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과학연구의 상용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대되기 시작했다. 한 국가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지식과 인적자본의 축적이 중요하다는 새로운 경제성장 이론들도 그 즈음 발전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춰 주요 선진국들은 요소투입형 경제에서 혁신주도형 경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다양한 기술혁신 정책과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국가 R&D 투자 확대, 산학연 기술협력, 공공기술 이전·사업화 촉진 등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됐던 과학기술 혁신정책의 큰 흐름이었다.
과학기술 혁신이 결실을 맺으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혁신정책들이 공간정책, 지역정책과 통합돼 추진된 것이 이른바 클러스터 육성정책이다. 이는 대학, 연구기관, 기업 등 다양한 혁신주체를 공간적으로 결집시키고 네트워크를 강화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창출과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국가의 새로운 혁신성장 거점을 조성하려는 정책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일본의 쯔쿠바, 스웨덴의 시스타 등은 1990년대 각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했던 대표적 클러스터들이다.
탄소중립 10대 핵심기술에 대한
창업·기술사업화 집중 지원
우리나라도 과학기술 기반의 혁신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2005년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시작됐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집적돼 있는 대덕연구단지를 혁신성장의 새로운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대덕연구개발특구에는 대표적인 공공기술 기반 창업 모델인 ‘연구소기업’ 제도가 도입됐으며, 벤처·기술창업 생태계를 위한 재정·조세·금융·행정 지원과 정주환경 개선을 위한 인프라 확충 등이 추진됐다.
대덕연구개발특구 모델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2011년부터는 대구, 광주, 부산, 전북 등 4대 광역권으로 연구개발특구가 확대됐으며, 2018년에는 지자체와 협력해 기술핵심기관을 중심으로 소규모·고밀도의 지역혁신 거점을 조성하는 강소특구 모델이 도입됐다. 현재까지 연구개발특구로는 대덕특구, 4대 광역특구, 12개 강소특구 등 17개가 지정돼 정부의 정책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 15년간 연구개발특구가 혁신성장과 지역발전의 거점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음이 여러 통계지표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먼저 연구개발특구에는 출연연(52개), 지역거점대학(34개), 민간연구기관(44개) 등에서 전국 박사인력의 46.8%가 신기술 창출을 위한 연구개발 활동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이들이 수행한 연구성과는 기업으로 이전·사업화되고 있는데 2019년 기준 공공기술 이전 건수의 40.1%(4,678건), 공공기술 이전료의 44.3%(972억 원)가 연구개발특구 내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공공 연구개발 및 사업화 활동이 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연구개발특구에 입주한 기업의 양적·질적 성장도 매우 우수하다. 2005년과 비교해 볼 때 연구개발특구의 기업 수는 9.8배(2005년 687개 → 2019년 6,782개), 총매출액은 21배(2005년 2조5천억 원 → 2019년 54조6천억 원), 고용인력은 9.7배(2005년 2만3천 명 → 2019년 22만9천 명)로 크게 확대됐다. 특구 내 기업들은 이처럼 양적 성장을 이룰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고기술 중심의 미래 혁신기업으로의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공공기술을 이전받아 창업한 연구소기업이 1,108개(16.3%)이며, 공공연구기관의 기술이전을 받은 기업 수는 1,500개 이상이 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바이오헬스, 미래자동차 등 미래 신성장 분야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혁신기업 비중도 2019년에 이미 20%를 넘어섰다. 이와 같은 성과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뿐만 아니라 공공연구기관과 민간기업 간 협력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연구개발특구가 혁신클러스터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지난 4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를 거쳐 ‘제4차 연구개발특구 육성 종합계획(2021~2025년)’을 확정 발표했다. 이번 제4차 종합계획은 탄소중립·디지털혁신 등 급변하는 대외적 과학기술 혁신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연구개발특구 내부의 혁신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마련했다. 2025년까지의 연구개발특구 비전은 ‘K뉴딜 시대, 대한민국의 대전환을 이끄는 국가대표 R&D 혁신 메가 클러스터로의 도약’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4대 정책과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 연구개발특구를 저탄소·디지털 경제를 선도하는 핵심지구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탄소중립 10대 핵심기술에 대한 창업·기술사업화를 집중 지원하고, 고탄소 특구기업의 저탄소화를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데이터 기반 기술사업화 시스템 구축, 디지털 트윈 활용기술 지원,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프로그램 도입 등 특구기업의 디지털 전환도 지원해 나간다.
다음으로, 벤처·창업하기 좋은 기업생태계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창업 기반이 우수한 연구개발특구 내 대학·출연연을 창업 거점기관으로 지정하고 특구펀드·액셀러레이터를 활용해 기술창업을 전방위로 지원한다. 아울러 연구소기업, 첨단기술기업 등은 기업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을 통해 성장을 촉진하고, 전통 제조기업의 경우에는 공공기술 이전을 통한 제품·공정 혁신이나 신사업 분야로의 업종 전환을 지원해 나갈 예정이다.
특구 내 신기술 실증특례제 안착시켜
신기술사업화 등에서의 각종 규제 완화
셋째, 규제에 자유로운 혁신환경을 조성해 나간다. 올해 3월 연구개발특구에 도입된 신기술 실증특례 제도를 안착시켜 연구개발이나 신기술사업화 전 과정에서 예측되는 각종 규제를 완화해 자유로운 혁신활동을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연구과제 관리, 특구기업 입주 관리, 연구시설 보완 등 규정에 따른 각종 행정부담도 수요자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개선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상생·협력을 위한 개방형 네트워크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특구 내 산·학·연 네트워크 활동을 지원해 혁신주체 간의 협력을 통한 신기술 개발과 신산업 창출을 촉진해 나간다. 나아가 연구개발특구의 성과가 지역에서 결실을 맺도록 지자체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연구개발특구의 글로벌화를 위해 해외 혁신클러스터와의 교류도 활성화할 예정이다.
이번 계획이 원활히 실행된다면, 2025년에는 특구 내 기업들의 연간 매출액 100조 원, 특구 내 공공연구기관들의 연간 기술이전 건수 8천 건, 코스닥 등록기업 150개사 등의 목표가 달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정부는 연구개발특구가 국가의 혁신성장과 지역의 미래먹거리를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혁신클러스터로 도약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