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후속조치 및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이하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심의·의결했다. 이번 에너지전환 로드맵에서는 현재 가동 중인 24기의 원전을 2038년까지 14기로 축소하는 등 장기간에 걸쳐 원전을 감축한다는 정부 정책을 확정했다.
에너지전환 로드맵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후속조치와 함께 발표돼 정부가 공론화위원회의 정책권고를 바탕으로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졸속으로 결정했다는 비판과 오해가 일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공론화과정에서 정부는 에너지전환은 공론화와 별개 사안이며, 대통령 핵심공약이고 국정과제로 채택된 확고부동한 정부 정책이라는 것을 일관되게 공표해왔기 때문이다.
더불어 일각에서는 에너지전환을 독일과 같이 의회에서 법률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내각책임제인 독일과 달리 대통령제이면서 행정권한이 정부에 있고 에너지정책에 대해서도 「에너지법」(에너지기본계획)과 「전기사업법」(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정부가 원전을 비롯한 에너지공급 구조(mix)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행정부가 에너지전환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며 기존 법체계 내에서 추진할 수 있다.
안전·환경에 대한 인식변화와 기술발전으로 원전 감축 추세
에너지정책의 기본 목적은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며 환경친화적인 에너지수급 구조를 실현하는 것이다. 즉 수급 안정성, 경제적 효율성, 친환경성 등 3가지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정책은 경제·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법률·예산 등에 투영돼왔다. 원전은 오랫동안 수급 안정성과 경제적 효율성에 기여해왔음에도 최근 안전과 환경에 대한 인식변화와 기술발전에 따라 선진국을 중심으로 원전을 감축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 스리마일섬, 구소련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거치면서 원전이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기술이라는 인식에 큰 변화가 있어왔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부터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과정에서 원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됐으며, 심지어 지난해 9월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국민들의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즉 안전성이라는 에너지수급의 가장 중요한 전제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원전의 장점이었던 수급 안정성과 경제적 효율성도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원전의 비중이 높은 상태에서 2013년 하반기에 발생한 원전 납품비리로 원전들의 가동이 중단돼 전력수급에 위기를 가져온 사례는 원전이 수급안정성을 담보하기보다 오히려 수급의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편 에너지 분야 기술발전으로 인해 원전의 경제성도 재평가되고 있다. 전원별 투자의 기준이 되는 균등화발전원가(LCOE) 관점에서 보면 2020년대 중반이면 태양광과 풍력이 원전보다 경제적인 발전원이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환경적 측면에서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어떻게 건설할지 사회적 합의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월성, 고리 등 노후화된 원전의 방사성폐기물이 조만간 포화상태가 되는 심각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을 중심으로 원전을 감축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에너지전환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제조업 강국이면서 에너지의 대외의존도가 70% 이상인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22년까지 원전을 단계적으로 완전 폐쇄할 계획이며, 지난해에는 재생에너지가 발전량 중 30%로 가장 비중이 높은 에너지원이 되는 등 에너지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원전국가인 프랑스도 2015년 7월 원전 비중을 75%에서 2025년까지 50%로 감축하는 에너지전환법을 제정했다. 올 1월 대만도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같이 OECD 국가의 71%가 원전을 없애거나 감축하기 위한 에너지전환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 7%에서 2030년 20%까지 확대
우리 정부의 에너지전환은 긴 호흡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단기간에 원전을 인위적으로 감축하지 않고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보다 긴 기간에 걸쳐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것에 맞춰 순차적으로 추진한다.
구체적으로는 계획 중인 6기의 원전은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고,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노후화된 원전에 대해선 수명연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월성 1호기는 전력수급 안정성 등을 고려해 조기 폐쇄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국무회의에서 정부정책으로 확정된 에너지전환은 올해 말 수립될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2018년에 수립될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될 예정이다. 정부는 에너지전환정책 추진과정에서 한국수력원자력 등 사업자가 지출하게 될 적법하고 정당한 비용에 대해선 기금 등 여유재원을 활용해 보전한다는 것을 국무회의 안건에 포함해 의결했다.
이와 같은 에너지전환 로드맵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현재 24기인 원전은 2022년 28기로 최대가 된 후 노후 원전의 폐로에 따라 단계적으로 감축돼 2031년에 18기, 2038년에 14기가 될 것이다.
에너지전환정책에 따라 정부는 원전감축에 대응해 현재 7%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에 20%까지 확대한다. 폐기물·바이오 중심에서 태양광·풍력 등 청정에너지를 중심으로 전환하는 한편, 소규모 태양광사업에 협동조합·시민 중심의 전국적 국민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또한 계획입지제도 도입을 통해 입지난을 해소하고 관계 부처 및 공공기관과의 협업사업도 확대할 예정이다. 이 같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구체적 추진방안이 포함된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은 올해 말까지 수립·발표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에너지정책은 대규모 장치산업인 에너지산업의 자연독점적 성격과 중앙집중적 구조를 반영해 추진돼왔다. 하지만 에너지수급 구조를 결정하는 안전성·안정성·경제성·환경성 등의 변수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국가마다 속도와 방법은 다르지만 변화의 방향은 원전을 감축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원전 중심 전력공급체계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무리 없이 전환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개인이나 국가나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후손과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선 당장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