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계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것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 흔히 쓰이고 있다. 그만큼 우리 법률이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형벌규정을 많이 두고 있다는 의미로, 형벌적용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거나 과잉범죄 형벌의 형량을 과도하게 높게 적용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경제형벌은 전과자의 양산과 낙인효과 등의 부작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형벌에 대한 공포로 기업인들의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등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실제 조사결과에서도 방대한 형벌규정이 존재함이 드러났다. 2021년 정부의 연구용역에서 전수조사를 통해 414개 경제 관련 법률에서 총 5,886개의 경제형벌규정을 선별한 바 있다. 수많은 법률과 규정에서 입법목적 달성 등을 위해 담고 있는 많은 제재조항이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거나 과도한 측면이 있어 자영업자, 소상공인, 기업인들의 개선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국민들의 개선수요가 큰 경제형벌규정을 집중 발굴해 차질 없이 개선해 나간다는 기조 아래 정부는 경제형벌규정 개선 TF(기획재정부, 법무부, 법제처)를 지난해 7월 출범하고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총 140개 과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아울러 지난 10월 12일에는 제32차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경제형벌규정 개선 TF 3차 회의를 열어 11개 부처, 23개 법률에 관련된 총 46개 과제에 대해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옥외광고물 설치 관련 형벌규정, 벌금 대신 과태료로 전환
이번에는 특히 국민권익위원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 국민의 직접적인 불편이 담긴 국민신문고 민원 데이터베이스(DB)를 분석했고, 이를 통해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규정 개선안을 마련했다. TF에서는 국민신문고의 고충민원을 정밀 분석하기 위해 검색 키워드(형벌, 징역, 벌금 등 형량 키워드와 소상공인, 자영업, 가게 등 업종 키워드 그리고 불만, 부담, 생계, 애로 등 고충 키워드를 종합)를 설정하고,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을 통한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경제형벌 관련 민원을 추출했다. 그 결과 최근 5년간 관련 민원이 2만 건 넘게 확인됐다. 이를 전수조사한 후 핵심 규정 100건을 추출하고 연관 조항을 세부 분석해 개선방안을 도출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범죄 중대성이 낮고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국민이 직접 부담을 느끼는 규정 14개를 발굴했다. 현재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도시지역, 공원이나 공공시설물에 신고되지 않은 광고물을 표시할 경우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국민신문고 DB를 분석한 결과 옥외광고물 설치와 관련된 형벌규정의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옥외광고물이 중요한 영업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해 안전성이나 경관 등을 심각하게 침해하지 않는 광고물의 경우 형벌이 아닌 행정제재로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벌금 대신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 부과로 전환했다.
마찬가지로 국민신문고에 많은 민원이 제기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화비디오법」)의 경우 현재 제한상영가 영화를 관람할 수 없는 청소년을 입장시킨 자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번 개선안에서는 PC방(「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등 유사한 산업의 벌금과 일관되게 형량을 조정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완화한다.
또한 5,886개 경제형벌규정 전체를 대상으로 법제처의 법령입안심사기준에 근거해 경미한 의무위반 사항임에도 과도하게 형벌로 규율하고 있는 규정을 발굴했다. 신고·보고 의무 위반, 행정적 검사·조사 등의 거부·방해 또는 기피, 교육의무 위반, 유사 명칭 사용, 서류 보존의무 및 인력 선임의무 위반 등이 해당 사례로, 이런 사항은 전과자 양산, 낙인효과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행정제재로 전환했다. 하지만 규정 내용, 한국법제연구원·한국형사정책연구원 등 연구기관 검토 의견 등을 고려해 개선 시 입법목적 달성이 곤란해지거나 중대한 법익 침해 우려가 있는 규정은 현행 규정을 유지했다.
이런 절차를 거쳐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항만운송사업법」 등 15개 규정을 개선하게 됐다. 현재 「자본시장법」에서는 투자자나 수익자로부터 장부 서류의 열람청구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한 회사에는 1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시정명령을 한 뒤 이에 불응한 경우에 형벌을 부과하기로 했다.
아울러 대검찰청 DB 분석을 통해 최근 5년간 입건 사례가 없는 「교통안전법」 등 사문화된 규정 10개를 선별해 다른 규정을 활용하는 등 법 정합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했다.
「선원법」, 「채무자회생법」 등 전 산업 분야에
민간의 개선 요구가 많은 법률 중심으로 개선안 마련
한편 한국법제연구원,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중심으로 주요 경제법률 중 환경, 국토, 해양·수산, 공정거래, 산업 등 전 분야에서 민간의 개선 요구가 많은 법률에 집중해 개선이 필요한 법률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선정한 법률을 집중 검토하기 위해 법률별 전문가 워킹그룹을 구성했고, 검토 결과를 토대로 개선안을 마련했다. 이번 법률 단위 개선방안은 각 형벌 완화뿐만 아니라 필요시에는 강화 등 합리적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해 실질적 법익의 제고를 도모했다.
해당 법률 전반에 대한 개선방향 및 규정별 개선방안을 검토한 후에 소관부처 점검을 거쳐 즉시 개선 가능한 규정을 3차 과제에 포함했다. 법무부·법제처 및 소관부처는 비교형량·과잉금지·일관성 등 3대 원칙에 기반해 개선방안을 집중 검토했다.
이번 3차 과제에서는 이와 관련해 「선원법」,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등의 7개 규정을 개선했다. 「선원법」은 피해자와의 합의를 통해 사건 해결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한 「근로기준법」 및 「선원법」상 기타 규정과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퇴직금·유급휴가 미지급 등에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명시적 의사표시를 할 경우 그 의사에 반해 형사소추를 할 수 없도록 한 범죄)의 원칙을 적용했다. 그리고 「채무자회생법」은 사기파산 등 채무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의 형벌이 규정돼 있어 구인 등의 절차에 관한 처벌은 지양하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구인불응은 행정벌로 전환했다.
이번 3차 경제형벌규정 개선 TF의 개선안은 법제처를 중심으로 일괄개정 절차를 거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전에 제출된 1·2차 과제들도 국회 심의를 거쳐 조속히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도 형벌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입법목적은 달성하면서도 경제활동 과정에서 불필요한 전과자 양산 등 부작용은 완화해 국민의 경제활동에 형벌부담을 줄임으로써 각 경제주체들이 자유와 창의를 펼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