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님은 취임 때부터 ‘원칙이 바로 선 공정한 시장경제’ 구현을 강조하셨는데요, 특별히 주안점을 둔 사안은 무엇인가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관장하는 경쟁 촉진, 갑을 문제 개선, 소비자 보호 업무를 조화롭고 완결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고 ‘소통’과 ‘균형’에 초점을 뒀습니다. 특정 사안이나 분야에 치우치기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전문가, 국회 등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균형적·합리적인 시각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가는 데 주력했습니다.
올 4월 공정위가 42년 만에 정책 기능과 조사 기능을 분리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달라졌습니까?
조사 분야는 본연의 임무인 신속하고 공정한 사건 처리를 충실히 수행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최근 각종 제보나 시장분석 등을 통해 국민 생활 밀접 분야의 불공정행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정책 분야는 유사 기능을 수행하는 부서들이 통합돼 전문적이고 완결성 있는 정책 수립의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기존에 경쟁·기업거래·소비자 분야로 나뉘어 있던 정책자문단을 지난 8월 ‘공정거래정책자문단’으로 통합·개편한 것이 한 예입니다. 한편 조직 개편으로 정책이 현장과 괴리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정책 분야의 현장 소통을 강화했고 정책-조사 부서 간 주기적 소통을 위해 ‘조사-정책 협의체’도 운영 중입니다.
디지털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상황에서 디지털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환경도 중요할 텐데요.
디지털경제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분석하는 한편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해 정책을 수립하고 법을 집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든 핵심 플랫폼이나 국내외 빅테크 기업의 독점력 남용 행위에 엄정 대응하고 있으며, 플랫폼과 입점 업체 간 공정한 거래관행이 정착하도록 소상공인 의존도가 높은 배달앱, 오픈마켓, 숙박앱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한 자율규제 방안 마련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독과점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문가 TF 논의 결과 등을 참고해 국회 법안심사 등에 적극 참여할 예정입니다. 또 소위 ‘다크패턴’이라고 불리는 소비자 눈속임 상술 문제, 중고거래 등 소비자 간 거래(C2C)에서 발생하는 문제 등 온라인 소비 공간의 새로운 이슈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자율준수 가이드라인과 분쟁해결 기준을 마련하고 필요한 입법 조치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남용 행위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앱마켓, 모빌리티 등 주요 플랫폼 분야에서 혁신경쟁을 저해한 국내외 기업들의 독점력 남용 행위를 적발해 시정했습니다. 앱마켓의 경우 구글이 자사의 앱마켓 ‘구글 플레이’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압도적인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모바일 게임사들로 하여금 토종 경쟁 앱마켓인 ‘원스토어’에 게임을 출시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지난 4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21억 원을 부과했습니다. 모빌리티의 경우, 국내 일반호출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보유한 카카오모빌리티가 자사의 가맹택시인 ‘카카오T 블루’ 수를 늘리기 위해 ‘카카오T’ 앱의 배차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사 가맹택시에 콜을 몰아준 행위가 적발돼 지난 2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71억 원을 부과한 바 있습니다. 한편 카카오모빌리티가 다른 가맹택시 기사에 대한 콜을 차단한 행위와 관련한 조사도 최근 마무리했고 심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 밖에도 전자상거래, 숙박 등 핵심 플랫폼 분야를 중심으로 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온라인 소비 비중이 커지며 문제가 되고 있는 다크패턴에 대한 대책을 지난 4월 발표하셨습니다. 관련 후속조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다크패턴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늘고 있는데 다크패턴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정상적인 마케팅과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두고 그동안 시장에 혼선이 있었습니다. 이에 공정위는 19개 다크패턴의 행위 유형, 사례, 소비자 유의점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지난 7월에 배포했고, 이를 통해 사업자들이 스스로 다크패턴을 시정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업종별로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다크패턴의 유형을 점검하기 위해 1차로 지난 11월 종합쇼핑몰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지금은 전문쇼핑몰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결과는 내년 초에 발표될 예정입니다. 한편 현행법으로 규율이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다크패턴을 제재하기 위해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법 개정 전이라도 현행법을 적용할 수 있는 다크패턴 행위는 적극 시정해 나갈 계획입니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발표한 일반지주회사의 CVC 규제 완화의 배경은 무엇인가요?
공정위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업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검토해 왔습니다. 특히 고금리와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벤처투자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CVC가 벤처생태계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번 제도개선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우선 CVC가 결성하는 벤처펀드의 외부출자 비중을 현행 40%에서 50%로 상향하려고 합니다. 벤처펀드는 통상 50 대 50 출자를 통해 결성돼 공동운용(Co-GP) 방식으로 많이 운영되는데, 그간 외부출자 비중을 40%로 제한하다 보니 공동 벤처펀드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울러 CVC가 해외 우수기업에 적극 투자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외투자 비중을 현행 20%에서 30%로 상향하고자 합니다.
공정위는 건설, 사교육, 통신·금융 등 핵심 민생 분야의 불공정행위 단속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공정위는 ‘민생’을 이정표로 삼아 중소기업, 소상공인, 소비자의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일에 역량을 적극적으로 또 균형감 있게 투입해 왔습니다. 특히 국민 후생을 저해하는 담합행위, 부당광고행위 등에 엄정 대응해 왔고, 예산 낭비를 초래하는 공공 분야 입찰담합행위의 적발과 예방을 위한 제도적 보완도 추진했습니다. 앞으로 금융, 통신, 사교육, 아파트 건설 등 국민의 비용 부담이 크거나 관심이 큰 업종에서 일어나는 담합, 불공정 하도급, 부당 광고·약관 등에 대한 조사를 신속히 마무리해 민생 부담이 완화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하도급대금 연동제를 도입하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해 10월 4일 본격 시행됐습니다.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어떤 정책이 추진되고 있습니까?
