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도심에는 상업시설과 아파트가 결합한 주상복합 건물이 많아지고 낡은 공장이 밀집한 구도심 지역에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는 등 기존 도시에서 볼 수 없던 모습이 나타난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근무형태 다양화, 1~2인 가구 증가 등의 변화로 주거·업무·여가 등이 복합된 공간의 선호가 증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도시계획 체계는 제조업 시대에 마련된 것으로, 주거·상업·공업 등의 기능을 엄격히 분리하는 용도지역제를 근간으로 한다.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에서 도시지역을 주거·상업·공업 지역으로 구분한 이래, 1962년 제정된 「도시계획법」과 2002년 제정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에서 토지의 용도와 밀도를 구분하는 체계가 유지되고 한층 세분화돼 운용되고 있다. 이러한 용도지역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융복합적 도시공간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전 국토의 4.1%에 불과한 시가화된 지역(주거·상업·공업 지역)에 인구의 92%가 거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기능을 갖춘 도시공간을 조성하려면 한정된 공간을 고밀·복합 개발해 ‘압축도시’를 만들 수 있는 유연한 도시계획 수단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지정요건, 구역지정 제안 등이 실제 개발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실효성 강화
정부는 도시계획 체계를 시대변화에 맞춰 개편하기 위해 지난 1월 ‘도시계획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국민의 재산권과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용도지역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공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유연한 제도 운용이 가능하도록 ‘공간혁신구역’이라는 특례구역을 도입하고, 지역의 생활상을 반영할 수 있는 ‘생활권계획’을 제도화한 것이 핵심이다.
첫 번째 핵심과제인 공간혁신구역은 지자체가 각 지역의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세 가지 구역으로 구성했다. 개별 구역은 전면적인 고밀·복합 개발(도시혁신구역), 점진적·단계적 정비(복합용도구역), 도시계획시설의 입체적 활용(도시계획시설 입체복합구역) 등을 위해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먼저, ‘도시혁신구역’은 기존의 「국토계획법」에 있는 ‘입지규제최소구역’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다. 입지규제최소구역은 용도나 밀도 등의 도시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구역으로 2015년에 도입됐다. 하지만 구역 지정요건이 도심, 대중교통 결절지 등으로 제한돼 있고, 주거용도 비율은 40%로 제한돼 사업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 민간이 구역 지정을 제안할 수 있지만 단순 사업제안에 불과했고, 실제 개발을 위해서는 다시 사업 시행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규제가 많아 현재 전국에 다섯 곳만 지정돼 있을 만큼 제도의 활용도가 저조했다.
이번에 도입하는 도시혁신구역은 입지규제최소구역의 장점인 용도 및 밀도의 자유로운 설정 등을 유지하되 실제 개발까지 이어질 수 있게 실효성을 강화했다. 구역 지정요건을 두지 않고 창의적 계획이 필요한 지역에 자유롭게 구역 지정이 이뤄지도록 했고, 주거용도의 비율은 임대주택이나 신공법 적용 등 공공성이 인정되면 50% 이상도 허용해 사업성을 높였다.
