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고등교육 지형은 오랫동안 수도권 중심으로 기울어 있었다. 2025년 QS 세계대학평가 기준 국내 상위 20개 대학 중 14개가 수도권에 위치하며, 국내 500대 기업 본사의 77%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그 결과 우수한 인재들은 더 나은 교육 환경과 취업 전망을 좇아 수도권으로 향하고 지방대학들은 생존 위기에 직면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거점국립대학은 한때 서울에 위치한 주요 대학 못지않은 사회적 위상을 지녔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되며 거점국립대에 대한 상대적 선호도는 점차 하락했고, 사회 전반의 인구 감소까지 가해지며 지방대의 형편은 어려워져만 갔다. 지방의 열악한 취업 여건과 생활 인프라로 교원 유치와 학생들의 진로 지원에서도 수도권 주요 대학과의 격차가 뚜렷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교육부는 지난 4월 15일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국정과제인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실행 방안으로 거점국립대를 지역 성장엔진산업과 결합한 지·산·학·연 협력 허브로 육성함으로써 지방에서도 교육·연구·취업의 선순환이 실현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산학연 일체형 모델인 브랜드 단과대학 등 설립하고
거점국립대를 지역 AI 교육·연구 거점으로 육성
이번 방안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성장엔진 브랜드 단과대학 및 특성화 융합연구원 육성이다. 올해 3개 거점국립대를 대상으로 우선 추진하며 총 1,200억 원을 집중 지원한다.
브랜드 단과대학은 기존 대학 주도의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이 교육과정 설계와 운영 전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산학연 일체형 모델이다. 기업 연구원이 대학 교원을 겸직하고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며 기업 협업형 프로젝트 기반 수업을 운영한다. 영국 다이슨 공과대와 롤스로이스 학위 도제 제도처럼 이론과 실무가 하나로 통합되는 방식이다.
브랜드 단과대학과 연계된 특성화 융합연구원은 기업, 과학기술원, 출연연, 서울대 등 국내외 유수 기관과의 전면적 연구개발(R&D) 협력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융합연구원 내에 기업과의 공동연구소를 설립해 기술 개발부터 실증, 사업화까지 한곳에서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장기적인 산학연 파이프라인을 구축한다. 특히 브랜드 단과대학의 대학원생은 융합연구원에 이중 소속돼 전문연구원에 준하는 연구장학금을 지원받으면서 기업의 실제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한다.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한 지원도 파격적이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포괄지원 장학 프로그램, 지도교수가 밀착 지도하는 학부생 연구 참여 프로그램, 전문연구원에 준하는 대학원생 연구장학금 등을 통해 연간 1,500명 내외의 인재를 배출할 계획이다. 또한 성장엔진 분야 우수 교원 확충을 위해 ‘특성화 교원 트랙(가칭)’을 신설한다.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는 기존 교원이나 신규로 유치하는 우수 인재에 대해서는 별도의 성과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파격적인 처우, 연구비, 장비 등을 패키지로 지원한다.
방안의 두 번째 축은 거점국립대를 지역 AI 교육·연구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전 세계 고용의 약 40%(선진국 약 60%)가 AI에 노출된 현실에서 거점국립대가 수준 높은 AI 인재를 배출하고 지역의 AI 전환(AX)을 선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위해 올해 3개교에 총 300억 원을 지원한다.
AI 거점대에는 총장 직속 전담기구를 설치해 AI 학사조직과 AI 융합교육 및 연구를 총괄하도록 한다. 교육과정 측면에서는 AI 개발자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문제 정의 및 설계 역량, 협업 역량 등을 갖출 수 있도록 전문 교육과정을 재설계하고, 비전공자가 각자의 전공지식과 AI를 결합하는 분야별 AI 융합교과를 개발한다. 학생들은 수업 중 기업의 현장 데이터를 활용해 실전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경험을 쌓으며 이를 취·창업, 대학원 진학 등 자신의 진로와 연결할 수 있다.
나아가 AI 거점대의 역량을 지역 전체로 확산한다. 지역 기업과의 공동 AX 융합연구 수행, 지역대학과의 AI 교육과정 공유, 고교학점제 연계 AI 교육, 지역 재직자와 주민을 위한 AI 평생교육 프로그램까지 이어지며 지역 전체의 AI 생태계를 만들어간다.
올해 미선정 거점국립대에도 5,448억 투입해 교육혁신 지원하고
‘국립대학법’ 제정으로 국립대 혁신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올해 선정 예정인 3개교 외에 다른 거점국립대도 지역의 종합대학이자 인재 양성의 거점으로서 다양한 인재 수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학부교육 혁신을 지원한다. 올해 총 5,448억 원을 투입해 현장 프로젝트 기반 교육과 해외 대학과의 학점 교류 등 글로벌 교육 프로그램 기회를 늘리고, 졸업 후 유수 기업으로 취업이 보장되는 계약학과를 수도권 대학 수준으로 대폭 확대한다. 또한 기존 시도별 공유대학을 ‘5극 3특 초광역권’으로 확장해 거점국립대의 혁신 성과가 지역 내 모든 대학으로 퍼져나가도록 지원한다.
이와 함께 거점국립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성과 중심의 혁신도 병행한다. 브랜드 단과대학부터 교원 승진·정년 보장 심사 기준을 수도권 주요 사립대 수준으로 강화하고 성과 중심의 교원 인사제도를 마련하는 등 강도 높은 내부 혁신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국립대에 대한 재정지원이 예산 투입에만 그치지 않도록 올해 패키지 지원대학에 대해서는 대학–지방정부–민간(기업)이 공동으로 핵심성과지표(KPI)를 설정해 관리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립대학법(가칭)’ 제정을 통해 국립대 혁신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지역인재 양성은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국토 공간 대전환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다. 지방에서도 최고 수준의 교육·연구 여건과 미래 기회가 주어지는 대학, 나아가 지역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정착하고 싶은 환경과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이번 방안의 목표다. 교육부는 인재가 지역에 머물고 기업이 인재를 찾아 지역으로 내려오는 선순환의 핵심 기지를 구축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