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생>이란 제목의 케이블 드라마가 절찬리에 막을 내렸다. 미생이란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바둑용어다. 드라마는 바둑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주인공이 프로입단에 실패한 뒤 냉혹한 현실에 던져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 많은 직장인의 동감을 얻어냈다. 이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다른 바둑용어들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포석(布石)’이다.
포석은 ‘바둑에서 중반전의 싸움이나 집 차지에 유리하도록 초반에 돌을 벌여 놓는 일’을 의미한다. 앞날을 위해 미리 손을 써 준비한다는 뜻과 함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단계를 설명하는 말로도 쓰인다. 바둑기사 이창호 9단의 “경솔하게 불쑥 손이 나간 실수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는 격언 역시 포석과 시작의 중요성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전체 가스사고의 47%, 취급부주의와 시설미비로 발생
그런 의미에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제대로 된 포석이 나왔다. ‘제1차 가스안전관리 기본계획(2015~2019)’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는 국민안전 확보와 산업여건, 기술변화 등 환경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선제적 예방 중심의 체계적인 가스안전관리 기본계획을 지난해 12월 수립하고 앞으로 5년간 추진할 예정이다.
기본계획은 전체적으로 4대 추진전략, 14개 추진과제, 62개 세부실행과제로 구성돼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도심지 지하매설 도시가스배관과 독성가스시설, 노후화된 대형 산업가스시설 등 위험ㆍ취약시설의 선제적 예방관리,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복지망 구축과 국민생활 밀착형 안전관리 등 국민과 중소업체 체감형 안전대책 추진, 안전자원 통합관리 등 현장 중심의 긴급대응시스템 구축, 법령체계 선진화 및 안전관리기반 등 과학적 안전관리를 위한 인프라 확충이 주요 내용으로 담겨 있다. 이 계획이 정부와 한국가스안전공사, 기업과 국민 모두의 관심과 참여 속에 정상적으로 추진된다면 국민이 신뢰하는 가스안전 확보가 가능하고, 나아가 튼튼한 가스안전으로 국민행복 실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지금까지도 정부와 가스안전공사 주도의 국가 가스안전 관리는 지속돼 왔고, 그 결과 가스사고 및 인명피해 감소 성과도 있었다. 최근 10년간 가스소비량이 연평균 5.8% 증가했음에도 가스사고는 연평균 6.8%, 인명피해는 4.9% 줄어들었다. 100만가구당 인명피해율을 따져 봐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에 올라와 있다.
하지만 아직 미비한 점은 있다. 그간의 안전관리는 대형사고 발생 뒤 후속조치 격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높았다. 1995년 사망 101명, 부상 201명이 발생한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사고 후에야 비로소 가스3법(「고압가스안전관리법」, 「도시가스사업법」, 「액화석유가스의 안전관리 및 사업법」) 안전관리체계가 강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다시 말해 ‘사후약방문’ 격의 안전관리로 선제적이고 예방적 차원의 안전관리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 비중이 높았던 문제도 있다. 최근 10년간 안전불감증으로 볼 수 있는 사용자ㆍ공급자 취급부주의 사고와 시설미비 사고가 전체 가스사고의 47%로 약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각종 안전대책이 추진돼도 안전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고예방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노후한 산업용 가스시설 및 LP가스충전소 정밀안전진단 확대
올해 처음으로 도입되는 제1차 가스안전관리 기본계획에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위험ㆍ취약시설의 선제적 예방관리를 위해 도심지 내 장기 사용으로 사고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는 고압 도시가스배관의 철저한 건전성 관리 추진, 시설이 노후화된 산업용 가스시설 및 LP가스충전소에 대한 정밀안전진단 확대, IT기술을 활용한 LP가스용기 이력관리 시스템 구축 등 사전에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예방대책이 다수 포함돼 있다.
더불어 국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대책들이 추진된다. 사고빈도가 높은 주택시설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LP가스시설금속배관 교체, 안전장치 확대보급, 보일러시설 안전강화, 캠핑인구 증가에 따른 캠핑장 및 전통시장ㆍ포장마차 등 이동형 LP가스시설 등의 안전관리 강화가 유관부처 협업으로 추진되고, 영세한 중소업체의 취약한 가스시설에 대한 개보수ㆍ컨설팅 등을 지원토록 하는 등 국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들이 여럿 있어 국민과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안전문화 확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현장 중심의 긴급대응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비상매뉴얼 정비, 긴급대응팀 운용, 인력ㆍ장비ㆍ기술 등 민관 안전자원의 통합관리를 통해 비상대응역량을 강화하고, 가스사고의 이력관리로 체계적 사고관리를 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는 검사기관의 역량을 향상해 검사신뢰도를 높이고, 에너지 실증ㆍ실험 및 산업가스 안전 관련 인프라 확충, 안전기술 R&D 추진, IT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과학적 안전관리를 실현하고 국제 안전기준 선도를 위한 국제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이제 ‘가스안전관리 기본계획’이라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훌륭한 포석은 깔렸다. 남은 건 우리 모두의 안전실천 의지와 노력이다. 바둑에는 묘수(妙手)가 있다. 그러나 안전에 있어 묘수란 없다. 오로지 기본 매뉴얼에 따라 생활 속에서 안전을 명심하고 안전을 실천하는 정수(正手)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