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침입으로부터 인간의 유일한 성역으로 생각되는 창의성에도 최근 인공지능이 출현하고 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패턴화를 수행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적 과정을 모사하며 인간의 창의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4차 산업혁명 혹은 디지털 전환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변화는 생산방식과 소비방식, 그리고 노동방식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3차 산업혁명과 차별점을 갖고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할 것으로 보이는 주요 기술 동인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다. 가상공간에 국한됐던 정보화 현상은 사물인터넷을 통해 현실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인공지능을 통해 컴퓨터에 학습시키기 용이했던 형식지뿐 아니라 장인에게 체화된 노하우 혹은 소비자의 생활 패턴 등 명확히 설명되기 어렵던 영역의 암묵지까지 분석하고 학습할 수 있게 됐다.
이 두 가지 변화는 각종 디바이스나 시스템들이 상호 연결된 가운데 인간의 지능을 모사하거나 인간 이상의 분석 및 판단 능력을 보유하는 사물지능을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이 사물지능의 세계에서는 보다 많은 암묵지를 획득하고, 이를 분석해 시사점을 도출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하는 능력이 기업에 필요한 중요한 역량으로 강조된다(<그림> 참조).
영상, 음악,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창작 가능성 보여주는 시도 진행돼 사물지능 시대의 도래는 노동자에게도 창의적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인공지능은 보다 많은 작업들을 자동화할 수 있으며, 특히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주 업무인 많은 사무직들의 업무를 보다 쉽게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그동안 가장 고도의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인식됐던 의료 및 법조 전문직에서도 IBM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이 도입돼 전문가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반복적 업무나 지식의 반복 숙달을 필요로 하는 역량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성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창의적 교육과 창의적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서 강조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인공지능으로 창의성이 새롭게 진화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인공지능의 침입으로부터 인간의 유일한 성역으로 생각되는 창의성에도 최근 인공지능이 출현하고 있다. 영상, 음악, 회화, 뉴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창작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작을 모사하기 가장 용이한 분야는 음악인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말라가대에서 개발한 ‘이아무스(Iamus)’는 사람이 악기 종류와 곡의 길이만 입력하면 스스로 곡을 만들어주는데, 사람이 작곡한 곡과 함께 들려주는 실험을 한 결과 음악전문가를 절반가량 포함한 250명의 청중들은 구별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니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Sony CSL)에서는 인공지능에 비틀즈나 바흐의 곡을 학습시켜 새로운 비틀즈풍, 바흐풍 음악을 작곡하는 것을 시연하기도 했다.
작문의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는데, 뉴스와 같이 명확한 서사구조가 있는 스타일의 글을 쓰는 경우 인공지능으로 신문기사를 작성하기 용이해 실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조금 불완전하지만 일본의 쿼리아이(QueryEye)가 만든 인공지능 제로는 두 권의 책을 학습한 후 ‘성공이란?’, ‘인간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등의 철학적 주제에 대해 「현인강림」이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인간의 창의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화를 수행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적 과정을 모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의성이 발현되는 과정과 창의성의 층위에 대해 이해하면 그 우려는 줄어든다.
데이터 패턴 범위 이상의 창의성 발현은 어려워···문제공간의 인식은 사람 고유의 영역으로 남을 것
창의성은 그 수준에 따라 개념과 개념을 더해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조합적 창의성(combinational creativity), 음악적 원리나 수학적 원리를 따르는 특정 개념공간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험하는 탐구적 창의성(exploratory creativtiy), 그리고 개념공간을 구성하는 가정을 바꿔 새로운 개념공간을 여는 변형적 창의성(transformational creativity)으로 구분될 수 있다. 조성에 충실했던 바흐의 작곡을 탐구적 창의성의 사례로, 조성을 해체하려 한 쇤베르크의 사례를 변형적 창의성의 사례로 들 수 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을 추출해내며, 그 패턴이 유효한 범위 내에서 변형된 결과물을 산출할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 패턴의 연장선이 아닌 그 이상의 창의성을 발현하기란 어렵다. 이는 인공지능이 조합적 창의성과 일부 탐구적 창의성의 발현은 가능하지만, 기존 규칙을 허물거나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변혁적 창의성의 발현은 어려움을 의미한다. 또한 창의성 발현과정의 측면에서봤을 때, 창의성은 문제와 현실, 그리고 그 차이를 인식하는 문제공간의 인식에서 출발하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확산적 사고단계와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수렴적 사고과정의 반복을 통해 발현된다. 문제인식이 없이는 새로운 지식이 나오지 않는다. 이때 문제공간의 인식은 온전히 사람이 맡게 될 고유한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문제인식은 가치판단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한편 확산적 사고과정과 수렴적 사고과정은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조합하고 탐구하며 기존 지식을 통해 판단된 판단기준에 따라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과정이며, 여기에는 인공지능의 창의성이 기여할 수 있다. 발산적 사고를 도와주는 사례로 EU의 내러티브 생성 머신인 ‘ WHIM(What if machine)’이 있다. 웹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설이나 광고 등에서 쓰일 수 있는 허구적 내러티브를 자동으로 생성해준다. 그리고 수렴적 과정을 도와주는 일례로 공포영화 <모건>의 예고편 제작에 활용된 IBM 왓슨이 있다. 공포감을 높이는 장면과 음향의 특징을 학습시킨 후 제작된 영화를 입력하자 10분 길이의 주요 장면을 자동으로 추출해줬으며, 인간 제작자가 이를 활용해 1분가량의 예고편을 만들었다. 전 과정이 24시간 만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창의적 과정의 효율성을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창의적 인공지능의 등장은 썩 달갑지 않은 느낌을 준다. 창의성의 발현과정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행복감을 주는 과정이기도 한 덕분에 로봇이 이를 흉내 낸다는 점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왠지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창의성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를 활용해 우리는 새로운 증강창의성(augmented creativity)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창의성만이 해법으로 보이는 시대가 오고 있다. 개인과 조직,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창의성 증강을 위한 기술적 접목을 고민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