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2017년 12월 7일(목) 오후 1시 30분 장소: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집무실(서울 종로구) 대담: 유성임 『나라경제』 편집장
1973 대구 生 카이스트 전산학과,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6~2005 네오위즈 창립, 네오위즈 이사
2005~2007 첫눈 창립, 첫눈 CEO
2007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블루홀스튜디오 창립
2007~2015 블루홀스튜디오 이사회 의장
2010~2015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대표
2015~현재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고문
2015 블루홀스튜디오에서 블루홀로 사명 변경
2015~현재 블루홀 이사회 의장, CSO
2017~현재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4차산업혁명위원회(이하 4차위원회)가 출범한 지 두 달여가 지났습니다. 공직은 처음이신데, 소감은? 정말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아시겠지만 위원장은 비상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근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너무 바쁩니다. 부담감도 아주 큽니다. 민간에서 저를 알았던 분들은 지금까지 추진력으로 성과를 냈으니 정부에 가서도 그렇게 해주겠지 하는 기대가 있으시고, 또 관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치고 나가는 것을 보여주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 기대에 부응해야 된다는 생각에 부담이 아주 큽니다.
무엇보다 성과에 대한 부담이 크실 것 같은데요. ‘싱크 빅, 스타트 스몰(think big, start small)’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생각은 크고 깊고 넓고 길게 하되, 시작은 작지만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크게 생각하는 것은 좋은데 시작부터 크게 벌리면 동력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광범위하게 접근하기보다는 우선 단계적으로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위원장께서 생각하시는 4차 산업혁명(이하 4차 혁명)은 무엇입니까? 4차 혁명에 대해 많은 주체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심화 발전되면서 생겨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이 처음에는 좁은 영역에서 영향을 주다가 점차 사회 전반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혁명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리 삶에 주는 영향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적인 사고, 단편적인 이벤트로 사회가 변화하진 않습니다. 길게 봐서 이 사회가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것이 좋긴 한데 성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그래서 4차위원회에서는 컴퓨팅 파워가 발전하고 연결이 강화돼 많은 데이터가 생기고, 생성된 데이터를 똑똑하게 활용해 가치를 창출하는 지능화 혁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4차위원회의 주된 역할은? 기본 소임은 각 부처가 추진하는 정책들 중에서 4차 혁명과 관련된 것들을 심의·조정하는 것과, 4차 혁명에 대해 국민들께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령으로 정해진 기본기능인데요, 저는 4차위원회의 역할을 조금 더 넓게 보려고 합니다. 국민들이 4차 혁명을 체감할 수 있도록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추가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12월 21~22일에 열리는 ‘규제혁신 해커톤’입니다. 해커톤은 원래 민간기업의 연구개발자들이 모여 일정한 기간 안에 시제품을 만들거나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대회를 말합니다. 이 방식을 본뜬 규제혁신 해커톤은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이 마라톤 토론을 벌여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고 공론화가 필요한 영역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룬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겠지만, 성과 없이 토론만으로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좋은 지적입니다. 그런데 저는 쟁점이 명확하게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 쟁점을 기반으로 보완해나갈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라이드 셰어링(카풀) 문제를 보면 지금은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각자 입장에서는 그게 최선일 수 있는데 국가 입장에서는 아닐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해커톤을 통해 각자의 입장을 명료하게 테이블에 올리고 그것을 문서화할 생각입니다. 문서화는 합의를 이루는 데 아주 중요한 절차입니다. 문구 하나하나를 조정하면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게 되거든요.
