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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올해 농업·농촌의 ‘제2의 도약’ 초석 다질 것”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2014년 04월호

때_2014년 3월 17일 오후 3시
장소_정부세종청사 집무실
대담_이재열 나라경제 편집장

 

1955                 경북 의성 生
                          영남대 축산경영학과, 미 미주리대 농업경제학 박사
1980~2013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98~2000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상근 전문위원
2006~2012     농림수산식품부 규제심사위원회 위원장
2006~2009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산업소위원장
2008~2011     지역발전위원회 지역개발전문위원회 위원
2011~2013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 지역개발위원회 위원,
                          중앙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정책심의회 위원
2011~2013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2013 ~ 현재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요즘 AI로 많이 피곤하실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방역상황실 반장인 김용상 서기관에게 “간밤에도 사무실에서 잤나? 얼마나 됐지?” 하고 물어보니까, 59일째라더군요. 지금 AI가 발생한 지 62일째(3월 17일 기준) 됩니다. 여기는 여기대로 고생이 심한 거죠. 물론 농가야 더 말할 나위도 없겠죠. 현장에서 방역하시는 공무원도 그렇구요.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피곤하다고 생각할 형편도 못 됩니다.


얼마 전 취임 1년이셨는데요. 지난해를 평가하신다면?
지난해는 박근혜정부 5년간의 농정 밑그림인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만들고,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농업재해보험대책 등을 추진했습니다. 30년 넘게 농촌경제연구원에서 연구를 했지만 실전에 닥치니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더군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다만 아직 농업인들과 국민들이 성과를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그동안 뿌린 씨앗을 거두고 성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입니다.


그렇다면 올해 가장 중점을 두실 부분은 역시 체감 부분일까요?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의 중점 정책방향은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입니다. 새 정부 2년 차니까 이젠 뭔가 달라진 모습을 국민들께 보여드려야겠다는 것이구요. 또 하나는 올해 쌀 관세화 등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도 농업인들이 자신감을 갖고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올해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바탕으로 하되, 그중에서도 3개 부문 9개 과제를 중점 추진할 것입니다. 농업의 6차산업화를 촉진하고, ICT 등 융복합을 확대하며, 소득과 복지 향상에도 집중할 것입니다. 기초연금이나 농지연금 등 농업인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계속적으로 제공하려 합니다. 유통구조도 직거래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개선하고요.


올해는 일하는 방식도 바꾸겠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요.
네. 우선 돈을 제대로 쓰자는 겁니다. 지난해 농업 분야 예산이 13조5천억원가량 됩니다. 이쪽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유관기관 포함 10만명이 넘습니다. 농가가 115만가구니 10만은 적은 숫자가 아니죠. 이 자원을 좀 알뜰하게 쓰자는 거죠. 누수 현상, 재정투자사업 관리 부실, 중복 지원의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농정의 주인인 지자체, 마을, 농업경영체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선해 나가고 정부는 그런 노력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려 합니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농식품부 운영에도 해당되는 것인가요?
물론이죠. 우리 부 운영에서도 성과 지향의 경쟁하는 방향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꿔나가려 합니다. 꼭 해야 될 과제들을 설정하고 어떻게 성과를 올리느냐를 각종 인사고과라든지 승진 등에 반영하는 거죠. 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없는 집에 시집온 며느리’란 말을 자주 해요. 농업이라는 어려운 집, 해결해야 할 것은 많고, 돈은 제한돼 있고, 우리는 이런 집에 시집온 며느리인데 살림하면서 시어머니가 떡 해먹자면 해먹고, 시누이가 엿 사먹자면 사먹는다면 당장은 좋겠지만 남는 게 없는 것이죠.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좀 참읍시다.”라고 얘기하고, 한푼 두푼 아껴놓았다가 논도 사고, 돼지도 키워 소 만들고, 이렇게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돼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인기가 떨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곤란한데(웃음). 하지만 인기가 문제가 아니고 지금 욕먹더라도 나중에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해야죠.


