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AI의 난제인 초소량 데이터 학습, AI 모델 상호 간 협업, 상식추론, 멀티모달, 뇌신경망 모사 등 인공일반지능 원천기술 확보 추진
- 첨단바이오 기술주권과 잠재력에 주목하고 합성생물학, 유전자·세포치료, 감염병 백신·치료, 디지털헬스 데이터 분석·활용에 대한 임무·전략 제시
첨단기술을 두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도 경제·외교·안보 관점에서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와 50개 세부 중점기술을 선정해 관리·지원하고 있다. 특히 올해 4월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국가전략기술특별위원회와 12대 기술별 조정위원회를 가동했으며, 지난 9월 22일에는 체계적 지원 기반인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도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더해 정부는 기술 분야별 국가의 임무와 구체적 달성방안을 담은 전략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 전략로드맵은 국가가 반드시 달성할 임무를 설정한 후, 확보전략을 하향식(톱다운)으로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개별 부처 단위에서 사업·과제를 기획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부기술을 발굴·나열하는 방식을 탈피하고, 민간과 정부가 함께 경제·안보 관점에서 국가 차원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한다. 다다익선식 기술 백과사전이 아니라, 임무 달성에 필요한 ‘길목’ 기술을 식별하는 우리만의 정밀 지도인 셈이다.
전략로드맵은 12대 기술에 걸쳐 기술블록화와 첨단기술 확보 경쟁이 가속화되는 분야부터 수립하고 있다. 양자, 수소,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모빌리티에 이어 지난 10월 말 제4회 국가전략기술특별위원회에서 ‘국가전략기술 임무중심 전략로드맵 II. 미래혁신 분야: 인공지능(AI), 첨단바이오’가 확정됐다. 여기서는 파괴적인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대표적인 두 분야인 AI와 첨단바이오에 대한 전략로드맵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데이터 및 전력 소모량 50% 이상 절감할 수 있는
고효율 학습모델 개발
지난해 11월 출시된 챗GPT부터 시작된 초거대 생성형 AI는 전문가 영역에서 활용하던 AI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디지털 전환의 변곡점’이 됐다. 현재 AI는 미중을 양대 축으로 성장과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챗GPT를 비롯해 구글(Bard), 메타(LLaMA)와 같은 글로벌 빅테크를 중심으로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고, 중국도 화웨이, 베이징 AI연구원 등이 초거대 AI를 개발하는 등 자국 중심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우리나라는 네이버, LG, KT 등 대기업이 한국어 기반 AI 모델 개발에 성공했고 신생기업도 속속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추격자의 위치다.
AI의 급속한 발전은 알고리즘, 컴퓨팅 성능 등 소프트웨어·하드웨어에 걸친 기술 발달이 원동력이 됐다. 지금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대규모 데이터와 물적 자본을 기반으로 양적 우위를 거머쥔 상황이다. 이번 AI 전략로드맵은 기울어진 경쟁의 판도를 뒤집을 차세대 원천기술에 초점을 맞췄다. 세부적으로 ①효율적 학습 및 인프라, ②첨단 모델링·의사결정, ③산업활용·혁신, ④안전·신뢰 등 4개 중점기술별 전략을 제시했다.
AI 모델링에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뿐 아니라 컴퓨팅 성능과 전력이 소모되며 이것을 최소화하는 것이 효율적 학습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자원 부담을 기존 대비 50% 이상 줄이는 비정제데이터 기반의 기술과 분산형·병렬형 학습 및 클라우드 최적화 기술 등을 개발한다. 특히 첨단 의사결정과 관련해서는 현재 AI의 난제 중 하나인 인간지향적 인공일반지능(AGI) 원천기술 확보를 도전적 목표로 제시했다. 초소량 데이터 학습, AI 모델 상호 간 협업, 상식추론, 멀티모달(텍스트 방식의 질의·답변뿐 아니라 이미지·음성·영상 등 여러 소통방법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개념), 뇌신경망 모사 등을 구현해 글로벌 선도그룹으로의 도약을 추진한다.
ICT 강국이라는 명성에 비해 우리 산업계의 AI 활용은 매우 저조하다. 그 해결을 위해 기업이 손쉽게 도입할 수 있는 전문영역별 특화 서비스형 AI도 개발해 나간다. EU가 제정 중인 ‘AI법’을 비롯한 주요국의 AI 규범 기술블록화에 대응하기 위해 AI 신뢰성 고도화도 핵심 임무로 식별했다. 콘텐츠 권리침해 자동탐지, 편향·오염된 데이터에 대한 강건성 확보와 함께 단순한 결괏값을 넘어 결론도출 과정과 의미, 내재된 취약점을 판단·제시하는 설명 가능한 AI(XAI; eXplainable AI) 기술 확보에 집중한다.
바이오 부품의 설계·생산 효율 최고 10배까지 높이는
합성생물학 기술 확보 등에 집중
첨단바이오의 중요성도 AI에 못지않다. OECD는 「과학기술혁신전망 2023」에서 바이오가 과학기술정책의 안보화 중심에 있다고 평하면서, 특히 생명과학에 공학적 관점을 도입해 인공적으로 생명체의 구성 요소·시스템을 설계·제작·합성하는 합성생물학은 민군 겸용 활용과 고의적 오용 가능성에 대비해 기술주권 확보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후 상존하는 보건안보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보건안보 위기에 신속히 대응하는 역량 함양과 유전체 편집과 같은 이중용도 기술의 자립화가 필수적이다.
첨단바이오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폭발적 잠재력 때문이다. 첨단바이오는 AI·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과 긴밀히 융합하면서 의료 분야의 난제를 해결함은 물론 산업생산성의 근본적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알파폴드·로제타폴드와 같은 AI 기반 분석도구는 그간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단백질 구조 해독을 수 시간 또는 수 분 내로 획기적으로 단축해 낸 바 있다. 디지털과 바이오의 본격적인 융합은 우리 산업에 큰 기회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이런 이슈를 기반으로 이번 로드맵에서는 ①합성생물학, ②유전자·세포치료, ③감염병 백신·치료, ④디지털헬스 데이터 분석·활용에 대한 임무·전략을 제시했다.
합성생물학은 AI와 로봇을 활용해 유전체나 단백질 등 바이오 부품의 설계·생산 효율을 최고 10배까지 높이고, 설계-제작-검증에 이르는 바이오제조 전 과정을 자동화·고속화·저비용화하는 혁신기술 확보에 집중한다. 또한 2030년까지 난치성 질환의 신물질 치료제의 임상 진입을 목표로 핵심 기반기술인 유전물질 전달(RNA 플랫폼, 바이러스 벡터 등) 기술과 안전성이 확보된 차세대 세포치료제 개발을 추진한다.
감염병 대응은 암 백신 등 타 분야 파급효과가 큰 mRNA를 중심으로 고도화한다. 특히 바이오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 100만 명 이상의 한국인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과 함께 생성형 AI를 적용한 신약후보 분석, 질병진단 등 난제 해결에도 적극 도전한다.
이러한 목표는 2030년을 기준으로 설정된 것으로 기술 변화 등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검토·조정해 나갈 계획이다. 차세대원자력, 우주항공·해양, 차세대통신, 사이버보안, 첨단로봇·제조 등 나머지 5개 분야의 전략로드맵도 2024년 초까지 완성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이렇게 마련된 전략기술 임무·목표는 정부 연구개발 투자·평가의 핵심 기준으로 활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