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를 좋아해서 일부러 만드는 공무원은 없을 것이다. 규제는 환경, 안전, 난개발 방지, 국토의 균형발전 등 더 큰 공익을 위해서 기업과 국민의 경제활동에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 부득이 탄생한다. 그러나 규제는 시간이 갈수록 과도해지는 경향이 있다. 국회·감사원·언론 등의 지적을 받으면 일단 규제를 강화하고 본다. 반면, 규제를 완화하면 만에 하나 잘못됐을 때 책임을 져야 한다. 공무원들이 스스로 규제개혁을 하기 힘든 이유다. 규제개혁이라는 별도의 시스템이 정부 내에 있어서 공무원의 행동을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과도한 규제는 기업과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
문제는 규제내용을 일선 실무자가 아니면 알기 힘들다는 것이다. 제도개선 과제를 어렵게 발굴해도 방어논리에 막히기 일쑤다. 규제개혁을 이끌어내는 측에서는 결국 손쉽게 ‘올해 규제건수 10% 줄이기’와 같은 양적 목표를 정하게 된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어떨까? 할당량을 채울 수밖에 없으니 폐지해도 무방한 규제를 고르게 된다. 그린벨트나 용도지역 규제와 같은 파급력이 큰 규제는 어차피 폐지할 수 없으니 각종 보고의무나 신고와 같은 비핵심 규제를 폐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규제를 폐지해도 의원입법 등의 형식으로 규제가 새로 생겨나서 결국 규제 숫자는 비슷해진다. 폐지되는 규제들은 별것이 없는 것들인데 새로 생겨나는 규제들은 파급력이 큰 것들이 많다. 결국 규제개혁을 해도 기업과 국민의 부담이 더 늘어난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이러한 문제 인식 아래 단순히 규제를 폐지하는 것에서 벗어나 국민과 기업에 부담이 큰 덩어리와 핵심규제에 높은 점수를 매겨 개선을 유도하는 ‘규제총점관리제’를 도입했다. 이는 국토부가 국민이 체감하는 규제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마련한 제도로 규제에 따른 국민부담을 점수로 환산해 국민과 기업의 부담이 감소하도록 설계된 규제개혁 플랫폼이다. 여기서는 ‘규제총점관리제’의 도입배경을 비롯해 내용과 성과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규제에 점수를 매겨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 하나
‘규제총점관리제’는 ‘규제에 점수를 매겨서 관리하면 어떨까?’하는 서승환 국토부 장관의 심플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린벨트와 같이 기업에 체감도가 높은 규제는 100점을 주고, 단순한 보고의무 따위는 1점을 준다. 이 경우 점수를 10점 줄이라고 하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보고의무 10개를 없애서 10점을 감축하는 실무자는 없을 것이다. 그린벨트 규제 하나를 10% 개선하면 10점이 감축되므로 이것이 손쉬운 것이다. 즉 규제총점관리제는 국민과 기업에 부담이 큰 핵심적인 규제를 우선적으로 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린벨트 규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10점이 감축되는 것인지가 문제였다. 전인미답의 경지다. 무수한 토론과 실험 끝에 ‘4×4 등급표(Matrix)’가 탄생했다. 표에서 보듯이 인허가를 신고·등록으로 바꾸는 등 ‘제한의 강도’를 떨어뜨리면 점수가 감축되고(종축), 규제의 ‘적용범위’가 되는 지역이나 사람의 수를 줄이면 또한 점수가 감축된다(횡축).
이렇게 등급표에 따라 국토부 규제 2,993개의 점수를 매겨보니 총점이 8만점이 됐다. 올해 당장 15%인 1만6천점을 줄이자고 계획을 세웠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예년 같으면 그린벨트 같은 규제는 변죽만 울리고, 자잘한 규제만 폐지해 실적을 쌓았겠지만 올해는 달랐다. 용도지역, 그린벨트, 주택 등 분야에서 굵직굵직한 규제개선 과제들이 쏟아졌다. 그 성과로 제2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 ‘도시·건축규제 혁신방안’을 보고하고, 주택 분야 성과는 ‘9·1 부동산대책’으로 발표했다. 또한 지난 10월 15일에는 모범적인 규제개혁 사례로 규제총점관리제가 경제관계 장관회의에 보고됐다.
2주마다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실적 평가 …시늉만 내선 ‘민망’
사실 점수를 어떻게 매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점수를 줄이는 방법을 다양하게 열어 주고, 민감한 건들은 면책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법령 고칠 것이 없어 점수를 없애지 못한다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 유권해석 하나를 바꿔도 점수를 차감해 준다. 점수가 차감되면 성과평가(BSC; Balanced Score Card) 등 내부평가에 연동이 된다. 민감해서 스스로 개선하기 어려운 과제는 1차관이 주재하는 규제개혁지원단 회의에 상정해 위원들 명의로 방침이 결정된다. 아울러 민간 위원들이 참여하는 규제평가위원회가 있어 여기에서도 민감한 규제개선 과제들이 처리된다. 면책의 기능이 주어지는 것이다. 한번은 규제개혁지원단 회의에서 불필요한 법률 하나를 없애기로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대뜸 해당 과장이 과감하게 법률을 폐지했으니 점수 감축실적을 자기 과에 꼭 줘야 한다고 말해 서로 웃은 적이 있다. 과거 같았으면 얼굴 붉히고 싸웠겠지만, 규제개혁지원단 회의에서 결정돼 책임이 분산되고 점수도 잘 받으니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격주마다 실·국장 이상 간부들이 참석해 장관 주재로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한다. 2주 동안의 규제개혁 실적을 점검하고, 개혁과 관련된 여러 현안들을 토의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주로 규제총점관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컸다. 실·국 입장에서는 등급표 체제가 반가울 리 없다. 객관적인 지표로 짜여져 개혁하는 시늉만 해서는 점수가 차감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반전돼 갔다. 열심히 하는 실·국은 많은 혜택을 입게 되고, 그렇지 못한 실·국은 점검회의에서 실적이 보고돼 민망해진다. 총점관리제는 규제개혁 점검회의가 없었다면 작동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CEO의 의지와 이를 이해하는 간부들49의 솔선수범이 규제개혁의 관건이라고 본다.
경제관계 장관회의 때 경제부총리가 규제총점관리제를 확산시키자고 했다. 시스템을 만드는 실무작업을 했던 필자로서는 영광스럽지만 무거운 과제다. 시스템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확산이 될 것이다. 점수와 그 감축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본다. 국민 입장에서는 그다지 체감하지 못하는 개선 건인데도 점수는 과도하게 차감된다면 누구도 진정성을 믿지 않을 것이다. 점수의 객관성을 엄정하게 관리하기 위해 규제평가위원회에 점수의 책정과 감축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다만 아직은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제도라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전문가를 찾기가 힘들다. OECD 등 외국 기관과도 교류해 시스템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도록 하겠다.
규제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규제를 개혁하는 것은 더 어렵다. 과거에 언론 인터뷰를 할 때 ‘국토부가 규제건수 최다부처라는 오명을 어떻게 씻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부처 차원에서 스스로 규제를 개혁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은 어찌 보면 괜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필드를 제일 잘 아는 부처가 스스로 개혁하는 것만큼 좋은 대안은 없다고 본다. 총점관리제라는 시스템뿐만 아니라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