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 OECD는 지난 7월 5일 38개 회원국의 5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9.6% 상승해 3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물가 상승의 주요인으로 지목된 것은 에너지와 식품이며, 특히 에너지 가격 상승률은 35.4%를 기록했다. 미국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높은 폭의 금리인상을 단행하고 있으나, 에너지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금리인상은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춰 심리에 의한 추가적인 물가 인상을 방지하는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은 국제 에너지시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장기화되고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고,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산 에너지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중국, 인도 등지로 공급되고, 유럽은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미국, 중동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공급망 재편뿐 아니라 국제정치 역학관계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비판한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가 살해된 사건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냉랭한 관계를 지속해 왔으나, 이러한 대립 관계를 잠시 접어두고 국제 에너지시장 안정화를 위한 석유 증산을 적극 요청 중이다.
각국의 탄소중립을 향한 의지도 더욱 강해지고 있다. 기록적인 더위와 추위가 반복되고 있고, 이 같은 기후변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는 이제 윤리적 관점뿐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탄소중립에 접근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비중에서 에너지(전환 부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 세계 73.2%, 우리나라 86.9%로 매우 높은 점을 감안하면,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서는 에너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탄소중립과 함께 에너지안보 부각되며 재조명된 원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비중 확대
세계 각국은 이 같은 세계경제 환경에 맞춰 에너지정책 전반을 재정립하고 있다. 기존의 에너지정책이 기후변화에 대응한 ‘탄소중립’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탄소중립뿐 아니라 ‘에너지안보’까지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특히 원전의 경우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은 기존의 정책을 변경해 추가 확대 정책을 발표하고 폐로 계획을 선회하기로 했다. 미국 역시 원전을 무탄소에너지원(CFE; Carbon pollution Free Electricity)에 포함시키고, 세계 원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우방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간 감축 대상이었던 석탄발전 역시 단기 전력공급 안정을 위해 활용이 확대되고 있으며, 자국 내 생산이 가능한 재생에너지의 지속적인 보급을 위한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세계 에너지시장의 불확실성에 따른 혼란을 겪고 있다. 가스·석탄 가격 상승으로 전력 도매가격이 크게 올랐으며, 유류세 인하 등 전방위적 조치에도 휘발유 가격이 3천 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탄소중립 이행도 여전히 피할 수 없는 과제다. 2020년 우리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정,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 마련 등 탄소중립을 적극 추진해 왔다. 탄소중립 목표는 지속 추진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수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함께 원전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대외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안전성도 보강되면서 무탄소전원으로서 원전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러한 세계경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마련해 지난 7월 5일 발표했다. 이번 에너지정책 방향은 원전의 단계적 감축을 명시한 이전 정부 정책을 대내외적으로 대체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구체적으로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은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안보 강화와 에너지 신산업 창출을 위한 5대 정책 방향을 담았다. 첫째는,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믹스 재정립이다.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재개하고 계속운전을 추진해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재생에너지는 현실성·수용성을 감안해 보급하고, 석탄발전의 합리적 감축과 함께 무탄소에너지의 활용을 높여나갈 것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방향성에 기반해 에너지믹스를 재정립할 것이며, 올해 내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내년 3월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등 에너지·기후 관련 계획을 통해 구체화해 나갈 예정이다.
둘째, 튼튼한 자원·에너지 안보 확립이다. 정부는 그간 자원비축량을 확대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등 시장 안정화를 지속 추진해 왔으나, 90%가 넘는 높은 에너지 수입의존도로 인해 대외충격에 여전히 취약한 구조다. 이에 새로운 자원안보체계를 구축해 안정적 공급선을 확보하고, 민간 중심으로 해외자원개발 산업 생태계를 회복시키고자 한다. 석유·가스 등 전통자원뿐 아니라 핵심광물까지 전략비축을 확대하고, 재자원화를 활성화해 전 주기적으로 에너지 공급망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산업·건물·수송 3대 부문의 에너지 수요효율 혁신하고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원칙 확립
셋째, 시장원리에 기반한 에너지 수요효율화와 시장구조 확립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수요효율화를 에너지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지목했으며, 이는 입지, 계통, 수용성 문제로 에너지 공급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에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정부는 산업·건물·수송 3대 부문의 수요효율 혁신을 이뤄 현재 OECD 최하위 수준인 에너지효율을 G7과 걸맞은 수준으로 제고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시장원리에 따른 전력시장 구조도 확립할 것이다. 그간 전력시장제도, 배출권거래제 등 에너지·환경 시장의 경직성으로 다양한 혁신기술 사업화 및 에너지 신산업 창출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에 경쟁과 공정의 원리에 기반한 전력시장 구축,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원칙 확립, 전력시장과 요금 거버넌스의 독립성·전문성 강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
넷째, 에너지 수출산업화 및 성장동력화다. 일감 조기창출로 원전 생태계의 활력을 회복하고,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원전을 수출산업화할 계획이다. 태양광, 풍력에 대해서는 차세대 기술을 조기에 상용화하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신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수소는 세계 1등을 목표로 핵심기술에 대한 국내 자립도를 높이고, 생산·유통·활용 등 전 주기에 걸친 생태계를 조기에 완비할 계획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한 에너지 혁신벤처 육성 등 에너지 신산업 육성을 통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다섯째, 에너지 복지 및 에너지정책의 수용성을 강화한다. 에너지는 생활에 직결된 필수재인 만큼 소외돼 피해를 보는 계층이 없도록 하는 전방위적인 안전망이 중요하다. 이에 에너지바우처,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 지원 등 에너지 복지 확대를 통해 에너지 취약계층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주민, 지역과의 협력을 통해 에너지의 수용성을 제고하고, 안전하고 걱정 없는 에너지 기반을 구축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