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취임 1주년을 맞으십니다. 지난 1년의 성과를 꼽는다면?
지난 1년은 4차 산업혁명 본격화, 미중 무역분쟁 심화,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규제 등 중요한 이슈가 다수 발생한 격동기였습니다. 이런 이슈들은 결국 지식재산의 선점·보호 문제와 직결돼 있기에 지식재산 주무부처 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취임사에서 지식재산의 질적 성장, 지식재산 활용 및 보호 강화, 국제협력 선도 등 4가지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으며,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시행, 특허·영업 비밀 특별사법경찰 신설 등 정당한 지식재산 보호 기반을 마련한 것과 IP5 청장회의 국내 개최(2019년 6월 11~13일), 사우디·UAE에 특허행정시스템 수출 등을 통해 우리 지식재산 행정의 위상을 높인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나라의 특허시장과 생태계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나라는 지식재산의 기능과 역할이 미흡해 지식재산 생태계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합니다. 지식재산이 산업·기술 전략과 유리돼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세계 4위의 특허출원 강국임에도 지식재산 심사 품질과 보호 수준이 낮아 지식재산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식재산의 가치 저하는 지식재산을 사고파는 거래시장 위축과 지식재산 담보 대출 기피 등의 지식재산 금융 저조로 이어지고, 지식재산의 산업적 활용이 가로막혀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제품·서비스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적 흐름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식재산 보호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이유는?
잘 아시겠지만 우리는 다른 나라의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추격하는 전략으로 산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패스트팔로워 전략하에서는 특허 보호가 산업 전체적으로 볼 때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지금까지 아이디어를 쉽게 빌려와서 영업을 해왔는데 거기에 대해 큰돈을 내놓으라고 하면 힘들겠죠. 이것이 과거 우리의 정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술과 권리에 대한 보호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약했어요.
말씀을 들으니 특허 보호가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허만이 아니라 특허로 대표되는 모든 지식재산에 대해 보호하고 존중하고, 또 그 재산이 가진 사회적·경제적 가치에 부합하는 보상을 해주는 사회가 돼야만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령화로 나라는 점점 늙어가고 노동력에서도 더 이상 비교우위가 없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자본이 많은 부자나라도 아니잖아요. 믿을 것은 국민들의 창의성밖에 없는데, 창의성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누가 발휘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제까지는 남의 특허를 허락도 없이 갖다 쓰고 소송을 당했을 때 내야 하는 돈이 특허권자에게 정당하게 줘야 하는 사용료보다 적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이것을 바꾸기 위해 법을 고쳐 남의 특허인 것을 알고도 고의로 침해했으면 침해한 금액의 3배를 내놓게 하겠다고 정부가 선언한 것입니다. 이 제도가 정착돼 지식재산이 시장에서 제값을 받게 되면 창의적인 기술 개발과 특허 출원이 증가하는 선순환 지식재산 생태계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징벌적’ 의미가 되기엔 손해배상액 산정기준이 약해 보입니다.
피해보상금액을 특허 침해 피해자가 해당 특허로 사업을 했을 때 예상되는 수익을 기준으로 산정했기 때문입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3배까지 손해배상액을 증액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1배’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준을 ‘특허를 침해한 자가 실제로 벌어들인 소득’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또 권리자는 침해자의 매출액만 증명하고, 비용은 침해자가 증명하도록 해 권리자의 입증 부담도 완화할 것입니다.
특허가 시장에서 제값 받고 거래되면 특허로 은행에서 대출도 가능하겠네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은행들이 특허를 가지고 돈을 빌려준 경우가 거의 없어요. 특허의 가치를 모르니까. 특허를 침해할 수 없으면 특허를 거래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특허의 가치를 평가해야 합니다.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값을 매기는 거잖아요. 시장에서 가격이 정해지면 이를 바탕으로 은행도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됩니다. 돈 한 푼 없이도 특허로 사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혁신성장이 가능해집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특허를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면 지식재산으로 보호받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특허 없이 수출을 많이 해왔어요. 이것이 위험한 게 다른 나라가 우리의 아이디어를 베껴도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선진국들처럼 우리도 지식재산으로 국제무대에서 보호받는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기업들이 특허 없이 수출을 많이 한다고 하셨는데, 스타트업은 특허를 내는 것이 비용 등 면에서 부담이 클 것 같습니다.
혁신의 모태인 스타트업들이 제대로 된 권리보호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허청은 국내 특허의 경우 특허 출원 수수료를 감면해주고, 해외 특허는 컨설팅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가진 아이디어가 권리화가 가능한지 살펴보고, 특허의 성격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특허를 내야 할지, 해외로 나간다면 어디로 나가야 할지 등에 대해 전국 7개의 지식재산센터에서 컨설팅해주고 있습니다. 해외 특허는 특허료가 비쌉니다. 이것을 지원해주면 좋은데 특허청의 한정된 재원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모태펀드를 활용해 특허 출원에 대한 펀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유망기술을 가진 기업이 해외 특허를 낼 때 비용을 지원해주고 나중에 수익이 날 때 환불받는 비즈니스모델입니다. 올해부터 펀드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해외에서 우리 기업의 기술을 훔치는 경우 특허청 차원의 대응이나 지원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해외에서 우리 기술을 베껴 쓰는 것에 대해 우리가 우리 제도를 가지고 방어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그 기업이 한국에 물건을 판다면 그땐 특허 침해를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특허는 속지주의라 여러 나라에 내야 합니다. 점점 많은 나라가 지식재산권 보호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보호를 안 하면 혁신이 안 이뤄지고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믿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국가적으로도 남의 지식재산을 훔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생겼어요. 중국만 해도 특허청을 확대 개편하고 최근에는 단속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송하면 한국 기업이 이기는 사례도 나오고 있고요. 지금까지는 항상 졌거든요. 중국시장에서 특허를 침해당하고 싶지 않으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중국에 특허권을 내는 겁니다. 몇 년 뒤에라도 갈 시장이라면 적극적으로 특허든 상표든 디자인이든 특허권을 내야 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특허공제사업은 어떤 사업인가요?
