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다고들 말한다. 한국이기 때문에 주가가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낮게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높아진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적 위상을 생각하면 선뜻 인정하기 어려운 이 단어가 최근 정부의 공식 보도자료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존재를 부인하지도 무시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를 직시해 극복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은 다양하나, 시장 참가자들은 주가순자산비율(PBR; Price to Book value Ratio)을 주요 지표로 사용한다. PBR은 기업의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 대비 ‘시가총액’ 비율을 의미하는데, PBR이 1보다 낮으면 기업의 가치보다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2023년 말 기준으로 국가별 주요 상장기업들의 평균 PBR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1.05에 불과한데, 일본은 1.42, 영국 1.71, 대만 2.41, 인도 3.73으로 한국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세계 최고 주식시장이라 평가받는 미국의 경우 4.55에 달한다.
불공정거래에 무관용, 엄정 대응 원칙 세워
국민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에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과거에는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강조되기도 했다. 또한 재벌 중심의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와 투자자에게 덜 친화적인 자본시장 제도, 기업들의 주주환원 노력 부족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주가조작, 불법 공매도 등 불공정거래도 주식시장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모든 원인을 단칼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확한 방향 설정과 과감한 제도개선, 제도개선을 기반으로한 기업과 투자자들의 행동 변화가 함께 이뤄진다면 우리 자본시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한 단계 발전할 것이다.
이에 정부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자본시장으로의 접근성 제고,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기업경영 확립이라는 세 가지 방향을 설정해 상생과 기회의 자본시장 선진화를 추진하고자 지난 2월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자본시장 선진화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정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본시장을 선진화하는 데 필요한 ‘기초 인프라’를 강화해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추진하고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을 도와 국민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투자는 공정한 규칙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다. 만일 이러한 믿음이 깨진다면 투자자들은 투자 결과에 승복할 수 없게 되고, 자본시장은 성장해 나갈 수 없다.
이에 정부는 자본시장의 신뢰를 두텁게 하기 위해 불공정거래에 무관용 및 엄정 대응 원칙을 세웠다. 금융당국과 검찰의 협업체계를 구축해 대응 역량을 대폭 강화했고, 특히 불법 공매도에는 역대 최대 과징금을 부과하고 사상 최초로 형사고발을 병행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하고 있다. 제도적으로도 내부자거래와 주가조작 등에 형사처벌뿐 아니라 과징금을 도입해 보다 신속한 제재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 불공정거래를 한 자에 주식거래 제한, 상장사 임원 선임 제한 등 추가 행정제재가 가능하도록 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둘째, 국내 주식시장의 투자 매력을 키우고 거래 편의성을 보다 높여 우리 증시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의 참여 유인을 확보해 나가고자 한다. 우선, 투자의 실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세제개선 과제를 지속 발굴해 추진한다. 정부는 연초 2025년 도입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증권거래세율도 2022년 0.23%에서 2023년 0.20%, 2024년 0.18%로 단계적으로 인하했고 내년에는 0.15%까지 내릴 계획이다. 또한 주식투자자들의 대표적인 절세 수단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납입 한도와 비과세 한도를 큰 폭으로 상향 조정하고, 국내 주식투자에 특화된 ‘국내투자형 ISA’도 신설한다.
세제뿐 아니라 주식시장의 중요한 수요 기반 중 하나인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상당 부분 마무리됐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투자를 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통해 발급받아야 했던 외국인투자자 등록증(ID) 제도를 약 30년 만에 폐지했고, 올해를 기점으로 대규모 상장법인부터 단계적으로 시장에서 필요한 정보의 영문공시를 의무화한다. 올 하반기부터는 외환시장 마감시간을 오후 3시 30분에서 다음 날 새벽 2시로 연장해 외환 거래의 편의성도 높일 예정이다.
배당금 미리 알고 투자하도록 절차 개선하고 기업
참여 유도하는 등 주주가치 높이는 기업경영 확립
마지막으로, 기업 스스로 기업 및 주주 가치를 고려하는 기업경영 관행과 문화를 조성한다. 그간 정부는 일반주주의 권익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이젠 물적분할 시 이에 반대하는 주주들은 회사가 자신의 주식을 매수해 줄 것을 요구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을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인적분할 시 대주주 지분율 확대에 이용하던 소위 ‘자사주 마법’, 즉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는 행위는 앞으로 금지할 예정이다.
그뿐 아니라 배당받을 주주명단이 확정된 후 배당금액이 결정돼 투자자가 배당금 규모를 모른 채 주식에 투자하는 ‘깜깜이 배당’으로 지적받았던 배당절차 문제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 결산배당의 경우 배당금액을 확정한 이후 배당받을 주주를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 이미 많은 기업이 정관을 변경해 동참 중이며, 분기·반기 배당에도 이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다만 주주 및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은 이러한 제도적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장의 실질적 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상장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변화를 유도하는 ‘기업 밸류업(value-up)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한국거래소에서 공시 원칙·내용·방법에 대한 종합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상장기업이 중장기적으로 투자자본수익률 및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계획을 수립·공시·이행함으로써 시장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한다. 공시방법은 자율 공시로 운영한다.
나아가 기업의 자발적 참여와 기업이익의 주주환원을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목표설정의 적절성, 계획수립의 충실도, 계획 이행 및 주주와의 소통 노력 등을 종합평가해 우수기업을 선정, 표창을 수여한다. 또 해당 우수기업에는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R&D 세액공제 사전심사 우대, 법인세 공제·감면 컨설팅 우대, 부가세·법인세 경정청구 우대, 가업승계 컨설팅 등 5가지 세정 지원 혜택을 제공한다. 공동 기업설명회(IR)를 지원해 국내외 투자자에 적극적으로 홍보할 기회도 마련해 준다.
또한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투자 판단 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의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가 타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행해야 할 행동지침)에 반영한다. 기업가치 성장이 기대되는 우수기업을 중심으로 평가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도 개발할 예정이다. 아울러 한국거래소에 전담추진 체계와 종합플랫폼을 구축해 기업 밸류업 전반을 지원한다.
자본시장 선진화는 제도를 개선하는 것뿐 아니라 기업과 투자자의 문화도 함께 바꿔나가야 하는, 긴 호흡으로 꾸준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다. 선진화된 자본시장 문화가 정착되면 기업은 주식시장을 통해 더 원활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국민도 직간접적인 투자를 통해 그 성과를 향유할 수 있는 선순환적인 시장이 구축될 것이다. 앞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닌 ‘코리아 프리미엄’이 우리 자본시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