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파괴적 기술’은 과거 어느 때보다 ‘파괴적’이어서 사회와 기술의 충돌이 심각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개별 규제에 사안별로 대응해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사회와 기술의 충돌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토론과 타협 도출이 필요한 시점이다.
1865년 세계 최강국인 영국은 자동차의 운행을 규제하는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을 도입했다. 최대 시속 30km를 낼 수 있는 증기자동차의 속도를 시내에서는 3.2km로 제한하고, 그도 모자라 한 사람이 자동차 전방 55m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자동차를 선도해야 한다는 규제다. 당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빅토리아여왕 시대였는데 세계를 이끄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처럼 황당한 규제를 만들어냈을까?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부의 이익과 일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만든 잘못된 규제라고 해석하는데, 이 해석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기술에 대한 무지와 경시로 자동차산업 주도권 잃은 영국
붉은 깃발법은 1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대영제국이 2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진 비밀을 푸는 열쇠다. 도로운행이 가능한 증기자동차는 1803년 영국에서 최초로 개발됐고, 그 후 영국은 자동차산업의 선두에 섰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에 운하와 증기기관차가 장거리 운행의 중추를 담당하면서 자동차의 효용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도로 확장은 지체됐고, 석탄을 싣고 매연과 증기를 내뿜는 증기자동차는 시내에서도 마차에 비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가 지속됐다. 사고가 나면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어 위험하다는 판단도 들었을 것이다. 이런 정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붉은 깃발법이 탄생했다.
여기에서 영국 정부와 사회가 신기술인 자동차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경영학자인 크리스텐슨(Christensen)이 지적하듯 파괴적 신기술은 처음에는 별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지만 빠른 혁신을 통해 어느 순간 기존 기술과 비교할 수 없는 상태로 발전한다. 신기술의 가치에 대한 무지와 경시는 붉은 깃발법이 30년간 지속되고, 그보다 완화되기는 했지만 유사한 규제를 다시 10년을 지속했다는 데서 잘 나타난다. 1890년대 말 규제가 해제됐을 때는 이미 독일에서 내연기관자동차가 발명돼 영국은 독일 자동차기술을 수입해 가솔린자동차를 생산하는 후발국이 된다. 영국의 자동차산업을 선망하던 독일과 자동차산업을 주도하던 영국의 입장이 역전되는 순간이다. 영국 사회의 신기술에 대한 경시는 2차 산업혁명에서의 주도권 상실로 이어지고, 그 후 독일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세계대전을 두 번 치르고 패권이 미국에 완전히 넘어가는 것으로 귀결된다.
붉은 깃발법의 일화는 기술격변기에 신기술과 신산업을 사회가 수용하지 못하고 규제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섬뜩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대변혁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중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으로 현실세계가 데이터로 재해석되면서 최적화되고, 말 그대로 개개인의 니즈를 충족해주는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연이어 블록체인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거래 분야에서도 대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이 세 가지 파괴적 기술은 과거 어느 때보다 ‘파괴적’이어서 사회와 기술의 충돌이 심각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일 신문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규제 문제가 단적인 예다.
그러면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분야는 어디일까? 빅데이터와 개인정보 관련 규제의 충돌, 인공지능 로봇과 일자리의 충돌이라고 생각된다. 현안으로 빅데이터 규제 문제가 가장 심각한데, 의료와 금융 분야에서 특히 그렇다. 의료·바이오 산업에서는 빅데이터 활용 관련 개인정보 보호 규제완화 요구가 거세다. 국내 유전자진단 분야의 경우 의료 부문 빅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지만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빅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금융 분야 중에서는 보험에서 문제가 첨예하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민간 보험사에 진료 관련 빅데이터를 제공한 사실과 한 대기업집단의 보험계열사가 계열사 내 고객정보를 결합한 사실이 밝혀졌다. 데이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사례들이라고 하겠다. 신기술 융합제품에 대한 규제개혁 요구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일자리 문제는 아직은 잠복상태지만 조만간 수면 위로 올라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수용성과 기술-사회의 충돌 해결능력이 국가판도 좌우할 것
지금은 개별 규제에 사안별로 대응해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사회와 기술의 충돌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토론과 타협 도출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해 기술혁명 연구를 통해 기술과 사회의 충돌 문제에 큰 업적을 남긴 페레즈(Perez)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 기술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이것으로부터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벽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새 기술에 적합한 사회·제도적 프레임워크가 확립될 필요가 있다. 이전 기술들을 기반으로 성장하도록 만들어진 기존의 프레임워크는 새로운 기술에 적합하지 않다. 그리하여 새로운 산업과 인프라가 설치되는 수년 동안에는 기술-경제와 사회제도 간에 갈등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신-구 기술 사이에서 경제시스템이 내부적으로 분리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적절한 관계를 재확립하고 새로운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며 사회적인 고통이 따른다.”
기술과 사회의 충돌 문제는 우리뿐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 모두 대동소이하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완화된 상태지만 언제 변할지 알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은 중국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어떤 형식이 됐건 사회의 기술수용성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인공지능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올해 5월에는 국가빅데이터센터를 설립해 빅데이터를 공동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 단계에서는 기술 주도권이 관건이지만 조금 지나면 어느 사회가 기술수용성이 크고 기술과 사회의 충돌 문제에 해결능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판도가 좌우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시각을 한중일 삼각구도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벌써부터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 중국이 우리를 앞질러간다면 한중일 삼각구도에서 우리는 3등으로 처지게 될 것이다. 그 경우 중국의 산업구조가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 산업의 미래는 지금과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그러한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을 적극 수용하는 길밖에 없다.
사회의 기술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미래비전을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차 산업혁명이 성공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계몽주의가 큰 역할을 했던 것과 같다. 사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정보화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으며 현재 진행되는 4차 산업혁명을 그 완성 단계라고 볼 때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사회의 응집력과 위기 돌파력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 세계도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향후 중국의 부상에 따라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가 올 수도 있고 다양한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의 강점을 살리는 가운데 환경변화의 기회를 포착한다면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을 달성하고 제2의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일장춘몽이 아니기를 빌면서 사회의 신기술수용성을 높이는 사회적 대타협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