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마음’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프시케는 사랑을 얻는 대신 아프로디테가 부과한 시련 속으로 던져졌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끝내 깊은 잠에 빠진 프시케는 에로스의 손길이 닿았을 때 비로소 깨어날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정신건강 문제도 다르지 않다. 마음의 고통은 한 사람의 나약함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과도하게 놓인 결과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누가 그 곁에 갈 것인가. 우리 사회엔 그 손이 실제로 닿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는가. 이 질문들은 이미 우리 현실의 문제가 됐다.
국민 4명 중 3명 정신건강 문제 경험, 자살율 OECD 평균 2배…
국민정신건강검진, 병역검사 등 정신건강 점검 기회 늘려
2024년 기준 최근 1년간 스트레스나 우울감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국민은 73.6%로 4명 중 3명꼴이고, 2021년 기준 평생 정신질환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27.8%로 4명 중 1명이 넘는다. 자살률은 10만 명당 29.1명으로 여전히 OECD 평균(약 10~11명)의 두 배 이상이다.
정신건강은 개인의 삶의 질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2024년 정신질환 진료비 지출은 7조7천억 원을 넘어섰고, 사회적 비용은 약 12조9천억 원으로 추산된다. 정신건강정책으로 개선되는 건강·생산성에 따른 사회적 편익은 투입 비용 대비 5~6배 높다. 우리나라는 보건 지출 중 정신건강 분야 비중이 선진국 권고 수준(5~10%)보다 낮은 2.9%다.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12.1%에 불과하고 서비스 공급자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등 공급 편차가 크다. 1인 가구 증가, 고용 불안, 소득 격차, 지역사회 단절과 같은 경제·사회 구조 요인과 감염병, 재난, 디지털 전환, 경쟁 심화 등의 환경 변화로 정신건강 문제가 나날이 커지면서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됐다.
이러한 위기의식 가운데 가족, 당사자,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만든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2026~2030년)’은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적 안전망 강화, 지역사회 내 회복 기반 마련, 사람 중심의 서비스?제도를 통한 당사자 권익 신장을 주요 목표로 다음의 정책 과제들을 제시했다.
우선,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예방하는 방법과 기회를 다양화한다.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을 줄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신건강 인식 개선 브랜드인 ‘마주해요’가 일상에서 친숙해지도록 캠페인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신문·방송과 소셜미디어에서 정신건강 친화적인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지원한다. 이를 위해 2024년 11월에 제정한 ‘정신건강보도 권고기준’이 확산되도록 정신건강 우수보도 기자상을 운영하고, 뉴미디어 제작자를 위해 정확한 정신건강 정보를 제공한다.
정신건강 심리상담서비스를 내실화한다. 우울, 불안, 자살 충동, 재난 피해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누구나 정신건강 심리상담을 안심하고 받을 수 있게 한다. 이동이 불편하거나 취약지에 거주하는 경우에도 비대면 상담과 방문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양질의 상담이 이뤄지도록 품질을 관리한다.
한편 최근 빠른 속도로 AI 전환이 이뤄지는 만큼 AI 과의존으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호체계를 마련하는 동시에 AI 기술을 활용해 정신건강서비스를 개선할 계획이다. 아동·청소년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생애주기에 따른 지원도 강화한다. 특히 국민정신건강검진, 병역검사, 마음EASY검사 등을 통해 정신건강 상태를 점검할 기회를 늘린다. 검사와 연계해 도움이 필요한 경우 진료비와 심리상담서비스도 지원한다. 아울러 재난으로 인해 심리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들이 전문적·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권역 트라우마 센터를 확대하고 전문 치료 인력과 기관을 육성한다.
2030년까지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 17개소로 확대하고
마약 등 중독에 대응해 지원법 제정 추진
둘째,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경우 안심하고 제때 치료받을 수 있게 한다. 정신 응급과 자살 응급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도록 2030년까지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를 17개소로 확대하고, 응급병상을 늘린다. 경찰과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위기 현장을 함께 지원하는 합동대응센터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원활한 병상 배정을 위해 정신의료기관 응급병상 정보공유시스템(m-care)과 응급상황 관리실을 운영한다.
또한 급성기부터 퇴원 후까지 공백 없는 치료를 제공한다. 치료 골든타임에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급성기 집중치료실 병상을 2천 개까지 확대하고, 퇴원 이후 치료를 지속하기 위해 시범운영 중인 ‘낮병동’, ‘병원 기반 사례관리’를 본사업으로 추진한다.
치료 환경을 인권 친화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해 나간다. 격리·강박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기관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보호실 환경을 개선한다. 비강압적 치료를 위한 교육?훈련 신설, 절차조력서비스와 공공후견 전국 확대, 정신건강 사전의향서 도입 등을 추진한다. 무엇보다 입퇴원 과정에서 이송과 치료비를 지원하는 등 공적 책임을 강화하고, 당사자의 트라우마를 줄이기 위해 입퇴원 절차를 인권 친화적으로 개선한다.
셋째, 지역사회에서 ‘내 집’과 ‘내 일’을 통해 회복하고 자립이 가능한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역사회에서 회복하기 위한 낮활동서비스를 확대하고 정신질환자 대상 통합돌봄을 운영한다. 일경험 제공과 근로지원서비스를 확대해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안정적인 지역사회 정착을 위해 2030년까지 맞춤형 주택 100호를 공급한다. 또 당사자 주도의 동료지원서비스를 확대해 비슷한 어려움을 먼저 겪었던 동료가 회복을 지지하고 도울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 동료 지원인을 양성해 활동 인건비를 지원하는 한편, 동료지원쉼터를 전국 17개소로 늘린다.
넷째, 중독 위험에 대한 체계적 대응을 추진한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증하는 중독 문제를 미리 예방하고 더 쉽게 치료받도록 한다. ‘중독은 질병이며, 조기 치료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확산하고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과 유해 정보를 온라인에서 상시 모니터링한다. 권역 치료보호기관과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확충하고 표준운영 모델을 마련하는 등 치료·재활 역량을 강화한다. 마약류 치료에 적합한 보험 수가를 개발하고 출소 전 상담·평가·치료 연계 인력을 배치하는 시범사업을 운영한다. 또한 중독 실태조사와 임상지침 마련, 디지털 치료제(DTX) 등 기술 개발, 전문인력 양성, 중독 통합 거버넌스, ‘중독 치료·회복지원법(가칭)’ 제정 등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사회 전체가 함께 자살을 예방하는 생명안전망을 촘촘하게 만들어 나간다. 자살 시도자와 유족이 소득에 관계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한다. 자살 시도자 정보를 응급실에서부터 지자체까지 연계해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이 외에도 자살예방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자살 예방 보도 준칙을 확산하기 위해 ‘생명존중 기자 인증제’를 도입하는 등 기업과 지역사회, 미디어와 협력한 캠페인도 지속한다. 아울러 심리부검을 청소년까지 확대해 자살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AI 기술을 활용해 자살 유발 정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등 체계적으로 자살 예방을 지원한다.
정신건강을 지킨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균열 속으로 미끄러지는 한 사람의 삶에 다시 빛이 닿도록 길을 여는 일이다. 에로스가 건낸 손길로 끊어진 관계와 삶을 다시 이어가게 된 프시케를 떠올려보자. 이번 계획은 우리 사회가 정신건강 회복으로 향하는 여정에 정부가 함께 동행하겠다는 약속이자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