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개국 중 60위, 61개국 중 61위, 63개국 중 63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평가 회계투명성 부문에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가 기록한 순위다. 명목 GDP 세계 10위, 주식시장 시가총액 세계 13위인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상에 비해 무척이나 초라한 성적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힘을 합쳐 2017년 전격적인 회계개혁을 단행했다. 감사인(회계법인)의 독립성과 기업의 회계에 대한 책임성을 대폭 강화하는 각종 제도가 총망라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대한 법률」(이하 「외부감사법」) 등 3개 법률 개정이 바로 그것이다. 상장회사를 감사할 수 있는 회계법인의 자격을 제한하는 ‘상장사 감사인 등록제도’도 이때 도입됐다. 국민경제와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장회사는 보다 감사 품질이 높은 회계법인이 감사하는 것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감사 품질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들을 뽑아 이들에 대한 등록 요건을 설정했고, 등록 후에도 그 요건을 유지하도록 했다. 제도가 시행된 2019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총 40개의 회계법인이 상장사 감사인으로 진입해 그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들에 대한 감리(조사)를 실시해 본 결과 상당수의 회계법인이 등록 요건 유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에는 감사보고서 발행 전에 사전심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상장사 등록 감사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한 회계법인도 있었다. 사전심리는 회계 품질 확보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뛰어난 회계사도 실수를 할 수 있는 만큼, 감사보고서가 발행되기 전에 제3자가 이를 검증해야 감사 실패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한 절차도 생략하는 회계법인이라면 상장사를 감사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 이에 회계법인의 품질관리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보다 실효성 있는 행정조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상장사 감사인 등록 요건 위반한 회계법인,
지정 감사인 시장에서 배제될 수 있어
2019년부터도 상장사 감사인이 등록 요건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는 있었지만, 등록 요건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은 부족했다. 등록 요건을 유지하지 않는 회계법인에 대해 정부가 상장사 감사인 등록을 취소할 수는 있지만, 위반의 정도가 심각하지 않은 경우까지 일률적으로 등록을 취소하는 것은 행정법상 과잉금지 원칙 위배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등록 요건을 형식적으로만 갖춰 놓고 실질적으로는 위반하는 회계법인들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는 개선 권고, 위반내역 외부 공개 등 회계법인의 변화를 유도하기에는 부족한 수단들밖에 없었다.
그러나 「외부감사법」 시행령 등 개정안 시행으로 올해부터는 등록 요건을 위반할 경우 큰 불이익이 부과되는 만큼 과거처럼 형식적으로만 등록 요건을 갖춰놓지는 못할 것이다. 등록 요건을 유지하지 않는 회계법인은 정부가 ‘감사인 지정제도’에서 배제할 수도 있게 됐기 때문이다. 감사인 지정제도는 2017년 회계개혁의 한 축으로 정부가 상장회사의 감사인을 지정해 주는 제도다. 6년 연속으로 자유롭게 감사인을 선임한 상장회사는 이후 3년은 감사인 지정을 받아야 하며, 회계기준을 위반하거나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돼 분식회계의 위험성이 큰 기업은 자유수임 기간과 관계없이 감사인을 지정받는다.
2021년 기준으로 상장회사 중 약 50%가 감사인 지정을 받고 있으니, 외부감사 시장에서 지정 감사인 시장은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감사인 지정은 회계법인의 규모에 따라 지정되는 기업을 안분(按分)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앞으로 등록 요건을 위반하는 회계법인은 배분받는 기업의 숫자를 위반의 정도에 비례해 차감할 것이다. 위반의 정도가 심각할 경우 아예 배정을 받지 못하는 회계법인도 나올 수 있다.
회계개혁 완성은 회계법인의 엄격한 자기통제에서 출발
회계개혁이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의 IMD 회계투명성 순위가 크게 오른 것은 사실이다. 2021년에는 37위를 기록해 2017년에 비해 스물여섯 계단이나 올랐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비해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회계개혁은 이제 막 시장에 정착돼 가는 과정에 있고,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회계개혁을 고도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회계법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회계법인의 높은 감사 품질은 회계개혁 완성의 마지막 단추다. 정부가 3만여 개가 넘는 외부감사 대상회사의 회계를 모두 일일이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감사 품질을 끌어올리는 것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자명하다. 회계법인이 스스로 엄격하게 자기통제를 수행해 감사 품질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상장사 등록 감사인 등록 요건에 대한 제재 수단을 신설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정부가 회계개혁 이후 5년을 기다렸음에도 회계법인의 자발적인 자기통제 강화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제도 개선은 회계법인의 자발적 변화를 촉구하는 정부의 메시지다. 상장사를 감사하는 회계법인들이 스스로 변한다면 정부가 굳이 새로운 제재 수단을 활용하지 않게 될 것이며, 그것이 바람직한 균형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