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으로 분야 간 경계가 희미해지는 융합시대가 본격화되고, 코로나19 사태로 그 변화의 속도가 한층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우리 산업구조도 신속히 재편돼야 하나 기존 산업에 맞춰 설계된 낡은 규제체계가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신산업의 출현과 성장을 제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글로벌 상위 100개 스타트업 중 13곳은 우리나라에서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신산업은 산업 간 경계를 허물며 빠르게 발전하는 반면 규제개선은 단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이른바 ‘규제지체 현상(regulatory lag)’이 심화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규제·법제 심사 시 네거티브화 엄격 심사
이러한 문제에 대응해 국무조정실은 기존 규제에도 불구하고 신산업·신기술 시도가 가능하도록 ‘선허용?후규제’ 원칙하에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혁신의 실험장을 마련했다. 또한 포괄적 네거티브 전환, 선제적 규제혁신 로드맵 수립, 신산업 현장애로 해소 등을 통해 규제정비 시스템을 혁신하고 현장의 애로를 신속히 해소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그 결과 2019년 1월부터 시행된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2020년 말 기준 총 364개 사업이 승인되면서 9,801억 원 투자 유치, 396억 원 매출 달성, 1,742명 고용 증가 등 상당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산업 규제혁신 제도가 아직 초기 단계여서 이해·가치 갈등이 첨예한 핵심규제 개혁에 한계가 있고 기업의 체감도도 높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선제적·체계적으로 규제를 정비해 규제혁신의 성과를 확산시키고 체감도를 제고하기 위해 ‘제1차 신산업 규제정비 기본계획(2021~2023년)’을 마련했다. 이 계획은 「행정규제기본법」에 근거한 법정계획으로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 의결을 거쳐 지난 12월 10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확정·발표됐다. 이 계획을 통해 신산업 규제정비 기본방향을 설정하는 한편, 규제혁신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핵심 분야를 집중 정비하기로 했다.
이번 기본계획을 통해 설정된 신산업 규제정비의 기본방향은 ‘도전적·상생형·선제적 규제정비’다. ‘도전적 규제정비’를 위해서는 규제 샌드박스와 규제 네거티브화를 확대해 선허용-후규제 원칙을 확실히 정착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규제 샌드박스를 ICT, 산업융합, 금융, 규제자유특구, 스마트시티 등 기존 5개 분야에서 연구개발(R&D), 모빌리티를 추가한 7개 분야로 확대하고, 지원조직을 정규화한다. 특히 규제 샌드박스 승인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실증특례 결과 안전성이 확보되고 법령정비의 필요성이 인정된 경우 특례기한을 기존 2+2년에서 추가 연장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또한 제도 시행 2년을 맞아 사업 승인과 발굴은 물론 해당 사업을 가로막고 있던 규제 자체의 정비를 속도감 있게 진행할 계획이다. 규제 네거티브화를 위해서는 규제·법제 심사 단계에서 네거티브화 적용 여부를 엄격히 심사하고, 규제혁신 로드맵 등과 연계해 분야별로 전환과제를 발굴·추진한다.
‘상생형 규제정비’는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첨예하거나 사회윤리적 가치가 충돌하는 분야를 대상으로 갈등 수준별 조정모델을 적극 활용해 추진한다. 사회적 파급력이 큰 이슈는 목요대화 등 국무총리 주재 회의를 통해 공감대 형성을 우선 추진하는 한편, 갈등이 지속되거나 지연되는 과제들은 국무조정실장 주재 회의 등을 통해 관계부처 간 추진방향을 조속히 정리한다. 한걸음모델, 해커톤,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도 적극 활용해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단계적 제도화를 추진한다.
기술발전 등 예측해 규제 미리 정비하는 선제적 규제혁신 로드맵 확대·업그레이드
‘선제적 규제정비’를 위해서는 신제품·신기술에 대한 규율체계가 없어 시장 활성화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미리미리 규제를 정비해 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기술발전 및 시장동향 예측을 통해 산업 표준이나 안전기준 등 규제를 미리 정비하는 선제적 규제혁신 로드맵을 확대하고 업그레이드한다. 인공지능(AI) 법·제도·규제 정비 로드맵은 지난 12월에 이미 마련했고, 연내 바이오헬스·자율운항선박 로드맵도 수립한다. 기존에 수립한 자율주행차, 드론, 친환경차,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로봇 등 5개 분야 로드맵도 자율주행차를 시작(올 상반기 예정)으로 원칙적으로 2년 주기로 순차적으로 재설계해나갈 예정이다.
이러한 기본방향을 토대로 5대 분야 20개 핵심 신산업을 선정해 집중 정비하기로 했다. 집중 육성 중인 신산업 중 규제혁신 파급력이 높은 분야를 대상으로 기업·민간단체 의견수렴,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협동연구(과학기술정책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 한국법제연구원), 부처협의 등을 거쳐 대상 분야와 과제를 선정했으며, 지난해 7월 발표한 한국판 뉴딜계획의 기본축인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의 성과가 신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규제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DNA산업 분야는 ①빅데이터 ②AI ③지능형 로봇 ④핀테크, 비대면산업 분야는 ①VR·AR ②원격교육 ③디지털콘텐츠, 기반산업 스마트화 분야는 ①스마트도시 ②스마트그린산단 ③SOC 스마트화 ④자율주행차 ⑤드론 ⑥공유경제, 그린산업 분야는 ①신재생에너지 ②친환경차 ③녹색 인프라 ④친환경 농어업, 바이오의료산업 분야는 ①디지털 헬스케어 ②유전자 검사·치료 ③신의약품·의료기기로 각각 구성돼 있다. 또한 각 핵심 신산업별로 3~5개 추진과제를 마련해 총 67개 추진과제를 포함하고 있다(p.51 참조).
향후 과제별 소관 부처에서는 연간 시행계획을 수립해 연도별 규제정비 종합계획에 포함시켜 과제를 추진하게 되고, 국무조정실에서는 이행상황을 점검·관리하게 된다. 신산업 규제정비 기본계획이 신산업의 성장을 막고 있던 규제의 빗장을 활짝 풀어 우리 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가는 힘을 키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