기업들이 법을 몰라서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연동지원본부로 지정된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기업들의 연동계약 체결 전 과정에 걸쳐서 밀착 지원할 예정입니다. 기업들은 원재료 가격 분석, 연동계약서 작성 방법 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반칙행위에 대한 당국의 단호한 집행 의지도 제도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연동의무를 회피하려는 탈법행위를 엄중하게 단속함으로써 연동제가 시장에 촘촘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적절한 인센티브 정책도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어 연동 실적이 우수한 기업을 선정해 2024년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 면제나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상 벌점·과태료 감경 등의 혜택을 부여해 연동문화 확산을 유도할 것입니다.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판매촉진행사 비용분담에 관한 규정 개선안도 발표하셨습니다. 어떤 내용인지요?
공정위는 코로나19로 유통업체 및 중소 납품업체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2020년 6월 공동판촉행사 때 유통업체의 비용분담의무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운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올해 말 가이드라인 종료를 앞두고 보다 근본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첫째, 판촉비용 분담 판단기준 합리화, 둘째, 반칙행위 엄단을 위한 사후규율 보완, 셋째, 자율적 상생협력 기반 확충입니다. 대규모 유통업자가 판촉행사를 기획하더라도 참여업체를 공개모집하고 참여업체가 할인 품목, 할인 폭을 스스로 결정하면 대규모 유통업자의 비용분담의무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 내용의 핵심입니다. 그 과정에서 중소 납품업체 보호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반칙행위에 대한 사후규율을 보완하는 한편 유통-납품 업계 간 상생협력도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상생 기반도 마련하고자 합니다.
30만 명이 넘는 가맹점주들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가맹 필수품목 관련 제도 개선책을 발표하셨는데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선, 필수품목 항목과 가격산정 방식을 가맹계약서에 의무적으로 기재토록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가맹본부가 가격, 품질, 수량, 운송비 등 필수품목에 관한 거래조건을 가맹점주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점주들과 협의를 거치도록 의무화할 예정입니다.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 개정 등이 이뤄지면 필수품목 관련 거래내용이 투명해지고 가맹점주는 분쟁조정이나 소송을 통해 권리구제를 받기 용이해질 것입니다. 또한 가격 전가 등에 대한 공정위의 법 집행이 가능해짐으로써 가맹점주의 권익이 보다 두텁게 보호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시행 과정에서 가맹본부의 의견도 충분히 청취해 이들의 경쟁력에 부당하게 해가 되는 부분이 없도록 세심하게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국민 생활에 부담이 되는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에도 힘쓰고 계십니다. 그간의 성과와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은 공정위가 특정 기업을 조사해 제재하지 않고도 민생의 부담이나 불편을 완화해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는 주요한 정책 수단입니다. 매년 시장경쟁이 왜곡돼 있거나 법 위반이 반복 발생하는 분야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개선해 나가고 있습니다. 대표 사례로는 카셰어링·렌터카 영업구역제한 완화 과제가 있습니다. 또한 보험·신용카드 마케팅과 관련해 가입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이익 금액의 상한을 확대하는 등 소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개선한 바 있습니다. 올해도 통신시장 규제 개선, 자동차 수리용 부품시장 경쟁 활성화 등 다양한 과제를 관계부처 및 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콘텐츠산업 경쟁력의 원천이 창작자에게 있다 하셨습니다. 콘텐츠 분야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정책으로는 무엇이 있는지요?
지난 7월 음악저작권에 대한 방송사용료 징수와 관련된 경쟁제한행위, 9월 공모전 당선 작가들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과 관련된 불공정행위 등을 제재한 바 있으며, 만화·웹툰·웹소설 분야의 불공정약관에 대한 실태점검, 게임사·음악사의 외주제작 관련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대한 직권조사 등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 급격히 성장한 OTT시장의 거래실태 등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용역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웹툰 및 웹소설 분야 표준계약서 제정·개정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상생협의체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연예기획사 등의 불공정 관행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임기 중 이루고자 하는 과업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우선, 민생 분야에서의 법 집행과 정책 역량에 더욱 집중하고자 합니다. 철근누락 아파트 입찰담합, 사교육 거짓·과장 광고, 통신 3사 및 은행 담합 등에 대한 조사를 신속히 마무리해 국민이 그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디지털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기반 조성을 위해 반칙행위를 집중 감시하는 한편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문화 정착 및 혁신경쟁 촉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노력하겠습니다. 대기업집단 시책과 관련해서는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부당내부거래에 엄정 대응하는 한편, 균형적인 시각에서의 제도 개편 노력도 병행할 것입니다. 특히 국민 생활과 밀접한 업종에서 높은 영향력을 지닌 중견집단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법 집행시스템 개선을 위한 노력을 민간 부문의 자율준수 및 사적집행 활성화 등까지 좀 더 포괄적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합니다. 기업들의 공정거래 자율준수 활성화,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한 분쟁조정 활성화 등의 세부 과제에도 집중할 계획입니다.
이지은 『나라경제』 편집주간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프로필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학 박사
2000~2007 이화여대 법과대학 조교수, 부교수
2007~2010 서울대 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 기금부교수
2016~2019 보험연구원 원장
2020~2022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2021~2022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장
2022.9.~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