인터뷰 첫 질문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요즘 가장 큰 이슈는 그야말로 AI 아니겠습니까? AI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최고 전문가로 구성된 역학조사위원회에서 중간보고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 AI는 철새로 인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AI 위험요인인 철새가 날아가고 농가 차단방역과 현장방역관리를 통해 확산을 차단하면 추가 발생은 없을 거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와 있는 철새들이 대체로 시베리아에서 온 북방철새들인데요. 그 새들이 완전히 떠나면 좀 진정되는 기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하지만 베트남 등의 남방철새들이 올라올 때도 그 시점이거든요. 그래서 1차적으로는 철새의 움직임을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AI 종식을 위한 근원적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농가의 철저한 차단방역, 지자체의 현장방역 관리 강화 및 범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 등 방역 역량을 최대한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AI 상황이 진정되는 대로 발생 및 전파경로, 방역을 하면서 느낀 점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방역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하려 합니다. 방역조치에 협조해 피해를 입은 농가에는 제대로 보상한다는 원칙 아래 AI가 반복 발생하는 농가에는 살처분 보상금을 감액 지급함으로써 농가의 자율적인 방역활동을 촉진하는 방안을 검토할 생각입니다. 위험지구 내 가금농장의 신규 진입을 제한하면서 기존 농장이 이주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하려 합니다. 또한 철새 이동경로 파악, 경보시스템 운영 등을 위해 AI 관련 국제공동연구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친환경 축산 등으로 축산업 체질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구요. 여기에 국가동물방역통합시스템(KAHIS), 즉 카이스나 기초통계를 정비해 앞으로는 정확하게 타깃만 포격해서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그래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도 개발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폭설, 가뭄 등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면서 농작물재해보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만, 자료를 보니까 지난해 농가의 보험가입률이 19% 수준에 그치고 있던데요.
그것도 많이 늘어난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13% 정도였어요. 농작물재해보험을 시작한 지 13년이 되는데 말이죠. 지난 1년 사이에 제도를 정비하고 상품을 다양화해서 19%로 높아지긴 했는데 물론 안심할 수준은 아니죠. 사실 보험료의 절반은 중앙정부가, 25%는 지자체가 부담하니까 당사자들은 25%만 내면 되는데, 농민들이 아직 재해보험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보험에 가입한다 해도 재난이 없으면 돈을 날리는 게 아니냐 하는 인식이 있죠. 그래서 우수사례를 책자로 제작·보급하고, 현장설명회 등을 통한 현장 밀착형 홍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험의 공공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농업정책보험공단 설립을 추진합니다.


현재 농업경영체 등록정보 일제갱신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농민들이 이 사업에 꼭 동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우리나라에 농가는 115만이라 하지만 영농법인, 농업회사법인 등을 다 합해 대략 150만 경영체라 합니다. 정부의 7가지 직불금과 면세유 그리고 300가지가 넘는 정책사업들이 이들 150만 경영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 보자면 ‘나는 이러한 지원을 한 번도 못 받았어.’ 하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다섯 번, 열 번 받는 분들도 있어 보이구요. 이런 부분들을 한 번 정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한마디로 한정된 농업예산이 엉뚱하게 쓰이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등록정보를 통해 비농업인 지원이나 중복·편중 지원을 예방하고 면세유 적정 배정에도 활용하는 등 누수요인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농업인 증명이 쉬워지고, 각종 직불금 신청이 통합돼 편의도 향상될 겁니다. 농지, 영농규모, 농산물 생산과 유통 등 등록정보를 활용해 농가 유형별 맞춤형 서비스도 가능해질 것으로 봅니다. 저는 이것을 스마트 농정이라 하는데, 정말 ‘비정상의 정상화’ 측면에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영세ㆍ고령농이 농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이분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영세·고령농은 제가 취임하면서부터 했던 얘기입니다. 앞으로는 창조, 소통, 배려의 농정을 해야 한다는 거죠. 이전 정부까지는 돈 버는 농정을 강조했어요. 하지만 일 년에 천만원어치도 팔지 못하는 분들에게 유통구조 개선해라, 수출경쟁력 높여라 하는 것은 그분들에게는 현실에 맞지 않는 얘기죠. 그래서 그동안 영농에 애쓰신 영세·고령농이 노후에 편안하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농촌 사회안전망을 내실화하고, 작지만 체감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확대하려 합니다. 가령 마을공동홈이란 게 있어요. 시골에 가면 노인분들 혼자 사시잖아요? 돈 아까워 겨울에 불도 안 때고, 밥도 잘 안 해 드세요. 이런 노인분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도록 마을회관이나 빈 집을 수리하고 지원해주는 겁니다. 공동급식시설, 작은목욕탕 등 공동이용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처럼 어르신들이 자신을 위해서 돈을 안 쓰시거든요. 그래서 무엇보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그분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특히 농촌에 계신 70∼80대 노인들은 1960∼1970년대 어려웠던 시절에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고생해서 자식 공부시켜 도시로 보내 산업화를 이룬 분들이잖아요? 그분들이 살 만해진 지금도 자기를 위해선 돈을 쓰지 않는 거죠. 저도 부모님께 전화해서 “식사하셨습니까?” 하면 “먹었다. 고기도 먹고 잘 먹었다.” 하시는데 사실은 자식들 걱정하지 말라고 말로만 그러시는 것입니다. 전기세 아까워서 낮에는 마을회관 가서 종일 앉았다가 저녁에 집에 와서는 조그만 전기장판 깔고 누워 있는분들이 우리 부모님들이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 배려의 농정은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농민과 소비자 모두가 직거래 활성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변 상권과의 갈등, 품질ㆍ규격 차이 등 선결 과제도 있는데요.
농산물 직거래는 유통구조를 ‘생산자는 더 받고, 소비자는 덜 내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직거래는 기존 유통경로와의 경쟁을 통해 유통구조 전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가령 지난해 정부가 추진한 ‘로컬푸드 직매장’, ‘제철꾸러미’와 같은 유형의 직거래 사례는 소비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다만 주변 상권과의 갈등이나 품질 등의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의견을 수렴해 보완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올해는 온·오프라인 직거래를 확충해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 합니다. 또 연말까지는 ‘(가칭)농산물 직거래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직거래 활성화의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자 합니다. ‘포스몰(Pos-Mall)’도 9월까지 구축해 슈퍼마켓 등의 중소상공인이 편리하게 농산물 B2B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 계획입니다.


