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1983 미 오하이오주립대 인적자원연구소 수석연구원 1983~1989 KDI 연구위원 1989~1991 국민경제제도연구원 부원장 1991~1993 KDI 부설 국민경제교육연구소 소장 1995~1997 OECD 가입준비사무소장 1997~1998 한국조세연구원 원장 1998~2000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원장 2002~2005 KDI 원장 2007~2008 한림대 총장 2008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2008~2010 주OECD대한민국대표부 특명전권대사 2010~2014 한국은행 총재 2014~2015 미 펜실베이니아대 초빙교수 2015~현재 KDI 자문위원, 서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한국은행 고문
지난해 3월 한국은행 총재 퇴임 이후 1년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강의하셨고 지금은 한은 고문, KDI 자문위원으로 계십니다. 또한 서울대 국제대학원에도 출강하고 계시는데요. 바쁘신 건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으시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한 직장에 다녔다면 말씀처럼 지금은 세 직장에 다니는 셈이니까요. 만나는 사람들이 다양해지기도 했구요. 지난해 미국 대학에서 첫 학기에 ‘한국경제의 과거와 현재’, 두 번째 학기에 ‘한국경제의 도전과 전망’을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고민해왔던 문제들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계속 수행해야 할 연구과제가 되고 말았고,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이 과제에 할애할 계획입니다. 서울대에서는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경제정책에 대해 강의하고 있으며, KDI에서는 경제의 글로벌화와 G20의 역할에 관한 연구과제를 맡아 자료를 정리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학교 졸업 이후 다양한 직장을 다니셨지만 결국 일생을 경제정책을 연구하는 이코노미스트로 살아오셨는데요. 30여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경제는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경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30여년 전과 비교가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이뤘습니다. 한마디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에 괄목할 성장이, ‘중진국 함정 극복’이라는 표현에 성공적 발전이 함축되었다고 볼 수 있겠고, 이는 매우 자랑스런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세계경제와 경쟁을 이어가겠다는 의욕과 노력, 잘해 보겠다는 사회적 분위기, 이런 조건들이 계속 충족될 것인지 좀 더 고민해야 할 일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잘한 것, 못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대외지향적 발전전략을 추진함으로써 과거와 내부지향적이던 사고와 관행을 미래와 외부지향적으로 전환시켜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한 것이 잘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경제정책을 미리미리 정해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했고, 경제주체들이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경쟁을 하도록 한 것 등을 들 수 있죠. 반면 학교와 사회에서 선진일류국가를 만드는 데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함에 따라 우수한 두뇌가 나Interview오고 있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평균적인 교육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고, 그를 통해 가난한 나라에서 이 정도 수준까지 왔지만, 교육평준화정책 등으로 그야말로 수월성을 추구하는 인재들이 안 나오고 있는 겁니다. 일본은 노벨상을 20여명이나 받았는데 우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말들이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그러한 인재를 허용 안 하는 사회였던 겁니다. 국민소득이 2만8천달러 정도 되는 나라에서 이제부터는 수월성을 갖춘 우수한 인재들이 대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1996년 12월 12일, 한국이 29번째로 선진국클럽으로 불리는 OECD에 정식 가입했습니다. 그때 OECD 가입준비사무소장으로 계시면서 협상을 진두 지휘하셨는데요.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던 한승수 전 총리께서는 수년 전 『나라경제』 인터뷰에서, 총재께서 당시 어려운 여건에서도 협상을 잘 진행해 주셨다는 말씀을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총리께 감사하다는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사실 우리나라 역사상 OECD 가입보다 더 큰 경제사회적인 대외 이벤트는 없었다고 할 정도로 저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경제발전의 모멘텀이었다고 봅니다. 선진경제로 진입하는 관문이 OECD 가입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지요. 당시 17개 부문에서 협상을 진행했는데, 제가 모든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아마 한 사람이 대표를 하면서 전체 협상에 참여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파리에 2년 근무하는 동안 토, 일요일 쉬는 날이 없었고, 루브르·오르세·개선문에도 한 번 못 가본 것이 생각나네요.
