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중소기업 기술 탈취 피해 건수는 한 해 300여 건으로, 피해 기업당 평균 손실액은 18억 원으로 추정된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에서 2019~2023년 중소기업이 원고인 기술 분쟁 민사사건을 분석한 결과, 소송에 일부 또는 전부 승소했을 때 평균 청구금액은 7억9천만 원이었으나 실제 인용된 금액은 1억4천억 원에 그쳤다. 즉 승소하더라도 실질적인 피해가 보상되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9월 10일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중소기업 기술 탈취 근절 방안’을 발표했다. 기술을 빼앗긴 피해 기업이 소송에서 불리한 환경에 놓이지 않도록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아 회복할 수 있게 하면서 정부가 기술 탈취를 막는 든든한 기술 보호 울타리를 제공하는 것이 대책의 중점 과제다.
피해 기업 73%가 증거 수집 곤란 호소···
한국형 증거개시제도 도입해 정보 불균형 해소
먼저, 기술 탈취 피해 사실 입증지원을 강화한다. 2025년 지식재산처·벤처기업협회 활동 설문조사 결과, 기술 탈취 피해 중소기업의 73%가 기술 침해 소송 과정의 어려움으로 증거 수집 곤란을 꼽았다. 이에 정부는 기술 침해 소송에서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기술 침해에 관한 사실을 조사하고 증거를 확보하는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한다. 법관이 중기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기술 침해 행정조사 기관에서 보유한 자료를 요구하면 제출해야 하는 자료 제출 명령 권한 도입도 추진한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이런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했고, 독일과 일본은 전문가 증거조사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원천기술 해외 의존도가 높은 일부 산업 분야에서는 한국형 증거개시제도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지만, 벤처·이노비즈 등 혁신형 기업단체와 중소기업계에서는 도입을 희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IT, 소프트웨어 및 문화콘텐츠 분야 경쟁력 세계 10위 권으로 CES 혁신상의 절반을 우리 기업이 수상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우리 기술을 적극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시점이다.
두 번째는 손해배상액 현실화다.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실질적인 피해가 보전되지 않고 있다. 흔히 알려진 미국의 천문학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액에 관해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미국은 피해 기업에 실제로 발생한 손해인 전보적 손해배상과 미래에 발생할 손해에 관한 응징적 벌칙으로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구분해 적용한다. 미국에서 손해배상액이 높게 설정되는 건 전보적 손해배상액이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은 기술 침해 기업이 기술 탈취로 개발 단계를 생략해 얻은 이익을 부당 이익으로 간주한다. 피해 기업이 침해당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입한 비용도 배상액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폭넓게 인정한 전보적 손해배상액을 배심원단이 결정하면 법관은 결정액의 3배 이내에서 손해배상액을 결정한다. 이런 제도로 인해 피해 기업이 소송에서 승소한다면 충분한 손해배상이 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특허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기술 보호 관련 법이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을 가능케 해 제도상으로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 소송에서 손해배상액은 평균 1억4천만 원으로 평균 청구액의 17.5% 수준이다. 이는 지식재산처의 ‘2023년 영업비밀보호 실태조사’에서 확인한 기업의 기술개발 비용 1억6천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손해배상액이 기술개발 비용에도 못 미치는 문제를 개선하고자 손해배상 소송에서 개발비용도 기본적인 손해로 인정하도록 손해액 산정기준을 개선하고, 피해 기업의 기술과 유사한 정부 R&D 기술의 연구개발비를 토대로 피해 기업 연구개발비를 산출해 법원과 피해 기업에 제공한다. 아울러 법원이 손해액을 산정할 때 기술 거래, 기술 가치 등을 평가 역량이 있는 전문기관에 맡길 수 있도록 관련 근거를 마련하고, 일정 전문인력을 확보한 기관을 손해액 산정 전문기관으로 지정해 피해 기업이 손해배상 소송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유관 부처 중심의 범부처 협의체 신설해
기술 보호 제도 개선, 기술 분쟁 사건 처리 등 논의
세 번째로 기술 탈취 예방 실효성도 강화한다. 기술 보호 관련 부처 합동 설명회를 권역별로 개최해 업종별·기업형태별로 기술 보호 교육을 제공하고 중소기업 기술 보호 지원사업 정책 홍보를 강화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수준으로 자체 기술 보호 역량을 향상할 수 있도록 기술 보호 선도 기업을 육성하고 중기부의 R&D 수행 기업 중 정부 출연 10억 원 이상의 연구 과제에 대해서는 핵심기술 조기경보 모니터링 사업도 확대한다. 이 외에도 기업의 경영·기술상 아이디어나 기술자료를 보관해 기술 분쟁 시 증거로 활용하는 기술 보관도 2030년까지 3만 건으로 확대하는 목표를 설정했다.
마지막으로, 기술 탈취 근절 추진 체계도 효율화한다. 기술 보호 관련 기관은 다양하다. 국가 핵심기술은 산업통상부, 특허 등 지식재산과 영업비밀은 지식재산처, 하도급 거래에서의 기술 유용은 공정거래위원회, 수탁·위탁 거래에서의 기술 유용은 중기부 등이 담당하고 있고, 형사사건의 경우 경찰청 등에서 수사한다. 그런데 침해당하는 기술이 국가 핵심기술이면서 영업비밀일 수도 있고 하도급 거래나 수탁·위탁 거래 관계에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 기술 탈취 유관 부처를 중심으로 범부처 협의체를 신설해 기술 보호 관련 제도 개선, 기술 분쟁 사건의 처리 등 주요 정책 방향을 논의하고 사건을 조율한다. 아울러 국민신문고와 같은 중소기업 기술 분쟁 신문고(가칭)도 운영할 예정이다.
기술 분쟁 사건을 수사·조사하는 수사·행정 기관 간 공조도 강화한다. 기술 탈취 사건의 기술적 쟁점에 대해서는 지식재산처의 기술 전문성을 기반으로 기술 자문을 중기부나 경찰청 등에 제공하며, 행정조사 사건의 추가 범법 행위가 의심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경찰청에 이관해 즉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수사 패스트트랙도 운영한다. 기술 탈취 피해 기업을 대상으로 중기부와 경찰청이 공동으로 현장을 방문해 피해 사실 확인, 법률상담 등 현장 밀착형 지원을 강화한다.
이러한 추진 과제가 안착한다면 벤처·스타트업이 기술 탈취 걱정 없이 공정한 시장 질서 환경 속에서 기술개발과 경영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30여 년 전 IT 벤처·스타트업이 외환위기 극복과 경제대국으로의 성장에 주역이었던 것처럼, 이렇게 성장한 기업들이 지금의 저성장 국면을 극복하고 기술·경제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향상하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드는 것은 정부의 책무이고 이에 대한 정책은 지속 보완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벤처·스타트업, 중소기업이 회사의 중요 기술과 영업비밀을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장맛의 비법은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란 우리 속담이 있다. 기업의 중요 자료는 보안자료로 분류해 관리하고 기업 간 교섭이나 거래에서 비밀 유지 계약 체결을 한 경우라면 소송에서도 승소할 확률이 매우 높음을 유념하시길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