첫 규제혁신 해커톤이 21~22일 열린다고 하셨는데, 현재 준비상황은? 매스컴에선 1박 2일간 열리는 규제 해커톤만 부각됐는데요, 사실 1박 2일간 끝장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5, 6주간의 사전논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논의 주제를 정하고 각 주제마다 회의를 이끌 좌장과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를 배정하면, 그분들이 관련된 분들을 모집해 5, 6주 동안 초벌논의를 진행합니다. 그 후에 1박 2일간 규제 해커톤을 하게 됩니다. 현재 혁신 의료기기, 핀테크, 위치정보보호법 등의 주제로 5, 6주 과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규제 해커톤은 앞으로 6개월에 한 번씩 개최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같은 주제가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쟁점사항만 듣고 결론은 안 났는데 6개월 동안 관련 부처도 움직임이 적다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보자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4차 혁명으로 촉발되는 신산업이나 신서비스들이 기존 규제들로 인해 사업화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규제 해커톤이 하나의 돌파구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부의 변화 의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규제혁신 또는 규제완화가 넓게 보면 모두 제도정비라는 것입니다. 4차위원회에서 내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중에 자율주행과 관련된 제도정비가 있습니다. 자율주행은 기존에 없던 것이라 규제, 즉 제도 자체가 없어요. 이렇듯 어떤 것은 규제를 혁신해가야 되고 어떤 것은 규제를 없애야 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제도정비의 관점에서 새롭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해커톤은 이를 위한 여러 도구(tool)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혁신성장’에서 4차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혁신성장은 4차 혁명보다 조금 더 큰 담론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블루홀이라는 게임회사의 이사회 이사를 맡고 있는데, 4차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게임산업에 더 많이 신경 쓸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맡고 나서 보니 게임은 아무래도 거리가 있더라고요. 게임산업 자체는 그것대로 잘 키워야 되지만, 4차위원회가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나 중견기업들이 혁신해서 성장해가는 것을 지향하는 혁신성장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게임산업은 딱 어울리는 산업입니다. 또 혁신성장은 단기도 중요하지만 중·장기까지 포함해서 바라봐야 되는 거고, 4차위원회는 단기적으로 동력을 얻고 성과를 내는 것에 조금 더 집중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차 혁명에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다고 보십니까? 많이 늦었죠. 중국이 우리를 추월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실상 앞서 있는 것이 많습니다. 스타트업 수도 그렇고 자본과 시장 크기는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4차 혁명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일례로 이번 중국의 광군제 기간에 알리바바가 AI를 이용해 4억개의 광고를 했어요. 드론도 산업용과 군용은 무궁무진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만 일반소비자용은 중국이 너무 무서워 안 하는 게 맞을 정도예요. 위기감을 느껴야 합니다. 글로벌 시장은 지금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변화시키기 전에 우리가 빨리 능동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우리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불안해집니다. 그래도 우리가 과거부터 추격하는 것(fast follow)은 잘했기 때문에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4차 혁명과 관련해선 이미 중국과 미국, 독일이 잘 보여주고 있어요. 좀 늦었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저력 있게 잘 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또 이것이 가능한 게 우리에게는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4차 혁명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젊은이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겁니다. 실제로 시가총액 상위의 IT 기업 일자리는 젊은이들이 다 선호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4차 혁명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일자리를 창출할 기회라고 봅니다. 4차위원회가 기여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강점을 가질 만한 신성장산업을 꼽는다면? 4차위원회에 헬스케어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입니다. 헬스케어 분야는 보건복지부가 아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헬스케어는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또한 헬스케어는 선진국형 비즈니스입니다. 우리나라는 임상비용이 선진국보다 낮으면서 고학력자가 많아서 인력 풀이 좋습니다. 헬스케어 활성화를 의료 민영화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기존 의료와 별개로 스마트의료기기 등 분야가 아주 다양합니다.
지난 11월 30일에 발표한 ‘혁신성장을 위한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을 두고 새로운 게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번 대응계획을 ‘진화를 위한 종합’이라고 표현합니다. 사실 위원회가 출범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아 근본적이고 제대로 된 안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짧았습니다. 내부위원회도 만들어야 했고요. 현재 위원회 내에 과학기술, 산업경제, 사회제도 혁신위원회가 조직돼 있는데 거기에 속한 위원만 50~60분 정도 됩니다. 그분들을 조직화해서 일을 같이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또 민관 합동으로 한다는 것도 어렵죠. 그래서 초기 2개월은 정부정책에 대해 아주 깊이 있게 심의·조정하는 것보다는 기존에 진행하던 4차 혁명 관련 정책을 종합하는 데 방점이 있었다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향후 개별과제 중심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심의·조정해나갈 계획입니다. 사실 위원회 출범이 늦어 2018년도 예산은 이미 반영된 상태였습니다. 2019년 예산부터는 4차위원회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4차위원회에서 심의·조정된 것에 따라 부처 사업이 축소되거나 확대될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내년까지는 쉽게 조정이 안 될 거라고 보고요, 정부는 유지, 지속, 안전이 중요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민간처럼 기민하게 움직이는 게 꼭 능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장기적인 방향과 관점에서 꾸준하게 조금 더 좋아지느냐가 중요한데, 2019년 예산 관련해서는 4차위원회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처의 과제는 상당히 중요하니 증액하는 게 좋겠다, 더 관심을 가져달라, 이것은 해당 부처 관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우선순위는 낮은 것 아니냐와 같은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위원회가 목소리를 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쓴소리를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좋을 수 있으니까요.