그때 어려웠던 점이나 숨겨진 얘기 등 당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당시에 조기가입 문제가 정치적으로 거론됐던 것이 협상단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들었다고 회고됩니다. 멕시코, 체코, 헝가리, 폴란드가 우리보다 앞서 가입한 것만 봐도 그런 비난이 적절치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국제기구에 가입하지 않고서도, 즉 대외상황 변화에 유의하지 않고서도 내부적으로 국제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는 실증적인 근거가 희박한 일방적 주장에 불과할 뿐입니다. 저는 사회 각계 지도자들이 언제나 국제적 안목을 갖고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중요한 교훈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노동ㆍ금융ㆍ공공ㆍ교육 등 4개 개혁이 부진하고 불투명한 미래 성장동력, 청년실업, 기업구조조정 등 한국경제의 구조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4대 개혁과제의 중요성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전제가 모든 경제주체들이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왜, 어떻게 추진하고 그 결과가 어떠할지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해상충집단 간에 공유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총체적 전략이 명료하게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헐적·단편적인 개혁과제 논의는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 과연 이러한 개혁비전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가 어느 정도인지 정책당국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현재 한국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시며, 그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계경제가 아직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상황임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너무 단기정책에 치중해오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성장잠재력이 낮아지고 있는 점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정책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정치지도자들의 시계(視界)가 단기적이라 하더라도 경제정책당국자들은 장기적 비전을 모색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 발굴에 매진해야 합니다. 국가발전전략 이슈를 정치권보다 선점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국민에게 알려야 합니다. 지금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산성 향상에 대한 정책전략이 잘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이며, 생산성 향상의 관건은 교역재보다 비교역재 부문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제조업 등의 교역재 부문은 국제경쟁에 노출됨에 따라 생산성 향상 여부가 존폐를 결정하지만 공공 부문을 위시한 비교역재 부문은 경쟁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비교역재 부문이 상대적으로 크므로 향후 성장의 관건은 이 부문에서의 생산성 향상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유능한 정부를 갖는 것의 중요성은 제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2006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돌파한 이후 3만달러시대를 좀처럼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3만달러 달성을 가로막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우수한 인적자원이 성장에 투입돼 왔고, 그 결과로 국제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수 인재들이 의사, 법률가, 공직자가 되려 합니다합니다. 이 부문들은 국제경쟁에서 제외된 국내산업 부문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최정예 인적자원을 국제경쟁에서 제외시키면서 경제 규모를 키울 것을 기대하는 것은 현명한 정책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이러한 부문에서 시장개방이 이뤄지지 않고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생각이라고 판단됩니다.
1,100조원을 넘어서는 가계부채의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사회 각계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최대 난제가 가계부채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이며, 무엇보다 그 규모가 크고 단기간에 해결할 묘책이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꾸준하면서도 의연한 장기 대응책이 추진돼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죠. 한편 과거 미국·일본과 달리 가계부채 문제가 단기간에 금융시스템의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과 같은 금융의 거시건전성 정책을 조기 도입해 비교적 엄격하게 운영해온 결과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향후 매우 오랫동안 가계부채가 성장의 애로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소비의 성장기여도가 낮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금리 정상화 과정이 시작되면 특히 금융자산을 갖지 못한 저소득층에서 부채상환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인 만큼 이에 대한 시의적절한 대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부채는 기본적으로 성장을 통해 장기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 자료를 토대로 한 실증분석 결과를 보면, 부채가 많은 경제는 성장이 낮을 뿐 아니라 위기를 경험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단기 성장목표를 위해 빚을 늘리는 정책은 득보다 실이더 많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므로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의 급속한 빚 증가 추세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가 없으며, 위기극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예외적인 단기간을 제외하고는 빚을 늘리면서 경제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을 세워 경제 규모에 대한 부채총량의 비율이 증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최근 중국경기의 둔화 우려와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 이른바 G2 리스크로 한국경제의 외부 변동성이 커지고 있습니다만.
외부의 변동성을 내부의 정책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변화를 신속하게 파악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영향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경제정책에는 묘수가 없고, 국민에게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리고 파도가 세차게 몰아쳐오면 이 파도를 타는 방안을 강구해야지, 내 방식대로 파도를 이겨내겠다고 하는 것은 매우 무모한 생각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 얘기가 생각나는군요. 포악한 그리즐리 베어를 두 친구가 산에서 만났습니다. 한 친구가 신발끈을 동여매는 것을 보고 옆의 친구가 “소용없네. 저 곰은 매우 빠르니까.”라고 했더니, 그 친구의 반응이 “나는 자네보다만 빠르면 되네.”라고 했답니다. 저는 다극화시대에 이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글로벌 경제에 살면서 G2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직접적 관계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감안한 간접적 관계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하면서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됩니다. 이럴 때 국제적 안목을 갖는 것은 필수입니다. 글로벌 네트워킹을 구축함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력을 구비해야 합니다. G2 리스크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새로운 기회라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청년들이 삶의 방향을 잃고 좌절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 경제 어른으로서 청년 문제의 해법을 어디서 찾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청년들이 좌절한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희망을 잃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좌절하고 포기한다고 해법이 찾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지난 반세기 지금보다 훨씬 더 암울했던 환경에서도 당시 우리 청년들은 기개를 잃지 않고 오늘의 한국을 건설했습니다. 지금 세대라고 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선 현재 상황을 냉철하게 평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회, 학교 그리고 청년들이 각자 입장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이러한 주체들이 각기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차별화를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를 스스로 반성해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문제를 해결할 의향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을.’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이죠. 기쁨을 먼저 추구하는 경우에는 고통밖에 남는 것이 없고, 고통을 추구하면 그 다음에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아무도 고통스런 일을 하지 않으려 해요. 차별화를 하려 하지 않고, 구조개혁이 잘 안되는 것도 그것이 고통스런 일이기 때문이죠.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항상 어려운 일을 먼저 하려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이 갈수록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사회가 돼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저는 무엇보다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개천에서 용이 안 난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요? 지금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정말 무한한 기회가 우리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좁은 땅덩어리 내에서 경쟁하는 것만을 생각하니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요? 아마도 해외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여건이 지금의 우리 젊은이들이 처한 여건보다 더 열악했을 것입니다. 영국의 처칠 경이 “연은 역풍을맞아야 하늘 높이 올라가며, 순풍을 등에 업으면 밑으로 내려간다.”고 말한 것을 가슴에 품으면서 용기를 잃지 말기 바랍니다.
