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는 국제금융시장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2009년부터 위안화의 국제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홍콩·영국·싱가포르 등 각국은 금융 분야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위안화 역외허브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위안화 역외허브는 중국 본토 이외의 지역에서 위안화 및 위안화 표시 금융거래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위안화 관련 금융서비스 집적지를 의미한다. 즉 위안화로 무역결제뿐 아니라 자금조달, 신용거래, 투자 및 헤지 등이 가능한 지역을 말한다.
이에 우리 정부도 위안화 국제화 추세에 대응하고 국익을 제고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위안화 역외허브로 육성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러나 기존 달러화 결제에 익숙한 기업의 거래관행, 축적된 위안화의 투자처 부족 등으로 인해 실제 위안화 표시 거래가 부진한 상황도 목격했다. 특히 기업들의 달러화 위주 거래관행으로 인해 위안화 거래수요가 부족해지고, 이에 따라 위안화 관련 인프라 발전도 지연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위안화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선 정책적 돌파구(breakthrough) 모색이 긴요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런 인식을 토대로 지난 수개월간 관계부처, 관계기관 간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중국 당국과의 협의를 진행하게 됐다.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설…韓에 위안화 청산체제 구축
지난 7월 3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양국 간 금융·통화 협력을 보다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 ‘위안화 활용도 제고’ 관련 정책과제에 대해 합의했다. 합의사항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에 원-위안화 직거래시장을 개설하고, 한국은 중국 외환시장에 직거래시장을 개설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로 했다. 원-위안화 직거래시장 개설은 은행 간 시장에 원화와 위안화의 직접 거래를 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은 원화를 위안화로 교환하고자 하는 경우 일단 원화를 달러화로 바꾸고 이 달러화를 다시 홍콩 등 외환시장에서 위안화로 바꾸는 과정을 거쳤다. 원-위안화 직거래시장이 개설될 경우 달러화를 거치지 않고 원화와 위안화를 직접 교환할 수 있게 돼 환전수수료 등 거래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 또한 한·중 간 거래에서 수출과 수입을 모두 하는 우리 기업의 경우 수출로 획득한 위안화로 수입대금을 결제할 수 있어 환위험 헤지뿐 아니라 환전비용 절감도 가능하다.
둘째, 한국에 위안화 청산체제를 구축하기로 합의하고, 중국 교통은행 서울지점을 위안화 청산은행으로 지정했다. 청산이란 금융기관 간 주고받을 금액을 산정하는 과정을 말하며, 위안화 청산은행이란 중국 본토 밖인 역외에서 위안화 결제대금의 청산을 담당하는 은행을 의미한다. 위안화 청산은행은 중국인민은행의 실시간 결제시스템(CNAPS)과 연결돼 역외 위안화 거래 결제대금의 청산·결제 업무를 수행한다. 기존까지는 국내에 위안화 청산은행이 없어 홍콩의 청산은행을 통해 위안화를 결제해 왔으나, 이 경우 결제목적의 위안화를 홍콩에 충분히 예치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에 위안화 자산 축적이 불리했다. 이번에 위안화 청산은행이 지정됨으로써 국내에 위안화 예금 등 자산이 축적돼 다양한 위안화 비즈니스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홍콩 내 청산은행을 통할 때보다 결제단계가 간단해져 수수료 등 비용이 절감되고, 결제시차로 인한 리스크도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800억위안 규모의 ‘위안화 적격해외기관투자자’ 자격 부여
셋째, 중국 정부는 한국에 800억위안(약 13조원) 규모의 위안화 적격해외기관투자자(RQFII; RMB Qualified Foreign Insti-tutional Investor) 자격을 부여했다. RQFII는 중국 정부가 국가별·기관별로 할당한 금액 내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역외의 위안화를 중국 본토 증권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제도다. 중국 당국은 홍콩(2,700억위안), 대만(1천억위안), 영국(800억위안), 프랑스(800억위안), 싱가포르(500억위안), 한국(800억위안) 등 총 6개국에 6,600억위안의 쿼터를 부여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향후 RQFII 활용상황과 시장수요를 감안해 적절한 시점에 이를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35된다. RQFII를 통해 중국 역내의 투자처가 확보될 경우 위안화를 보유할 유인이 높아져 위안화 표시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이 제공됐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양측은 한국 당국·금융기관이 적격해외기관투자자(QFII)를 통해 중국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나가는 것을 환영했다. QFII는 외국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위안화가 아닌 외화를 통해 중국 본토 증권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기관별 한도를 정해 허용하는 제도다. 2014년 5월 말 현재 중국 당국은 전 세계 중앙은행·금융기관에 배정한 약 560억달러 중 한국에는 총 38억달러를 배정했으며, 이번 합의를 통해 한국 기관에 대한 QFII 한도의 증액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열어두게 됐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여타 다른 국가의 기업 및 금융기관들의 위안화 표시 채권 발행을 장려하기로 했다. 국내에서 거주자 또는 비거주자가 외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현재 국내 제도상으로도 가능하나, 중국계 기업이 위안화 표시 채권을 발행할 경우에는 중국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므로, 이 합의는 향후 중국 정부가 중국계 기업의 위안화 표시 채권 발행을 장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안화 채권 발행은 국내의 위안화 자산에 대한 새로운 투자처를 제공함으로써 위안화 보유수요를 높이며, 채권 발행 확대를 계기로 위안화 주식·파생상품 등 위안화 표시 금융상품 거래도 활성화될 수 있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위안화 역외허브 구축을 위해 필요한 정책과제들을 패키지로 일괄 합의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이 관련 과제들을 동시에 타결한 사례가 없는 점을 감안할 때, 한·중 간 금융·통화 협력이 획기적으로 진전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양국 간 밀접한 경제관계, 높은 문화적·인적 교류 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정부는 합의된 정책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중장기적 측면에서 위안화 역외허브 추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7월 11일 ‘위안화 금융서비스 활성화 T/F’를 발족했다. 앞으로 T/F팀의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위안화 청산은행의 운영 개시, 개별 기관의 RQFII 한도 획득, 원-위안 직거래시장 개설 등이 조속히 가시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