해외에서 특허 소송을 당할 경우 끝까지 가면 이길 수 있는데 중소기업들은 돈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허공제사업은 그런 중소·벤처기업들을 도와주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기업이 월별로 일정 부금을 납입해 공제부금을 적립하고, 특허 소송이 발생했을 때 필요한 비용을 지원받고 소송이 끝난 후 대여받은 비용을 분할상환하는 방식입니다. 8월에 첫 공제상품이 출시됐는데 많은 기업이 가입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중소·벤처기업은 우수 특허가 있어도 자금 조달이 어렵고 기술 탈취에도 취약한데, 이들의 지식재산 역량을 높일 방안은?
특허청은 중소·벤처기업의 지식재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먼저 지식재산 창출 역량을 높이기 위해 IP-R&D 사업을 통해 연구개발 과정에서 특허 빅데이터를 활용해 핵심 특허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보호와 관련해선 지식재산권 분쟁 발생 시 대응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고요. 또한 8개국 15개소에 해외지식재산센터(IP-DESK)를 운영해 해외에서 겪는 지식재산권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끝으로, 활용을 위해선 기업이 지식재산을 담보로 사업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가치평가 비용을 지원하는 등 IP 금융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신기술을 융합한 특허 출원이 급증할 텐데, 이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기술의 변화가 있을 때 변화되는 기술을 가장 빨리 수용한 사회가 그 기술의 최대 수혜자가 됐습니다. 1, 2, 3차 산업혁명이 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한 번의 기술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기존의 기술들을 어떻게 융합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새로운 부가가치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융합기술을 권리로 보호해줘야 하는데 아직 세계에서 아무도 안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하기 위해 특허 시스템을 바꾸려고 합니다. 각각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지만 모아놓고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인 경우 특허를 줄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권리를 줄 수 있는 틀, 즉 프레임을 새로 만들고, 심사 기간도 현재는 15개월 걸리는데 새로운 기술 구현에 대한 특허는 5개월 이내로 확 줄일 계획입니다.
지난 6월 인천 송도에서 IP5 특허청장 회의가 열렸는데, 이번 회의가 갖는 의미와 성과는?
IP5 특허청장 회의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유럽의 세계 5대 특허청이 ‘특허 분야 업무 공조’를 위해 2007년 출범시킨 협력체입니다. 전 세계 특허출원의 약 85%를 처리하는 IP5의 논의 결과는 특허 분야 글로벌 의제의 향방을 실질적으로 결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IP5가 특허 분야에서 공동으로 대응해 나간다는 새로운 협력 프레임을 출범시키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글로벌 기술변화에 대응해 글로벌 특허 시스템을 공동으로 개선해 나간다는 ‘공동선언문’이 이번 인천 회담에서 채택된 겁니다. 또한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분야에서 IP5가 합의한 특허분류 개정안을 전 세계 표준인 국제특허분류(IPC) 체계에 반영시키는 성과도 거뒀습니다.
취임 2년 차에는 어떤 사업에 중점을 둘 계획이십니까?
지금까지 제가 한 일은 방향을 설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권리 보호에 대한 것도 출발점일 뿐이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고, 시장을 만드는 건 이제 막 시작했잖아요. 제대로 작동하는지 계속 지켜보면서 수요자 관점에서 시장이 형성되도록 도와주는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갖고 있는 목표는 딱 하나입니다. 지식재산을 둘러싼 생태계가 살아나도록 하는 것. 이 작업이 내년 이후에 정말 열정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재산 창출, 그다음 권리 보호, 그리고 그것을 활용해 세상에 없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세계시장을 장악하는 것, 이게 모두 하나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보는 필터에 따라 산업정책이 될 수도, 기술정책이 될 수도, 특허정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확신하는 것은 특허정책이 그 핵심이라는 겁니다. 나머지가 아무리 살아도 권리로서 보호해주지 않는 순간 다 사상누각이 돼버립니다. 이를 국민들께 알리기 위해 홍보도 많이 하려고 합니다.
청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관념화가 그 사람을 규정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불리는 이름이나 쓰는 말에 따라 생각도 결국 그렇게 한다는 거죠. 특허청도 그런 언어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봅니다. 특허라는 말은 100년 넘게 써와서 국민들이 아주 잘 알아요. 잘 알지만 어려워하죠. 특허라는 말이 어렵잖아요. 또 특허에 대한 인식이 너무 기술적이에요. 특허청 직원들의 특허에 대한 인식도 지나치게 협소해요. 특허청에서 일한다는 것이 주는 자부심도 약하고요. 그래서 청 이름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제가 한 신문에도 기고했는데 ‘지식재산혁신청’이라고 이름 붙이면 생각이 달라질 것 같아요. 스스로를 특허를 내주는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혁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더 자부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기업 생태계와 직접 접촉하는 기관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