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철강산업은 글로벌 수요 정체 및 공급과잉, 신흥국의 기술 추격, 국내외 환경 규제 등으로 경쟁력을 위협받고 있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철강 수요는 향후 연 1% 내외의 성장률을 보이며 정체될 전망이지만, 중국·인도 등 후발국들은 첨단 설비를 경쟁적으로 확대하며 글로벌 공급과잉을 일으켜왔다. 한편 우리나라는 초대형 ‘고로’ 중심의 조강생산 체제를 구축하며 수출 중심으로 성장해왔지만 고로는 이산화탄소를 대량 배출해 탄소중립 시대에서의 지속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디지털 전환은 이러한 종합적 위기 상황의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으며, 글로벌 철강사들은 앞다퉈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 철강 업계의 디지털 전환 수준은 어떨까? 우선 철강 생태계는 철광석 및 철스크랩(고철) 등을 녹여 쇳물을 생산하는 상공정과 압연, 도금, 용접 등 가공을 거쳐 최종 철강제품을 만드는 하공정으로 구분된다. 상공정과 하공정을 모두 보유한 일관제철소는 과거부터 전산화 시스템 등을 구축했고 선제적으로 인공지능(AI)을 접목하려는 시도를 이어왔으나, 전기로를 보유한 중견 철강 기업들의 경우 아직 디지털 전환의 초기단계에 있다. 그러나 이들은 디지털 전환을 위한 자체 인프라와 조직, 연구개발(R&D) 역량 등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 AI로의 전환에 있어 잠재력 높은 기업군이다. 업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하공정의 경우 현재 기초적인 스마트공장 인프라를 도입하는 단계로 빅데이터를 본격적으로 수집·분석해 AI를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은 아직까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디지털 전환은 비단 이들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철강산업이 처한 여러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민관합동 지능형 시스템 개발 등 전기로를 AI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 추진
디지털 전환으로 첫째, 조업자의 감(感)의 영역이었던 제조 과정을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조업으로 전환함으로써 최적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철강 생태계 내에서 취약했던 원료·하공정 등 부문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강건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생산성을 혁신하고 품질을 제고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전문 강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전환은 철강산업의 안전·환경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작업자의 위험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경고하며, 철강 제조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은 데이터를 통해 정밀하게 추적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과 문제의식하에 산업통상자원부와 철강 업계, AI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긴밀히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 ‘철강산업 재도약을 위한 스틸–AI 추진방향’을 도출했다.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통해 2025년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철강 강국으로 도약하는 비전을 세우고, 이를 위한 3대 전략방향과 6개의 세부과제를 제시했다.
첫 번째 전략은 철강산업의 제조혁신 구현이다. 철강을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생산하는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철강 제조공정별 맞춤형 디지털 전환을 추진할 계획이다. 우선, 고로는 친환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고도화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포집·재활용 기술 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핵심기술에 대한 보호를 강화할 계획이다. 전기로는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파급효과와 잠재력이 높은 설비다. 민관합동으로 지능형 시스템을 개발하며 전기로를 AI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가열·압연 공정은 다수 철강사가 보유한 기본 설비인 만큼 민간 주도의 기술·노하우 협력을 활성화하며, 가공 공정은 체계적인 지능화 로드맵 수립 후 성장을 지원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철강에 특화된 특수 센서도 주목하고 있다. 센서는 디지털 전환의 핵심 인프라가 되는바 수입산에 의존하는 철강 데이터 수집·분석 장비의 자립화를 통해 수입 대체효과를 창출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조성하고자 한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원료·자원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철스크랩은 탄소중립 시대에 특히 더욱 중요한 철강 자원이나, 현재 적정 규격·등급에 대한 정보 없이 비체계적으로 유통되고 있어 시장 비효율성이 높다. AI 기술을 활용해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품질을 측정하고 거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철강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또한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산업 특성상 에너지 효율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빅데이터·AI에 기반해 철강 업종의 전력 계통·시스템을 정밀 진단해 맞춤형 공장에너지관리시스템(FEMS)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주목하고 있다.
철강 데이터의 효과적 활용 기반 조성, AI 등 활용해 안전·환경 문제 해결
두 번째 전략은 철강산업 생태계의 지능화다. 철강 생태계가 데이터를 교류하며 제조 과정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개방형 빅데이터 플랫폼을 조성하고자 한다. 철강은 제조업 공급사슬의 첫 단으로, 데이터 관점에서도 제조 데이터가 발생하는 첫 번째 단계다. 철강 분야 간, 나아가 철강사와 수요 기업까지 제조 데이터를 연계시키고 교차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생태계가 공진화되도록 추진하겠다.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기반 조성도 필수적인 과제다. 철강 데이터를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표준화 체계를 수립할 계획이고, 빅데이터·AI를 현장에서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검토 중이다. 또한 선도 기업들이 쌓은 디지털 전환의 경험과 노하우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연대·협력을 확대해나가겠다.
마지막 전략은 철강산업의 영원한 난제라고 할 수 있는 안전과 환경 문제의 해결이다. 이는 철강 기업들이 공통으로 직면하는 고질적인 문제로서, 디지털 기술의 접목이 문제해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조업 현장에서 작업자 안전 보호를 위해 AI를 활용한 안전작업 가이드, 개인 착용형 스마트 디바이스 등이 활용될 수 있으며, 친환경 전환 가속화를 위해서는 미세먼지 발생원 추적 모델링시스템 구축, 제철소 발생 부산물의 실시간 성분 모니터링 등을 추진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제들은 철강 업계가 기술을 상호 벤치마킹하고, 필요시 공동 기술 개발을 추진하는 등 업계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스틸–AI는 시대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제 디지털 전환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산업경쟁력을 보전하기 위해 반드시 가야할 길이며,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철강 업계는 연대와 협력을 통해 디지털 전환의 길을 좀 더 빠르게, 효과적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철강 디지털 전환 연대’가 발족됐고 국내 대표 철강 기업들과 ICT 업계 등이 참여해 디지털 전환을 위한 협력 MOU를 체결하며 협력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스틸–AI는 이제 첫걸음이며, 앞으로 좀 더 구체화하고,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효과적인 방안을 함께 고민한다면 좀 더 올바른 길을 빠르게 걸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