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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해설
여성농업인, 농촌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농촌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최수아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여성정책과장 2026년 05월호
농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익숙하게 ‘고령화’와 ‘소멸’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위기의 언어가 농촌을 설명하는 기본 문법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나는 여성농업인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농촌을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농촌을 다시 설계하는 사람이다. 

지난 3월 발표한 ‘제6차 여성농업인 육성 기본계획(2026~ 2030년)’은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단순한 지원 확대나 제도 보완을 넘어 여성농업인을 농촌 변화의 ‘핵심 주체’로 재정의하는 것이 이번 계획의 가장 중요한 방향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책 지원 대상이라기보다는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변수로 전환했다.
 

의사결정에서 여성 참여 제약하는 ‘1가구 1표’ → ‘1인 1표’,
농번기 등 고려한 틈새보육 지원도 강화


그동안 여성농업인 정책은 의미 있는 성과를 축적해 왔다. 공동경영주 제도를 도입해 여성농업인의 법적 지위 기반을 마련했고, 교육·복지·권익 분야에서도 지속적인 개선이 이뤄지는 등 농촌 현장에서 여성의 역할과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됐다. 그럼에도 현장에는 여전히 구조적 간극이 존재하며 “일은 같이 하지만 결정은 못 내린다”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 생산과 노동에는 참여하지만 경영과 의사결정에서는 배제되는 이중구조, 이것이 여성농업인이 마주한 현실이다. 정책은 존재하지만 삶의 구조를 완전히 바꾸기에는 아직 부족한 셈이다. 그래서 이번 기본계획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우리는 여성농업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였다.

그동안 공동경영주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형식적 참여에 머문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름은 함께 올리지만 실제 의사결정 구조는 잘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기본계획에서는 이 지점을 보완하는 데 집중했다. 과거에는 여성 농민이 부족한 농업소득을 보충하고자 겸업을 하면 공동경영주 지위를 잃었지만, 이제는 공동경영주가 농외 취업을 하더라도 농업인으로 인정하고 제도의 실질적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추진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등록 여부’가 아니라 ‘어떤 역할을 하느냐’다. 여성농업인이 농업경영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농촌의 의사결정 구조는 오래된 규칙에 묶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1가구 1표다. 세대주 대부분이 남성인 현실에서 여성은 사실상 의사결정에서 배제된다. ‘1가구 1표’에서 ‘1인 1표’로의 전환을 확산시키겠다는 것은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권력 구조를 개인 단위로 재편하고 농촌 공동체의 의사결정 구조를 더욱 포용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현장에서 여성농업인들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거창한 지원이 아니다. “아플 때 쉴 수 있고,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최소한의 작업 환경이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본계획에서는 생활 영역의 정책을 ‘복지’가 아니라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조건으로 다시 설계했다. 

대표적으로 여성농업인의 특수건강검진 연령 상향 등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농번기와 비정형 노동시간을 고려한 ‘틈새보육’ 지원을 통해 기존 보육체계가 해결하지 못한 공백을 메우고자 한다. 일정한 시간표로 운영되는 도시형 보육서비스만으로는 농촌의 현실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제도권 밖에 있는 농업인의 상황을 반영한 육아휴직수당 적용 방안도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농업인이라는 이유로 동일한 생애주기 정책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농작업 환경의 기본적인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농지 내 화장실 설치 시범사업도 추진한다. 장시간의 야외 작업이 일상인 농촌 현실을 반영한 시도다. 이러한 정책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성농업인의 일과 삶을 이어주기 위해 ‘끊어진 고리’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정책·정보 통합 제공하는 플랫폼 구축하고 신청·상담 기능 연계…
중앙–지방정부–현장이 함께하는 정책협의체로 현장 목소리 반영


여성농업인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은 그동안 ‘복지’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실제 현장을 보면 이는 생산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번 기본계획에서는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농기계·장비 개발과 보급을 확대하고, 근력 보조 장비 등 작업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적극 도입할 예정이다. 농업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현장에서의 작업 방식에 달려 있다. 좀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책을 추진하면서 느끼는 또 하나의 과제는 ‘정보의 단절’이다. 사업은 많지만 현장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제때 찾기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여성농업인을 위한 정책과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상담과 신청 기능까지 연계해 정책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다. 정책과 정보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필요할 때 연결되고 활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계획에서는 정책의 추진 방식 자체를 고민했다. 그간 간담회와 현장 의견 수렴을 중심으로 정책을 보완해 왔다면 앞으로는 더욱 체계적인 참여 구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중앙과 지방정부, 현장이 함께 참여하는 정책협의체를 통해 정책을 지속 논의하고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이는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현장의 목소리를 안정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장치다. 

이번 기본계획은 새로운 사업을 많이 추가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는 기존 정책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을 구조적으로 보완하는 데 중점을 뒀다. 공동경영주 제도는 권한의 문제로, 의사결정 방식은 참여의 문제로, 노동 환경은 생산성의 문제로, 정책 전달 방식은 접근성의 문제로 다시 바라봤다. 이러한 변화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조금씩 축적되면 농업과 농촌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힘이 된다. 

현장에서 한 여성농업인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를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제대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 여성을 지원 대상이 아닌 농촌을 이끌 주체로 바라봐 달라는 여성농업인들의 목소리는 정책 방향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정책은 삶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만들 수 있다. 이번 기본계획은 그 조건을 만드는 과정이다. 여성농업인이 농촌을 지키는 존재를 넘어, 농촌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 변화는 이미 현장에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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