한중 FTA로 인한 농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하고 있는 대책은 무엇인지요?
양허제외 등이 가능한 초민감품목군에 농산물을 우선 고려해 협상에 임하고 있으며, 개방의 폭을 줄이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농업경쟁력 제고를 통해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보완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먼저, 한미·한EU FTA 등 기존 FTA 대책을 평가해 미비한 점들을 보완하려 합니다. 한중 FTA는 주로 밭작물에 영향이 예상되는 만큼 기계화 등 밭농업 발전대책과 정책금융 개선 등 농업의 체질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한중 FTA를 거대 수출시장 개척의 계기로 활용해 나간다는 방침입니다. 대중 수출유망품목을 발굴·육성하고 수출 장애요인을 없애 제2파프리카 육성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한류와 연계한 마케팅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활동이 활발하시던데요. 평소 뉴미디어나 소통에 대한 관심이 높으신 편인지요? 바쁜 와중에 어떻게 시간을 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농업이라는 게 자고 일어나면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산불이 나고 AI가 터지는 등 어떤 상황이 올지 예상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런저런 상황에 대해 적어도 장관만큼은 어떻게 이해를 하고, 어떤 전략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 국민들을 덜 불안하게 하는 것 같아요. 일종의 방향제시라 할까요. 그런 점에서 페이스북과 같은 SNS나 현장에서 소통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때에 따라선 정책을 홍보할 필요도 있어서 페이스북을 활용하고 있는데요. 사실은 쉽지 않습니다. 시간 내기도 그렇고, 글을 쓰더라도 얼마나 읽어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어요. 그렇더라도 저는 뭐 뚜벅뚜벅 걷는 시골 이장님처럼 하고 싶은 마음인 거죠.