다들 창업해서 성공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위원장님은 그 어렵다는 일을 네 번이나 해내셨습니다. 운이 좋았죠. 하하. 제가 곧 책을 출간할 건데요, 「장병규의 스타트업 한국」이라고. 그 책 안에 “스타트업의 성공은 다 제각각이다. 각자의 스토리로 성공하는 거지 재현 가능한 성공은 드물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제가 종종 하는 말인데요.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냐면 저의 성공공식, 특징, 장점을 말씀드릴 수는 있지만 꼭 그렇게 한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말씀드리면 제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은 네 번 다 공동창업이었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팀으로 같이 일하면서 시너지 내는 것을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제가 창업, 경영, 자금, 마케팅, 서비스, 기획, 개발 등 무엇이든 전부 다 약간은 해요. 그런데 하나만 놓고 보면 최고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런 특징이 팀워크에는 오히려 도움이 됐어요. 어느 하나 제대로 못하니까 남을 인정하게 되고, 또 두루두루 잘하니까 상황을 이해해서 팀워크를 빨리 완성할 수 있고요. 저는 서로 다른 걸 인정하는 게 빨라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다르구나. 오케이.’ 이게 아주 편하거든요. 정부 일은 처음이지만 그동안 팀플레이를 잘해 왔기 때문에 위원회에서도 팀플레이를 통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환경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미국보다 못하고 지금은 중국보다도 못하지만 그래도 아주 좋은 편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꾸준하게 계속 발전해왔어요. 예를 들면 연대보증제도의 경우 본엔젤스를 시작한 2006년만 하더라도 투자받은 데 중에 연대보증제도가 있는 곳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거의 없거든요. 10년 동안 그만큼 발전한 거예요. 다만 아직까지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으니 좀 더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는 있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진일보하기 위해 해결돼야 할 과제는? 현재 모태펀드를 중심으로 10억원에서 30억원 정도를 투자하는, 투자 전문용어로는 시리즈 A, B라고 하는데, 그 단계는 한국이 상당히 풍성한 편이에요. 물론 그것도 적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우리가 모자라지는 않아요. 그런데 100억원대 투자는 부족합니다. 성장하는 회사는 끊임없이 돈이 필요해요. 그것을 시리즈 C, D라고 표현하는데, 그 정도 규모의 투자는 활성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중국은 기본적으로 100억원대 투자가 흔하고, 규모가 커지면 시장이 크기 때문에 천억원대 투자도 많습니다. 한국은 시장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천억원대 투자가 활성화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시리즈 C, D 단계인 100억원대 투자는 활성화돼야 합니다. 또 하나가 스타트업은 부채금융(debt financing)이 너무 힘들어요. 제조업은 공장이 있으니까 공장을 담보로 바로 대출이 되지만 스타트업은 공장이 없잖아요. 대출이 아예 불가능해요. 성장하고 있는 선도 스타트업들은 뎁파이낸싱을 해도 갚을 능력이 충분하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스타트업의 뎁파이낸싱도 고려될 필요가 있습니다.
끝으로, 신년호 인터뷰인 만큼 국민들께 희망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18년은 국가에 대한 애정이 조금 더 생기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국가에 소속돼 있잖아요. 그렇다고 ‘국가를 위해서 봉사해’ 이런 거는 아니고요(웃음). 어쨌든 우리는 좋든 싫든 국가와 함께해야 되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2018년 한 해는 국가가 잘돼서 국민들이 국가를 뿌듯하게 생각하고, 반대로 국민들도 국가를 조금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국민들께서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4차 혁명 정책들이 실현될 수 있도록 위원장으로서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