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한국 최대 해운선사이자 세계 7위 해운기업인 한진해운이 파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이어져 온 불황과 글로벌 선사들 간의 ‘치킨게임’ 여파를 넘지 못한 것이다. 국가경제에서 무역의 비중이 60%를 차지하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파산을 넘어 국가 수출입 물류 근간이 흔들리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해운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책임지는 한편, 연간 378억 달러(2008년 기준)를 벌어들이는 대표적인 외화가득산업이자 국가기간산업이다. 그러나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상대국인 미국과 유럽으로 향하는 정기선 선복량은 반토막이 났고, 해운산업 매출액도 1년 사이 10조 원 이상 줄어들었다. 특히 한진해운이 40년 넘게 구축한 세계 168개 항만의 물류망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화물운임이 많게는 60%까지 상승하는 소위 ‘코리아 프리미엄’ 현상이 발생했다.
정부는 한진해운의 파산 이듬해인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운 재건에 나섰다. 먼저, 해운산업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정책금융기관인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고 우리 선사가 글로벌 선사와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HMM(옛 현대상선)의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 20척 발주를 지원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한국 해운산업은 신속하게 경쟁력을 회복했고 HMM은 세계 8위 규모의 선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다. 각국에 봉쇄 및 격리 조치가 시행되면서 소비재 수요가 폭증하게 돼 전 세계적으로 해상운송 품귀현상이 발생했다. 글로벌 물류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한국 해운산업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우리 기업들을 위해 임시선박을 투입해 수출화물의 적기운송을 지원하고 중소기업 전용 선적 공간을 배정하는 등 수출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그 결과 지난해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출액은 역대 최대치인 1,171억 달러(약 139조 원)를 기록할 수 있었다. 정부의 해운 재건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한편 해상운송 품귀현상과 주요 항만의 정체로 글로벌 해상운임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평균 811이던 상하이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2021년 3,792로 무려 다섯 배가량 상승했다.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해운업계가 팬데믹 기간에 초호황을 맞이했다.
그런데 중국의 봉쇄정책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전 세계 주요 국가의 고강도 긴축기조로 불황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해상운임은 다시 급락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5,110까지 올랐던 SCFI가 11월 18일 기준 1,306을 기록해 올해 들어서만 운임이 75%가량 하락했고, 글로벌 컨테이너 물동량 역시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해운업계에는 과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지속된 불황이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해상운임이 팬데믹 이전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 당장 우리 해운산업에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부는 ‘제2의 한진사태’ 재발을 방지하고, 앞으로도 해운산업이 우리나라의 수출입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지원대책을 마련했다.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운임정보 적용된
한국형 운임지수 개발해 선사·기업에 제공
지난 11월 4일 발표한 ‘시황 변동에 따른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핵심은 해상운임이 하락하더라도 우리 해운선사들이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첫째로 정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최대 1조 원 규모의 위기대응 펀드를 조성해 불황기 선사의 구조조정, M&A 등 고위험 사업을 지원한다. 또한 정부는 2026년까지 최대 1조7천억 원가량을 투자해 선박 50척을 확보하고 국적선사에 임대하는 공공 선주사업을 추진한다. 불황기가 다가오면 선박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로 인한 리스크를 공공이 함께 분담하고 우리 선사들의 선박이 해외에 헐값으로 매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열악한 중소선사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기 위해 투자 및 보증 요율을 인하하는 3천억 원 규모의 특별지원 패키지도 마련했다. 이러한 안전판 구축을 통해 정부는 우리 선사들이 불황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할 계획이다.
둘째로 해운시황에 대한 분석과 대응 역량을 고도화한다. 선종과 항로, 기업 규모별로 선사를 세분화해 경영 여건을 분석하고, 경제 상황과 시황 변동이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맞춤형 위기지원 방안을 설계하는 ‘선사군별 위기대응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아울러 국내 현실에 맞는 운임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존에 우리 선사들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던 상하이컨테이너 운임지수를 대체하는 ‘한국형 운임지수(KCCI)’를 개발해 공표한다. 한국형 운임지수는 지난 11월 7일 출시돼 매주 월요일 우리 선사들과 수출입 기업에 운임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로 해운산업의 중장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도 함께 마련했다. 먼저, 수출입 기업과 해운선사 간 자율적 상생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우수 선주·화주 인증제를 확대·개편해 상생 노력이 큰 기업에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선사와 중소기업 간 장기 운송계약 체결도 본격적으로 추진해 중소기업의 물류비용 절감을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선박 환경규제에 대비해 우리 선박의 친환경 전환 지원을 확대하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그린 쉬핑 챌린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와 함께 지난 11월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우리 부산항과 미국 타코마항을 잇는 항로를 완전 무탄소 연료추진 선박으로만 운항되는 녹색해운항로(Green Shipping Corridors)로 구축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이 밖에 해외 주요 거점항만에 터미널과 공동물류센터 등 물류네트워크를 확보하고 해운인력인 선원을 안정적으로 양성하는 한편, 자율운항선박 개발 등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했다.
이러한 대책을 통해 우리 정부는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우리 선사가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가용 자산과 역량을 총동원해 나갈 것이다. 또한 2027년까지 우리나라의 원양 수송능력을 20% 확대하고, 중소기업의 물류비를 30% 절감하는 등 수출입 물류도 든든히 뒷받침해 우리 해운산업이 국가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