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제조업 포트폴리오가 다양하고,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연결된 촘촘한 가치사슬을 갖춰 AI를 실제 제조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제조 역량을 데이터와 AI 자산으로 바꾼다면 우리 제조업은 대체할 수 없는 경쟁우위를 갖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제조업은 호황인가 위기인가. AI 수요 확대에 힘입어 국내 기업이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고, 자동차·조선 등 주력 산업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여줬으며, 지난 6월 월간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1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제조업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는 가운데, 한편에선 위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생산연령인구 감소, 중국과의 제조 경쟁력 격차 축소, 잠재성장률 둔화 등으로 우리의 미래 경쟁력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오는 우려라고 생각된다.
축적된 제조데이터, 숙련공의 암묵지는 우리만의 경쟁력…
제조데이터 관리, 풀스택 AI 팩토리 구축 등 포괄적 전략 제시
글로벌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은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AI 인프라와 모델 개발에 압도적인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들은 막대한 컴퓨팅 자원과 범용 AI 모델을 바탕으로 휴머노이드와 같은 피지컬 AI, 공정 최적화, 공급망 관리 등 제조 분야로의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의 움직임도 빠르다. 중국 정부는 ‘AI+제조 특별 행동계획’을 통해 고품질 제조데이터셋과 제조 범용모델을 구축하고 산업 AI 에이전트를 대규모로 보급한다는 목표 아래 기업, 대학, 연구기관의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중국 기업은 더 빠르다. 샤오미는 벌써 24시간 불을 밝힐 필요가 없는 공장인 다크팩토리에서 전기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AI 원천기술과 컴퓨팅 인프라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제조업에 적용될 AI 응용기술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제조AI는 AI 알고리즘뿐만 아니라 제조공정의 특성과 장비의 작동 원리, 소재의 변화, 품질 기준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화학 등 제조업 포트폴리오가 다양하고,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연결된 촘촘한 가치사슬을 갖춰 AI를 실제 제조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특히 수십 년간 제조 현장에 축적된 데이터와 숙련공의 암묵지는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경쟁력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제조 역량을 데이터와 AI 자산으로 바꾼다면 우리 제조업은 대체할 수 없는 경쟁우위를 갖게 될 것이다.
산업통상부는 제조기업, AI 기업, 연구기관, 학교 등 1,500개의 경제주체들 간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제조업 AI 전환(M.AX; Manufacturing AI Transformation) 얼라이언스를 구성해 제조업의 신속한 AI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제조기업이 AI 기업과 함께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모으고, AI로 공장 제어부터 경영, 공급망, 제품까지 혁신하며, 학교와 연구소는 최신 AI 기술을 공급하는 큰 그림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6월 산업통상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국가AI전략위원회 민간위원 23명과 함께 ‘대한민국 제조업 대전환의 길: 제조AI 2030 전략’을 마련해 2030년까지의 제조업 AX,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제조업의 대전환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제조AI 2030 전략’은 국가 차원의 제조데이터 수집·관리부터 제조업에 특화된 AI 두뇌(제조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풀스택 AI 팩토리 구축, 지역 확산, 생태계 조성까지 우리가 해야 할 과제들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먼저,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고품질 제조데이터를 수집하고, 업종별 숙련공의 암묵지를 데이터화한다. 수집한 데이터는 강력한 보안체계를 갖춘 ‘국가 제조데이터 라이브러리’에 축적한다. 제조데이터가 해외로 유출되거나 기업의 자산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면서 데이터가 필요한 기업과 연구자들이 이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제조데이터 금고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축적된 제조데이터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제조AI 두뇌를 개발해 제조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정부는 특정 업종에 속한 기업 모두가 활용 가능한 ‘업종 특화 AI 모델’과, 제조업 전반을 이해하고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는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조AI 모델은 에이전트, 로봇, OS 등과 결합해 제품과 공장을 설계하고 시제품을 검증하며 생산·품질·물류를 자율적으로 최적화하는 ‘풀스택 AI 팩토리’로 구현된다. 풀스택 AI 팩토리는 생산성 향상뿐만 아니라 고위험 공정을 대체해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으며, 작업자는 반복적이고 위험한 업무에서 벗어나 공정관리와 의사결정 등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역할에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제조AI 기술을 전국에 퍼져 있는 수많은 제조기업에 확산하는 계획도 담았다. 제조기업이 밀집한 지역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M.AX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테스트베드와 종합지원센터, 엣지컴퓨팅센터, 통신망 등 공용 인프라를 제공한다. 산단별 선도공장의 성공사례를 협력기업과 유사 업종으로 확산하고, 대기업의 경험과 방법을 중소기업에 이전함으로써 지역과 공급망 전체의 혁신으로 이어지게 한다. 제조AI 인프라와 전문인력이 수도권에 집중되지 않고 지역 산업단지와 거점대학으로 확산된다면 지역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청년의 지역 일자리 기반도 조성될 수 있다. 이렇듯 M.AX는 산업정책이면서 지역경제 정책이고, 인력·고용정책이기도 한 것이다.
지역 산단 중심으로 클러스터 조성해 생태계 전체에 혁신 확산…
국민성장펀드 활용해 M.AX 추진기업 육성
기업이 M.AX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할 수 있도록 투자를 뒷받침하는 법제도와 금융 지원도 필수다. 제조데이터의 체계적 관리·활용과 기업의 M.AX를 촉진할 수 있는 재정적 인센티브 제공 등을 위한 법적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재정이 빈약한 중소·중견 기업들이 자금 조달의 장벽에 부딪혀 낙오되지 않도록 민간투자의 마중물이 될 정책금융 지원계획도 세웠다. AI, 로봇, 미래차, 방산, 반도체, 이차전지 6개 분야에 올해 약 16조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할 국민성장펀드도 M.AX 추진기업 육성에 힘을 보탠다.
전략의 성패는 계획의 크기보다 현장에서 얼마나 빨리 제대로 작동하느냐에 달렸다. 제조업은 업종과 공정마다 문제점과 데이터의 형태가 다르고, 실제 공장에서는 작은 오류도 생산 중단이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실에서 성능이 우수한 AI가 현장에서도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작동한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우므로 충분한 현장검증과 실증, 실패를 보완하는 과정이 앞으로 계속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부족한 자본과 기술에도 사람과 현장의 힘으로 제조 강국에 올라섰다. 이제는 제조 현장의 경험을 데이터로 바꾸고, 데이터를 AI 모델로 발전시키며, 모델을 공장과 지역 산업단지, 해외시장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M.AX는 대한민국이 잘해 온 제조업의 성공 방식을 AI 시대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국가적 전환이다. 방향은 정해졌다. 정부와 기업, 대학과 연구기관 등 국가적인 역량을 총결집한 M.AX 얼라이언스를 통해 현장에서 성과를 만들고 그 성과를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실행이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