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화ㆍ디지털화에 적응 못한 日 전자기업 추락
-아날로그 강점 살릴 수 있는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은 여전
최근 일본 대기업의 명성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소니·샤프·닌텐도·올림푸스 등 과거 명성이 자자했던 IT·전자 기업들의 침체가 선명하다. 그런데 일본의 모든 기업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도요타·혼다·닛산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 기업의 명암을 갈랐을까? 짐작하는 바와 같이 전자기업의 실적은 좋지 않은 반면, 자동차기업의 실적은 여전히 좋다.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인 소니의 2014년 3월 결산 영업이익은 264억엔에 불과하다. 참고로 삼성전자의 2013년도 영업이익인 15조6,761억원의 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도요타의 영업이익은 2조2,921억엔으로 현대자동차 8조3,155억원의 약 2.7배 수준이다.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업종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 개별기업의 경영상 문제점보다는 종사하는 산업의 문제점이 더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과연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대표 주력산업인 IT·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의 명암을 가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전자기업, 1990년대 이후에도 아날로그적 발상으로 비즈니스 전개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가장 큰 환경변화는 글로벌화와 디지털화의 진전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화는 신흥국을 세계시장으로 편입시켜 시장확대는 물론 제조비용도 획기적으로 낮췄다. 게다가 디지털화는 제품 만드는 기술이나 제조방식에 큰 변화를 초래해 글로벌화를 가속시켰다. 선진국 중심의 제품시장과 제조가 신흥국으로 확산된 것이다. 특히 디지털화는 제품의 범용화, 선진국과 신흥국의 기술격차 축소, 제품기능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수렴(convergence)’ 현상을 초래했다. 전화기·카메라·음성기기·컴퓨터 등의 기능이 스마트폰 하나로 수렴한 것이 좋은 예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기업의 업적은 글로벌화와 디지털화의 적응 여부에 명암이 엇갈렸다.
일본 도쿄대의 후지모토교수는 대부분의 제품을 ‘모듈(Modular)’ 제품과 ‘인테그럴(Integral)’ 제품으로 구분했다. 모듈 제품이란 PC처럼 각각의 기능을 하는 부품을 단순히 ‘조합’한 제품을 말하며, 인테그럴 제품이란 자동차처럼 각각의 부품을 ‘통합’해 새로운 기능을 이끌어내는 제품을 말한다. 인테그럴 제품은 각 부품의 기능뿐 아니라 이를 제조하는 기업의 조직적 통합능력도 제품의 성능을 좌우한다는 주장이다. 국가경쟁력은 모듈산업과 인테그럴산업에 능한 나라로 나뉜다. 일본이나 유럽은 인테그럴 제품에 경쟁력이 강하고, 미국·한국·중국은 모듈 제품에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일본은 PC처럼 부품을 단순히 조합한 디지털제품보다는 자동차처럼 부품과 조직까지도 통합해 새로운 성능을 이끌어내는 아날로그 제품에 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일본 전자기업들은 1990년대 이후의 글로벌화와 디지털화에 왜 잘 적응하지 못했을까? 1990년대까지 일본 전자기업들은 아날로그적 발상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해 왔다. 소니의 워크맨, 닌텐도의 게임기, 올림푸스의 카메라는 모두 아날로그 기술을 기반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사례다. 아날로그 기술력으로 최첨단 제품을 개발해 일본을 위시한 구미 선진국 고급시장을 겨냥하는 것이 일본 전자기업들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제품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성능이나 품질이 좋으면 팔린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세계시장은 신흥국의 시장참여로 가격에 민감한 시장으로 변질됐다. 또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제품의 성능이나 품질격차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기술개발과 선진국시장에 연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했다. 환경이 변했음에도 과거의 성공패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일본 기업들은 가격을 감안한 ‘적정품질’의 제품개발에 실패했다. 닌텐도의 게임사업이 2010년경까지 선전하는 듯했으나 결국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게임에 손을 들고 만 것도 같은 이유다. 반면 같은 전자산업이라도 소재·부품 등 아날로그적 요소가 강한 분야는 여전히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후지모토 교수의 산업분류에 따르면 일본 자동차기업들이 아직 승승장구하는 이유도 선명해진다. 자동차는 IT·전자제품과 달리 아직도 약 2만개 이상의 부품으로 조합된 제품이다. 따라서 이들 부품이나 이를 만드는 조직의 통합 여하에 따라 성능이 달라진다. 아직 일본 기업들의 장기인 아날로그 기술의 영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의 제품인 것이다. 자동차 부품의 모듈화가 진전되고는 있지만 전체 성능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최근 발전하고 있는 하이브리드자동차나 전기자동차 역시 여전히 아날로그적 기술이 좌우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향후에도 일본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범용성 강한 IT제품에서 중전(重電) 쪽으로 사업구조 전환
그렇다면 일본 전자기업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일본 최대 전자기업인 히타치제작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히타치는 2014년 3월 사상 최고인 5,328억엔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소니·샤프·파나소닉과는 대조적 성과다. 히타치는 사업구조조정으로 범용성이 강한 IT제품 사업에서 철수했다. 그리고 정보·통신, 전력, 산업용 기기, 철도, 전자장치 등 중전(重電) 쪽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하고 있다. 일본인의 장기인 아날로그의 장점을 충분히 살린 사업구조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히타치의 변신에 일본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일본 전자기업들은 디지털 성격이 강한 범용성 제품은 한국이나 중국 기업들에 따라잡히기 쉬우므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사업구조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제품 분야에선 중국·동남아 등지로 생산을 이관하거나 협업을 하고, 한국·중국 기업에 의한 캐치 업(catch-up)이 어려우며 일본 기업만이 잘할 수 있는 분야로 사업을 특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파나소닉도 주택·에너지 등 분야로 사업구조를 전환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동아시아에서 전자산업의 판도가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일본 전자기업들의 방향 전환은 우리 기업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과거 일본의 전자기업들은 글로벌화·디지털화에 적응하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지만, 지금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평판TV·스마트폰 등 디지털 제품 분야에서 중국이나 동남아 기업들에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중전이나 소재·부품 등 아날로그적 분야에서 아직 기술력이 취약해 향후 어떤 돌파구를 마련할지가 큰 과제다. 일본 기업들의 실패사례는 지금 우리 기업들에 반면교사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