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외환전산망 직접 연결, 시스템·인력 확충 등 인프라 갖추면 기업뿐 아니라 개인 고객 대상으로 환전업무 수행 가능
1999년 「외국환거래법」 제정 이후 우리 경제와 외환거래는 양적·질적으로 크게 확대·발전해 왔다. 먼저 양적으로 우리 경제 규모(GDP 기준)는 1999년 4,973억 달러에서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1조6,515억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유학·여행·개인이전소득 지급은 72억 달러에서 424억 달러로 5배 이상 늘었으며, 거주자 해외증권투자 규모는 80억 달러에서 5,778억 달러로 70배 이상 증가했다. 이와 함께 핀테크 등 외환거래와 관련해 새로운 지급·결제 수단 및 거래방식이 나오고 새로운 금융업종도 등장하는 등 질적인 측면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에 맞춰 우리 외환제도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외환거래 수요가 커지고 다양화된 상황에서 원칙적인 사전신고 제도 운영, 복잡한 거래 절차 등 과도한 외환규제가 경제 전반의 비효율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 경제주체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월 10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 규제혁신 태스크포스’ 회의를 개최하고 ‘외환제도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정부가 경제 규제혁신의 일환으로 이번 정책을 발표한 것은 우리 대외 부문의 위기대응 역량 등을 감안할 때 지금이 선진적 외환제도로의 전환을 시작하기에 적합한 시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2월 기준 4,232억 달러로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2월 4,092억 달러보다 많고, 총외채 대비 단기외채 비중도 지난해 3분기 기준 26.8%로 지난 10년 평균인 27.9%에 비해 양호한 수준이다.
무증빙 해외송금 및 자본거래 사전신고 면제 한도 10만 달러,
기업의 외화차입 신고기준 5천만 달러로 확대
이번 ‘외환제도 개편 방향’은 대외건전성 유지를 위한 일부 외환규제의 존속이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우리 경제 수준에 맞지 않는 상당수 낡은 규제를 조속히 개선하는 데 중점을 뒀다. 다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 수십 년간 이어온 관행 등을 감안해 2단계로 나눠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1단계는 「외국환거래법」 시행령과 ‘외국환거래규정(기획재정부 고시)’ 등의 개정을 통해 국민과 기업의 외환거래상 불편을 조속히 완화하는 데 역점을 뒀다. 이를 위해 무증빙 해외송금 한도 및 자본거래 사전신고 면제 한도를 연간 5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확대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국민은 연간 10만 달러 한도 이내에서 별도 서류 제출, 자본거래 사전신고 없이 해외송금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은행의 사전신고가 필요한 자본거래 유형을 현행 111개에서 65개로 대폭 축소할 예정이다.
또한 기업들이 외환거래 과정에서 느끼는 불편과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대규모 외화차입 신고기준을 연간 3천만 달러에서 5천만 달러로 확대한다. 현재 기업이 연간 3천만 달러를 초과하는 외화자금을 해외로부터 차입하는 경우 기획재정부에 사전신고해야 한다. 이번 외환제도 개편으로 기업이 연간 5천만 달러 이하로 외화자금을 차입한다면 사전에 신고할 필요가 없게 된다.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이후 보고 절차를 간소화해 해외투자 부담도 경감한다. 현재 국내 기업이 해외법인을 설립하거나, 10% 이상 해외법인의 지분을 취득하는 등 해외직접투자를 하는 경우, 사전신고 외에도 변경신고(사유 발생 전), 변경보고(3개월 내) 등 수시보고와 매년 1회 정기보고 등 사후보고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수시보고 제도가 폐지돼 연 1회 정기보고로 통합되고, 정기보고 내용도 대폭 축소돼 기업의 사후보고 부담 및 외국환은행의 관리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금융회사 간 경쟁 촉진을 통해 소비자 편익을 제고하고 외환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고객 대상 환전서비스 등 외환업무 범위를 확대한다. 현재 자기자본이 4조 원 이상이고 금융위원회로부터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4개 종합금융투자사업자만 기업을 대상으로 환전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나, 앞으로는 외환전산망 직접 연결, 시스템·인력 확충 등 인프라를 구축할 경우 모든 종합금융투자사업자(2023년 3월 말 기준 9개)가 기업뿐 아니라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환전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증권금융의 스와프시장 참여를 허용해 증권사들의 외화조달 경로를 확대하고, 스와프시장에서의 수급 불균형도 완화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는 외환스와프시장 참여기관이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시중은행, 일부 증권사·보험사 등으로 제한돼 있다.
법 위반 등에 대한 처벌규정도 개선할 계획이다. 현재 2만 달러 이내의 자본거래의 경우 사전신고 의무를 위반하더라도 과태료 등 제재를 부과하는 대신 경고로 갈음할 수 있고, 자본거래의 사전신고 및 사후보고 의무를 위반할 경우 각각 200만 원과 7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며, 10억 원 초과 자본거래 및 25억 원 초과 비정형적 지급의 경우 사전신고 절차를 위반하면 징역 1년 또는 벌금 1억 원 이하 형벌의 적용 대상이 된다. 앞으로는 경고로 갈음할 수 있는 자본거래 신고의무 위반 기준이 2만 달러 이내에서 5만 달러 이내로 상향 조정되고, 사전신고 및 사후보고 위반 관련 과태료 기준금액을 200만 원으로 통일하는 한편, 형벌 적용 대상 기준도 현재 기준의 2배인 20억 원 초과 자본거래 및 50억 원 초과 비정형적 지급으로 상향 조정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외환시장 안정 등을 위한 정부 정책수단의 투명성도 높여 나간다. 현재 대외건전성 위기가 발생하거나 위기 발생이 우려되는 경우 법규에 명시된 자본통제 등의 규정을 근거로 행정지도를 통한 협의 등이 가능하다고 보나 명시적인 규정이 마련돼 있지는 않다. 이번 외환제도 개편을 통해 별도 규정으로 행정지도 등을 명문화해 시장참여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예정이다.
외환규제 체계에 네거티브 원칙 도입해
자본거래 사전신고를 사후보고로 전환
2단계 추진방향으로 정부는 자본거래 사전신고제 전면 개편, 업권별 업무규제 폐지 등 우리 「외국환거래법」상 근본적인 구조 개편이 필요한 과제도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 다만 이런 과제들은 경제·금융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먼저 외환규제 체계에 ‘원칙 허용·예외 규제(네거티브 규율)’ 원칙을 도입해 자본거래 사전신고를 사후보고로 전환하고 해외직접투자에 대한 사전신고 부담을 완화한다. 또한 역량 있는 금융기관의 외환업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은행, 증권, 보험 등 업권별 업무 칸막이를 해소한다. 위기가 발생할 때 정부 조치수단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세이프가드 제도도 정비한다. 이와 같이 「외국환거래법」상 전반적인 구조 개편이 필요한 과제들은 관련 기관·업계·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외환제도발전심의위원회’를 통해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정부는 1단계 과제는 올해 상반기 중 「외국환거래법」 시행령 및 ‘외국환거래규정’ 개정을 통해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2단계 과제는 경제상황을 봐가며 올해 말까지 개편방안을 마련하고, 2024년부터 입법 절차 등을 통해 추진할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민간 전문가 등의 의견도 적극 수렴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