또한 민간이 도시혁신구역 지정을 제안해 실제 지정되는 경우, 해당 구역은 「도시개발법」상 도시개발사업 구역으로 지정된 것으로 간주하고 제안자에게 도시개발사업 시행자격을 부여함으로써 구역 지정 제안이 실제 사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했다. 도시혁신구역은 이처럼 도시규제의 제약에서 벗어나 신속한 개발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철도정비창 부지나 공장 이전부지 등과 같은 도심 내 유휴부지에 업무·호텔·주거 등 다양한 시설이 고밀 융복합되는 개발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복합용도구역’은 기존 용도지역을 변경하지 않고도 다양한 용도시설의 설치가 허용되는 구역이다. 현행 용도지역제에서는 도시관리 목적에 따라 주거·상업·공업 등 용도지역을 설정하고 허용하는 시설만 건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엄격한 용도 구분은 원격근무를 위한 주거지역 내의 거점오피스, 주거·업무·공업 기능이 융복합된 첨단산업단지 등의 설치를 어렵게 한다. 또 기존 용도와 다른 시설의 설치가 제한돼 노후·쇠퇴 지역의 정비가 어려워지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복합용도구역은 기존 용도지역에서 허용되지 않던 다양한 기능의 시설이 복합될 수 있게 해 용도를 새롭게 하는 전면적인 재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해당 지역의 점진적·단계적 전환을 유도한다. 노후 공업지역에 청년 창업시설을 설치하고, 주거시설과 문화시설을 복합해 활력을 불어넣는 등 점진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
한편 이 두 구역은 큰 폭의 도시규제 완화 수단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도시의 계획적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어 몇 가지 남용방지 장치를 마련했다. 첫째, 지자체가 ‘공간재구조화계획’을 수립해 인근 지역의 주거·교통 등 기반시설에 미치는 영향과 기존 도시계획과의 정합성을 검토하게 한다. 또 광역적 영향과 국가정책과의 정합성도 검토될 수 있도록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자체장이 승인·결정하도록 해 지자체의 자율성이 발휘될 수 있게 한다. 둘째, ‘공공기여’ 제도 적용이다. 이는 도시혁신구역 등 공간혁신구역 지정에 따른 지가상승 예상액을 감정평가를 통해 합리적 수준에서 환수하는 방식이다. 도심 내 시설 이전부지 개발이나 역세권 복합개발 등에만 적용되던 제도를 공간혁신구역까지 확대 적용한다.
관광·산업 등으로 체류하는 생활인구 고려해
도시 계획·개발하도록 지역맞춤형 특례 부여
마지막으로, ‘도시계획시설 입체복합구역’은 체육시설, 대학교, 터미널 등 도시계획시설에 다양한 시설을 합쳐 융복합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현재 도시계획시설은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도심 내 주요거점에 있으나, 기존 용도지역 제약에 따른 용적률·건폐율·입지제한 등으로 유휴공간이 있어도 다른 시설의 복합이나 입체적 활용이 어려웠다.
이와 같은 제약 없이 도시계획시설을 다양한 시설과 복합할 수 있도록 하고,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용적률과 건폐율을 2배까지 상향할 수 있게 개선하는 것이 도시계획시설 입체복합구역의 핵심이다. 시설 단위의 복합이 자유로워져 도시 내 다양한 규모의 시설에 적용할 수 있다. 광역교통망을 갖춘 대도시권은 도로와 철도를 지하화하면서 상부부지를 고밀·복합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고, 중소도시는 공공청사에 각종 공공시설 및 편의시설을 복합함으로써 지역거점 형성이 용이해진다. 도시 규모와 관계없이 압축도시 조성을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 도시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 핵심과제는 ‘생활권계획’의 제도화다. 기존의 도시계획이 물리적 시설과 거리, 공간구조 중심의 계획이었다면 생활권계획은 지역의 생활상을 반영한 ‘n분 생활권’ 조성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도시계획 수단이다. 일상생활에 중점을 둔 공간계획을 수립해 거시적인 도시기본계획과 미시적이고 규제적인 도시관리계획의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 계획이 시행된다면 지자체 필요에 따라 권역 내 개발방향이나 생활인프라 조성계획, 밀도·높이 관리방안 등을 포함한 지역맞춤형 도시계획 수립이 가능해질 것이다. 특히 지역 내 관광·산업 등의 요인으로 일정기간 체류하는 ‘생활인구’를 고려해 도시를 계획·개발할 수 있도록 특례를 부여할 계획이다.
도시계획은 그간 국토이용의 근간이자 우리나라의 경제·사회 성장을 뒷받침해 온 중요한 제도다. 다가올 미래에 대비한 도시계획 혁신을 통해 도시경쟁력을 높이고, 국민 삶의 질도 한층 높일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