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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해설
북극점에서 남극 내륙까지, 대한민국의 새로운 극지 여정이 시작된다
노재옥 해양수산부 해양개발과장 2023년 01월호

 

 
남극 빙하의 수천 미터 아래에는 호수가 있다. ‘빙저호(氷底湖)’라고 불리는 이 호수는 수백만, 수천만 년간 햇빛이 들지 않는 고립된 환경으로 존재해 왔는데 놀랍게도 이러한 환경에서도 생명체는 살아남았다. 빙저호 탐사는 곧 우주와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를 알아낼 열쇠가 돼줄 것이다. 이처럼 극지는 지구의 끝단에 위치해 있지만 인류의 미래 문제를 풀어나갈 실마리이기도 하다.

빙저호뿐만 아니라 남극 내륙에 있는 수천 미터 두께의 빙하에는 지구의 과거 기후가 그대로 담겨 있어 기후변화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된다. 또 북극에서 빙하가 녹으면 우리나라에 이상 한파 현상이 나타나는 등 극지 변화는 전 세계 기후와 해수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편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림에 따라 새로운 물류루트인 북극항로의 상용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고, 안전한 북극항로 운항을 지원하기 위한 기술개발 등 새로운 산업의 성장도 기대되고 있다.

극지 선도국으로서의 역량 입증과 기후변화 대응 같은
시대적 소명 부여받은 우리나라


이러한 극지의 중요성을 인지한 주요 선진국들은 일찍이 극지에 과학기지를 건설하고, 경쟁적으로 극지 탐사와 기술개발을 추진해 왔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극지 과학연구는 선진국 대비 약 30년 늦은 1988년에 세계 18번째로 남극 상주기지인 ‘세종과학기지’를 건립하면서 시작됐다. 과학기지는 남극의 빙하와 환경, 생태계를 연구할 수 있는 근거지가 됐으며, 극지에 대한 연구역량을 비약적으로 증대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02년 북극 다산과학기지를, 2014년엔 남극 제2기지인 장보고과학기지를 건립했다. 과학기지가 육상의 연구근거지라면, 쇄빙연구선은 바다의 연구근거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9년 첫 번째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를 건조했고, 이를 통해 남북극의 바다를 누비며 연구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은 극지연구의 핵심인프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은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도출하고 있다. 2003년에 세계 최초로 남극에서 미래자원인 가스하이드레이트의 매장량을 산출했고, 2014년에는 북극 해빙(海氷) 감소가 동아시아 지역의 잦은 한파와 폭설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연구성과와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로 우리나라는 이제 극지 거버넌스에서도 신뢰받는 중요한 파트너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다. 지금까지의 위상은 ‘추격자’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며, 보다 성큼성큼 도약해 ‘선도자’ 그룹에 속해야 한다. 극지 선도국은 과학연구를 바탕으로 전 지구적 현안 해결에 기여하면서 미래 극지산업을 주도해 나가는 국가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우주로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린 역량을 보유한 과학기술 강국으로, 극지에서도 인류 미지의 영역을 누비면서 선도국으로서의 역량을 입증하는 것은 물론 기후변화 대응 등 인류의 생존과 진보를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시대적 소명을 갖고 정부는 지난 11월 ‘제1차 극지활동 진흥 기본계획(2023~2027년)’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우리나라가 극지활동 선도국이 되기 위한 국가전략의 성격을 지닌다. ‘국민을 위한 극지 선도국가’를 비전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5대 추진전략을 담고 있으며 대표 과제들은 ‘극지 프런티어 과제’로 명명해 집중 추진할 계획이다.

첫째, ‘남북극 미지의 영역’에 대한 탐사를 확대한다. 먼저 2030년까지 남극 내륙에 세계 6번째 기지를 건설한다. 기존 남극기지는 해안에 위치해 내륙에서만 할 수 있는 연구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선도국들은 내륙에서 아주 오래된 빙하를 경쟁적으로 탐사하고 있으며, 내륙기지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연구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연구근거지가 될 것이다.

2027년부터는 두 번째 쇄빙연구선인 ‘차세대 쇄빙연구선’이 세계 최고 수준의 쇄빙능력(1.5m/3노트)으로 북극 연구를 전담하게 된다. 기존 쇄빙연구선 한 척으로는 연구수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으며 북위 80도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새로운 쇄빙연구선이 건조되면 극지 연구일수를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또한 북극점을 포함해 그동안 접근하지 못했던 고위도 북극 바다까지 나아가 해빙현장 관측, 북극해 공해상의 수산자원 모니터링 등의 연구가 가능해질 것이다.

극한 환경을 극복하는 각종 기술개발
극지산업은 물론 다른 산업 부문까지 파급 기대돼


둘째 전략은 글로벌 현안인 기후·환경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것이다. 북극에서의 해빙변화가 우리나라 사계절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것은 물론 온난화로 북극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유해 미생물의 위험성을 사전에 파악해 인류에 닥칠 수 있는 위험을 예방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남극 빙하가 녹는 원인을 밝히고, 미래 해수면 상승을 예측한다. 남극 빙하가 모두 녹으면 전 지구 해수면은 약 58m 상승해 우리나라도 침수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전 남극 빙하 관측자료를 확보해 2030년, 2050년, 2100년의 해수면 상승 예측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남극 빙하가 ‘얼마나 빨리’ 녹는지, 전 지구 해수면을 ‘얼마나 상승’시키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셋째,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극지산업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선, 북극 바다에서 운송 가능한 ‘친환경 쇄빙컨테이너선’과 안전운항을 지원하는 기술을 개발해 우리나라 선사들이 북극항로에서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극저온과 강풍 등 극한 환경을 극복하는 통신기술과 무인이동체, 건설기술도 개발한다. 이러한 기술들은 향후 우주나 심해 등 다른 극한지를 탐사하는 기술로도 파급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극한 환경에서 생존한 극지 생물자원을 활용해 항생제와 치매치료제, 항균·면역조절 물질 등 신규 의약물질을 개발함으로써 해양 바이오산업의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넷째와 다섯째 전략은 앞서 언급한 전략들을 추진하기 위한 지원체계 구축이다. 극지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범정부 극지정책협의체’를 구축하고, 북극권 8개 국가와 맞춤형 협력사업을 발굴해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쇄빙연구선과 같은 인프라를 민간에 공유하고 극지 장학사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제1차 극지활동 진흥 기본계획’을 통해 대한민국이 극지 선도국가로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 지구적 해법을 제시하며, 극지산업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미래를 그려본다. 정부는 이번 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해 이러한 미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극지 여정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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