지금 풍채나 말씀하시는 것도 이장님과 비슷하십니다.
기자들이 저보고 촌동네 이장 같다고 하긴 해요. 하하. 이장님처럼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 그런 공감이 중요한 건 저에게나 국민들에게나 마찬가지라고 봐요. 농업·농촌이 어려운 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그런 가치는 여전히 소중한 겁니다. 또 농촌은 앞으로 온 국민의 삶터나 일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께서 어려움에 처한 농업·농촌을 지켜주시면 그것이 바로 국민 여러분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요, 앞으로의 삶터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 중 재미있던 기억은 없으십니까? 어렵고 힘들었을 때 어떻게 헤쳐나오셨습니까?
대학을 대구에서 다녔는데, 변두리 지역인 ‘성당못’에 넝마주이들이 살았어요. 거기서 야학을 몇 년 했죠. 넝마주이들이 휴지나 고철 등을 줍는 사람들이어서 제대로 씻지도 않았고 아무 것도 없었죠. 야학하러 가면 저희끼리 깡통에 밥을 얻어놓고 먹다가, 그 밥을 ‘모라이’라고 부르는데, “선생님 식사 안 하셨죠? 같이 모라이 드시죠.” 그러는 거야. 그런데 그 안을 보면 남들이 먹다 버린 찐빵, 짜장면, 식은 밥, 김치, 이런 것들이 한 덩어리로 섞여 있어요. 그걸 시커먼 숟가락으로 한 술 퍼주는데 받아먹어야 되나 고민인 거라. 주저하면 한 명이 이래요. “선생님 같은 분이 이런 거 먹겠냐. 치워라 고마. 우리나 먹자.” 그래서 그걸 받아먹고 야학을 했었는데, 그러다가 군대 가려고 검사를 받아보니까 폐결핵 판정이 나온 겁니다. 그게 제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해프닝의 발단이 된 거죠. 그때 폐결핵을 앓으면서 차라리 잘됐다, 농사나 짓자 하고 2월에 졸업하고 시골집에 내려갔어요.


멀쩡히 대학 졸업하고 시골집에 있는 게 영 불편하셨을 텐데요. 부모님도 마찬가지셨겠구요.
기껏 공부시켜 놓았더니 농사짓는다고 와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셨겠죠. 그럭저럭 날들을 보내고 있다가 5월쯤 됐나요. 하루는 들판에서 보리를 말리려 널어놓고 있는데 비가 오는 거야. 그래서 뒤집었어요. 며칠 뒤에 그걸 묶어서 가져오려 하는데 또 비가 와요. 당시 보리가격이 형편 없었거든요. 또 뒤집을까 하다가 신경질이 나서 비도 피하지 않고 그냥 리어커 옆에 앉아 있었어요. 그랬더니 웬걸 비가 갑자기 우박으로 변하더니 난리가 났어요. 급하게 옆 과수원으로 뛰어가다가 그만 흙탕물에 벌러덩 넘어진 겁니다. 몸은 까지고 옷도 진흙으로 더러워져 정말 가관이었죠. 그런 몰골로 집에 오는데 동네사람들이 저 집 아들 논 팔아서 공부시켰더니 꼬라지가 저 모양이 됐다고 수군대는 거예요. 그날 밤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얘야. 내가 평생 죽기보다 못한 이 고생을 하며 산 것은, 돈 되는 거라면 똥 묻은 거라도 팔아서 모은 것은, 너는 어디 시원한 데, 여름 같으면 에어컨 나오는 데서 편하게 살라고 한 것인데, 네가 지금 이러고 다니면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 아! 그 말씀이 백 마디 어떤 꾸지람보다도 제가 뭘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겁니다. “정신 차리자. 부모님이 농촌에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도 잘 살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봐야겠다. 공부하자.” 이렇게 된 거죠. 그게 대학원이었고 농촌경제연구원에도 들어가게 된 거고. 그때가 제 삶의 큰 기로였던 것 같습니다.


몇 십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농업ㆍ농촌은 잘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어려웠던 시절에 지금의 어르신들이 죽기살기로 일해 현재 우리나라를 만들었지 않습니까? 그분들을 잘 배려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자주농정, 주인농정을 해야 합니다. 1970년대 말 정부지원이나 자본 등 아무 것도 없던 때 농업 근대화를 추진해서 농가소득이 도시근로자소득을 앞선 적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지금처럼 정부가 이 정도 지원도 하고 경제가 발전했을 때 그야말로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자조·자립하고 협동하면서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포함해서 잘 살아보자는 것이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피 어딘가에 들어있는 DNA, 우리도 한번 해보자, 다시 한 번 도약해보자고 하는 DNA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 농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WTO, FTA 체제 아래에서 살아남는 길이기도 합니다. 정부와 농업·농촌, 나아가 국민 모두가 이런 각오를 다시 새롭게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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