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논의 동향과 공통 가치 종합하는 한편
1990년대 IT 강국으로 도약했던 우리의 경험과 철학도 반영
디지털 리터러시 격차 해소 등 디지털 전반 포괄하고
디지털 자산의 정당한 보상, 글로벌 연대 협력 등 차별화된 원칙과 권리 신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말 처음 출시됐을 때도 그 성능이 놀라웠지만, 지난 1년간 챗GPT가 유발한 변화와 발전 속도는 말 그대로 눈부시다. 전 세계는 지금 디지털이 인간을 단순히 돕고(보조), 인간의 한계 극복을 지원(보완)하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인간과 상호작용하고 함께 살아가는(공존) 디지털 심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디지털 심화 시대, 기존 체계로 해결 어려운 쟁점 발생해 새로운 디지털 질서 정립할 필요성 대두
디지털 기술은 인류에게 풍요와 혜택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이 무한하다. 하지만 디지털 심화의 과정에서 기존의 규범체계에서는 담기 어려운 새로운 이슈와 쟁점들 또한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는 알고리즘의 발전과 방대한 데이터의 학습을 통해 등장하게 됐으며, 기존의 소프트웨어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다양한 서비스를 구현해 내고 있다. 하지만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개인정보 및 저작권 침해 여부, AI가 만들어내는 생성물의 저작권 인정 여부 등과 관련한 새로운 논의 또한 촉발했다. AI가 자동차에 탑재되는 경우에도 고민이 필요하다. 자동차가 인간의 개입 없이 AI를 통해 자율적으로 운행되는 중에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 문제는 앞으로 심도 깊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기준 마련이 필요한 사항이다.
디지털 역량과 격차 문제 또한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접근성·역량의 격차가 곧 사회적·경제적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 구성원에게 충분한 디지털 접근성과 교육이 제공되지 않으면 사회에서 소외되고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바로 서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심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와 쟁점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고, 디지털 혁신을 지속해 그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질서와 규범체계의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많은 석학과 전문가는 디지털 심화의 과정이 과거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일어났던 산업혁명과 20세기 말 미국이 주도했던 정보화 혁명에 비견되는 또 한번의 구조적 대전환이자 인류가 마주한 문명사적 변혁의 과정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인류에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은 ‘뉴욕구상’을 통해 디지털 혁신이 가져오는 다양한 혜택을 수용하면서도 자유·인권·연대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디지털 질서를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B20 서밋(2022년 11월), 세계경제포럼(2023년 1월), 하버드대 연설(2023년 4월), 파리 디지털 비전 포럼(2023년 6월), G20 뉴델리 정상회의(2023년 8월) 등에서 글로벌 석학, 전문가, 기업인 등과 함께 관련 논의를 이어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대통령의 정책 구상과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전 세계 디지털 질서·규범에 대한 문헌분석과 관련 정책 연구를 실시했으며, 대학 총장, 석학, 분야별 전문가, 청년세대, 기업인, 이해관계자 등 폭넓은 의견수렴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를 진행했다. 아울러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자유롭게 새로운 디지털 질서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디지털 공론장을 개설해 운영했다.
그 결과로 올 9월 윤 대통령은 ‘뉴욕 디지털 비전 포럼’을 통해 새로운 디지털 질서가 갖춰야 할 기본 가치와 원칙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린다 밀스 뉴욕대 총장, 마리아 토레스-스프링거 뉴욕시 부시장, 세투라만 판차나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총재 등은 윤 대통령의 연설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글로벌 차원의 새로운 디지털 질서 정립을 위한 연대와 협력 의향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대통령의 비전과 구상을 구체화한 ‘디지털 권리장전’을 9월 25일 국무회의에서 보고했다.
디지털 권리장전은 자유, 공정, 안전, 혁신, 연대 등 5대 기본원칙과 시민의 권리 및 주체별 책무를 6개 장, 28개 조문으로 구성된 헌장의 형태로 담았다. 디지털 권리장전의 제명은 ‘디지털 공동번영 사회의 기본원칙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헌장’이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 국제사회가 함께 추구하고 지켜나가야 할 헌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디지털 권리장전은 주요국에서 발표한 AI·디지털 헌장 선언문(570여 개 조문)을 분석하고 국제사회의 논의 동향과 공통적인 가치를 종합해 반영했다. 이와 함께 1990년대 정보화 혁명의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온라인쇼핑, 신원 확인, 초고속 정보통신망 조기 구축 등 선제적으로 범정부 차원의 규범과 질서를 정립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해 IT 강국으로 도약했던 경험과 철학을 담았다.
전 세계적으로 AI에 의한 가짜뉴스, AI 기술 오남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 등 AI 중심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나, 디지털 전반에 관한 논의는 부족한 상황이다. 디지털 권리장전은 제명에서부터 드러나듯이 디지털 리터러시 격차 해소 등 디지털 전반을 포괄하고 있다. 아울러 국제사회에서도 공감을 얻어 보편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디지털 공동번영 사회’라는 세계 시민이 함께 추구해야 할 미래상을 제시했다. 또한 윤리적·규범적 논의 외에도 디지털 혁신의 촉진을 강조하고 있으며 공공영역에서 디지털 방식을 대체하는 수단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외에도 디지털 자산의 정당한 보상, 글로벌 연대 협력 등 차별화된 원칙과 권리를 신설했다.
범정부 차원의 정책 수립과 법·제도 정비 과정 연계하고 국제사회 공론화 및 논의 이끌 것
디지털 권리장전은 새로운 디지털 질서를 마련하기 위한 기본방향으로서 의의가 있다. 디지털 권리장전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정책 수립과 법·제도 정비 과정이 연계돼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질서가 정립돼야 한다. 정부는 디지털 권리장전을 바탕으로 범정부 차원의 ‘디지털 심화 대응 실태진단’을 추진하고 그 대응방향을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 아울러 유엔, OECD 등 국제사회의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의 성과와 모범사례들을 공유하고 관련 논의를 이끌어나갈 것이다.
세계에 모범이 되는 디지털 대한민국을 구현하고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원대한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정부는 디지털 권리장전을 기본방향으로 해 국민과 함께 다양한 디지털 심화 쟁점들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논의의 과정을 거쳐 모범적인 사례를 창출하고, 국제사회의 논의를 선도하는 ‘디지털 모범국가’로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