사위(매우 중요한 단계나 대목 가운데서도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로 복합불황의 심화요인으로 둔갑했다는 점에서 모든 제도·주체·환경 등이 복잡·다난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어제까지 호재였던 게 오늘부터 악재인 건 어느 하나의 단순 문제가 아닌 까닭에서다. 다만 공통적으로 꼽히는 성장한계가 정치파트다. 일본의 정치제도, 운영관행이 불황을 야기했을 혐의가 짙다. 적어도 불황에 관여했을 확률은 지배적이다. ‘기업은 1류, 정치는 3류’라는 비유에 이견은 없다.

 

일본정치는 고도성장에 깊숙이 관여했다. 1945년 패전 이후 수입대체·수출지향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한정자원을 재배분할 때부터 정치의 역할은 지대했다. 더 올라가면 1867년 메이지유신 이후 가속화된 일본적인 산업혁명과 재벌 형성에도 정치입김은 주효했다. 광산·제조·유통·금융의 재벌모델은 정경유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계대전의 틈에서 제국주의를 내걸고 국가총동원령의 군사국가로 재편한 건 중후장대의 군수산업을 쥐락펴락하는 정경야합 및 이익공유적인 밀실거래 때문이었다.

 

 

패전 이후 일본경제는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미국의 안보지원에 따른 경제적 무임승차가 결정적이었다. 배고픈 일본경제는 정부 주도의 성장모델을 기획·실천했다. 변변찮은 생산기반에 자본투자마저 빈약했기에 단기간에 성장속도를 올리자면 정부 개입의 인위적인 자원재분배가 불가피했다. 이 역할을 고시패스로 실력이 검증된 관료집단이 도맡았다. 자원중재자이자 시장심판관으로서 관료 주도의 성장모델이 구축된 것이다. 와중에 한국전쟁, 세계적 동반성장 등 외부특수도 한몫했다. 관료 주도형 성장모델은 1950년대 말부터 고도성장을 진두지휘했다. 1970년대를 전후해 금본위제 포기선언(닉슨쇼크)과 잇따른 오일쇼크로 일본경제가 위기상황에 봉착했을 때 이를 해결해낸 극복 주역도 관료집단이었다. 일본 특유의 산업정책이 위기를 기회로 변신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1980년대 ‘중후장대→경박단소’의 구조전환의 기치도 관료가 내걸었다. 기업이 기술개발·투자확대로 경쟁력을 확보하면 업계협조와 경쟁제한적인 규제정책으로 세계시장에 연착륙하도록 지원해줬다. 요컨대 ‘호송선단시스템’이다. 이는 우수한 관료주의를 전제로 장기간 설명력을 발휘했다.

 

성장모델과 관료주의는 생활대국을 넘어 ‘Japan as No.1’을 완수했다. 1980년대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글로벌무대를 장악했다. 다만 여기까지였다. 1990년대부터 버블붕괴와 복합불황이 거세지면서 관료주도적인 성장모델은 종언을 고했다. 대신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다양한 불협화음이 우후죽순 쏟아지기 시작했다. 경제모범생은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방황을 반복했다. 정경유착과 비리사슬이 드러나면서 무능한 관료주의도 뭇매를 맞았다. ‘시장+정치+관료’의 삼각부패는 개혁 시늉만 반복하며 불황을 더 깊고 넓게 악화시켰다.

 

돈과 표를 바꾸는 이익유도적인 정치 반복

 

1990년대 중반부터 조금은 달라지려 시도했다. 개혁슬로건 속에 정치·행정 개혁 등 구조전환의 불가피성에 힘이 실렸다. 이때 ‘관료 주도 → 정치 주도’의 헤게모니 쟁탈전도 벌어졌다. 행정전문가인 관료에 맡겨 이 지경이 됐으니 정치인이 넘겨받아 책임정치를 펼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치나 관료나 초록은 동색인 게 나아진 건 거의 없다. 의원내각제의 실질 리더이던 각 파벌수장은 조기 강판으로 물러났지만 그 안의 돈과 표로 움직이는 작동논리는 건재하다. 되레 원로의 중재나 계파 견제 없는 낯선 정치지형에 조우하며 합의제의 퇴색혼란마저 목격되는 양상이다.

 

저성장·고령화·재정난 등 미증유의 복합악재는 일본모델을 근본부터 뒤흔든다. 대전환의 구조개혁 없이는 결코 경제적 만족과 안심감을 장기적·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는 건 불문가지다. 이대로라면 ‘불행대국’ 타이틀은 불가피하다. 평가는 어둡다. 잘나가던 시절 정경유착이 왜곡시킨 복지시스템의 경직적인 한계가 여전해서다. 기업복지의 틈새다. 관료와 한배를 탄 기업·시장에 복지공급을 대부분 의탁하는 대신 정부는 기업이윤을 적극적으로 챙겨주는 구조였다. 정부의 복지제공은 기초생활보장 등 최저안전망만 만들면 됐었다. 농촌지역·중소기업 등에는 재정을 투입해 돈과 표를 바꾸는 이익유도적인 정치를 반복했다. 이게 고도성장 때는 세습정치와 맞아떨어지며 안정성을 높였다.

 

정치야말로 일본경제 흥망스토리의 주연 중 하나다. 기업이 주인공이건만 기업만큼 자주 나와 결정적 역할을 독점해온 게 정치다. 그래도 잘나갈 때는 시너지의 정합성이 있었지만 성장이 멈춰선 지금은 되레 불황가속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듯하다. 즉 정치가 경제보다 중요하다는 걸 증명해준 사례가 일본모델이다. 드물게 아베정권이 강력한 정치리더십을 발휘 중이지만 개혁과는 이질적이다. 동시에 무책임의 정치구조는 아베승부수의 실패 이후를 보장해줄 유력한 안전장치다. 일본정치가 바뀌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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