평생을 연구직과 공직에서 한국경제의 발전을 고민하시면서 마음속에 굳게 간직해온 신조는?
일생을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가 선진일류국가가 되는 것이 제가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목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항상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고, 국내보다는 해외를 보려 노력했습니다. 정태적인 상태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동태적인 변화를 머리에 그리면서 이를 성취하기 위해 미래지향적·대외지향적으로 안목을 넓혀야 합니다. 왜 눈이 두 개 있습니까? 하나는 국내를 보고 하나는 해외를 보라는 건데, 두 눈 모두 국내를 쳐다보니까 초점도 안 맞고 제대로 보지 못한단 말씀이에요. 또한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건은 질적 수준이 높은 인재를 여하히 배출할 수 있느냐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학계(academia)의 발전이 필수조건이라 믿습니다.
예전부터 유명한 ‘워커홀릭’이셨고 ‘야근은 축복’이라는 말씀도 남기셨는데요. 총재님의 학업과 사회생활을 일관해온 좌우명이나 삶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우리 사회에는 각 부문에서 헌신하는, 존경받아야 할 워커홀릭이 많이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아서 저를 워커홀릭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은 머릿속에 항시 있어 왔습니다. 남보다 더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우선 저를 강하게 만들었고, 또한 그 결과는 모두 저에게 득이 되었으니까요. ‘야근은 축복’이라는 말도 동일한 맥락에서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야근을 시켰다는 것은 적어도 나를 신뢰하는 상사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일을 더 주진 않을 것입니다. 좌우명은 낭중지추(囊中之錐)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없고, 결국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기에 스스로 더욱 정진하게 되는 것이죠.
월간 『나라경제』가 발간 300호를 맞았습니다. 1990년 창간 시부터 국민경제제도연구원 부원장, 국민경제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역임하시면서 『나라경제』의 발간과 발전에 핵심 역할을 하셨는데요. 일단 감회가 어떠십니까?
감개무량하다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네요. 우선 지금까지 『나라경제』를 이끌어온 모든 분들에게 존경과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창간 당시 300호가 나올 것으로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요? 우리나라 환경에서 무려 25년을 이어오려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필요했을지 익히 짐작이 갑니다.
당초 『나라경제』의 발간 취지는 무엇이었습니까?
한마디로 요즈음 흔히 쓰는 ‘소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선진 외국 정부기관에서 유사한 잡지가 발간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민주화 바람이 불고 좋은 의미에서의 정부정책 홍보에도 국가적 관심이 쏠려 있었구요. 그런데 사실 저로서는 공무원들에게 기명으로 글을 쓰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만, 글을 안 쓰는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아마도 생각이 정리돼 있지 않기에 글을 못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인 공무원들이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었습니다. 글 쓰는 훈련이 또 하나의 취지였다고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해 『나라경제』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결국 ‘경제정책 소통’이라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은 쌍방형 소통의 시대이므로 이러한 시각에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소통은 일반국민이 아니라 정부정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문가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대상을 너무 넓히면 초점이 흐려지기 쉽습니다. 또한 앞으로 『나라경제』는 경제교육과 글로벌 이슈를 더 다뤘으면 합니다.
한은 총재 이임식에서 “노병은 죽지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한국경제의 영원한 노병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하신지요?
맥아더 장군의 의회에서의 이임사를 인용한 말입니다. 이제는 공식적인 임무가 끝났다는 말입니다만, 저로서는 그동안 담당해왔던 일을 잘 정리해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새 임무가 될 것입니다. 한 나라가 선진일류경제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 문턱에 다가와 있습니다만, 이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내할 의향이 있어야 합니다. 글로벌 경제를 바라보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끊임없이 구조개혁이라는 내부단련을 지속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미래와 밖을 내다보는 능력을 갖지 못하면 과거와 내부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러한 폐습은 강한 지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정말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Global Korea’라는 미래비전에 대해 힘닿는 대로 연구를 지속할 계획입니다. ‘세계’와 ‘미래’가 두 핵심개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