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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해설
전 세계 14번째로 탄소중립 비전 법제화
이승준 환경부 탄소중립TF 팀장 2022년 05월호


최근의 기상이변은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로 새롭게 명명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빈번해지고, 그 재해 횟수는 지난 20년간 1.7배 늘어났다. 지난해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한 기상재난은 기후변화가 개도국을 넘어 선진국까지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8월 미국 중서부를 이례적으로 강타한 허리케인 아이다는 100명에 달하는 소중한 인명을 앗아갔고, 80조 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초래했다. 서유럽 전역을 강타한 대홍수 또한 약 240명의 인명과 53조 원의 재산 피해를 가져왔다. 

기후변화, 선진국·개도국 모두가 풀어야 하는 과제

기후변화는 전 인류가 살아가는 터전인 지구의 문제다. 사실 온난화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는 우리 날숨에서 끊임없이 배출되는 만큼 인체나 생물체에 직접적 위협을 가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지구 시스템인 대기의 평형상태에 문제를 일으켜 기온을 상승시킨다. 이는 고전적 명제인 공유지의 비극이 전 지구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복잡하게 얽힌 고차방정식을 떠올리게 한다. 인류사적 관점에서 기후변화의 누적적 주범이 선진국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기후변화를 둘러싼 책임 논쟁은 동태적 관점에서 재해석되며 한층 복잡해진다. 여전히 개도국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게다가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은 역설에 직면하기도 한다. 전환 과정에서 화석연료 채굴 감소로 공급은 줄어든 반면,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는 에너지와 소재 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져 ‘그린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화석연료 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발표하고 있다. 

이처럼 복잡한 난제인 데다 그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최근 4월에 승인된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3실무그룹 보고서는 “현재까지 제출된 감축목표로는 1.5도 지구온난화 제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감축해야 한다”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과 정책제언을 담고 있다.

심화되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국제사회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2월 미국은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했고, EU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Fit For 55’ 입법패키지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는 세계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억제하기 위해 전 지구적 의지를 결집하기로 했고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 글로벌 메탄서약 등 국제사회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나라도 2020년 12월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이어 거버넌스 체계인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범하는 한편, 법적 토대가 되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도 제정했다. 지난해 10월에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로 높이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온실가스 감축시책의 근거 규정하고 기후위기 시대 헤쳐나갈 정책수단 제시

이러한 노력 끝에 지난 3월 25일, 탄소중립 비전과 온실가스 감축 의지를 담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시행됐다. 탄소중립 비전을 선포한 지 근 1년 4개월 만의 성과이자, 산더미처럼 놓여진 탄소중립정책의 디딤돌이 돼줄 이 법의 의의와 추진과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국가 비전과 추진체계를 제시한다. 전 세계 14번째로 탄소중립 비전을 법제화했으며, 고에너지 제조업 중심의 불리한 산업구조에도 불구하고 2030년 NDC를 40%로 상향하는 등 탄소중립 추진 의지를 명시했다. 든든한 재정 기반이 될 기후대응기금도 마련했다. 

둘째, 기후변화 대응의 한 축인 온실가스 감축시책의 근거를 규정했다. 이에 근거해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과 ‘기후변화영향평가’를 도입해 국가 계획과 대규모 개발사업, 국가 재정 전반에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고, 탄소중립 도시, 녹색교통, 탄소흡수원, 국제감축사업 등 부처별로 특화된 감축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셋째, 기후위기 적응과 정의로운 전환 등 기후위기 시대를 헤쳐나갈 정책수단을 제시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 전 인류적 차원에서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라면, 개별국가 차원에서는 심화되는 기후재난에 적응하는 것이 보다 실제적인 문제다. 기후위기 감시·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한편, 취약성 평가에 기반한 취약지역의 재해예방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한 정의로운 전환원칙에 기반해 저탄소 산업구조로의 전환 과정에서 위기에 처한 전통 제조업과 그 업종에 성실히 종사해 온 사람들에 대한 보호시책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넷째, 탄소중립을 추진하기 위한 핵심수단 중 하나로 녹색성장을 지향한다. 녹색성장은 그간 상충적으로 이해돼 온 환경과 경제의 새로운 조화를 추구하는 개념이다. 그간 정부는 탄소에 가격체계(pricing)를 적용하는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고, 미국·EU에서 도입하려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산업계 또한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을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ESG 경영, 재생에너지 100%를 의미하는 RE100 가입 등 녹색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이제 정부와 산업계는 탄소중립이라는 동일한 비전 아래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녹색 금융·경영·기술 등 녹색성장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지난해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 모든 이가 지구와 빈자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여 주기를, 신이 인류에게 선사한 지구를 위한 의미 있는 희생을 약속해 주기를” 당부하며 “기후변화는 인류 최대의 위협이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2차 세계대전 후 국제사회가 보여준 연대가 필요하다”는 성명과 함께 국제사회의 연대를 촉구했다.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은 인류세(Anthropocene) 시기를 관통하는 시대적 사명이다.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화 시대를 넘어서는 새롭고도 창의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우리 사회 또한 머리를 맞대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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