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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테슬라 엔지니어의 엉뚱한 호기심, 미국에 숙취해소음료 내놔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2018년 05월호



지난해 3월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필자에게 누군가 테슬라의 이시선을 만나보라고 소개해줬다. 필자는 막연히 테슬라의 한국 진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나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테슬라 본사에서 만난 시선 씨는 대뜸 숙취해소음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본인은 그것에 관심이 많아서 주말이면 실리콘밸리의 편의점 등을 돌면서 숙취해소음료가 팔릴지 조사하고 다닌다고 했다. 전기자동차나 자율주행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으로 기대했던 터라 좀 당황하고 실망했다. ‘엉뚱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1. 그는 테슬라에서 나와 숙취해소음료를 만드는 스타트업 ‘82랩스를 창업해 벌써 올해 매출 700만 달러를 바라보는 회사로 키워냈다. 도대체 1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때의 인연을 계기로 지난 43일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개최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콘퍼런스에 이시선 대표를 초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시선 대표의 가족은 그가 9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는 학생들에게 재학 동안 혹독한 기업 인턴십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워털루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워털루대 동문들을 따라 실리콘밸리의 페이스북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그 기회를 계기로 졸업 후 우버를 거쳐 테슬라에서 프로덕트매니저로 일하게 됐다. 그가 맡은 일은 온라인을 통해 테슬라의 고객을 늘리는 것이었다.

 

왜 미국에는 없을까?’ 인터넷 가상판매로 시장 가능성 확인

2016년 말 그는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숙취해소음료를 같이 마시는 것이었다. 자신도 숙취해소음료를 마셔보고 효과를 보자 이게 왜 미국에는 없을까’, ‘미국에서도 잘되지 않을까생각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전문 분야인 IT와는 전혀 무관한 제품이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양한 숙취해소제를 잔뜩 사갔고, 주위 친구들에게 나눠주면서 신기하다. 도움이 된다는 호평을 들었다. 호기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숙취해소 효과가 어떻게 나는지 논문을 찾아봤다. 그리고 숙취해소 효과가 있는 헛개에 대해 논문을 쓴 장 리앙 UCLA 교수를 찾아냈다.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궁금한 점을 계속 물어봤다.

그는 시장규모를 계산해봤다. 미국인의 많은 알코올음료 소비량을 고려하면 숙취해소음료가 에너지드링크를 능가하는 20조원 규모의 시장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과연 시장에서 수요가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다. 이 대표는 아주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thehangoverdrink.com(숙취닷컴)’이라는 인터넷 주소를 산 다음 웹사이트를 만들고 가상의 숙취해소음료를 5달러에 팔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2천달러어치의 주문이 들어왔다. 실제 제품도 없이 이렇게 수요를 확인(?)한 그는 받은 주문을 모두 취소하고 전액을 환불해줬다. 일단 미국에서도 숙취해소음료가 팔릴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제품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는 또 인터넷의 힘을 빌렸다. 적은 돈을 들여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는 파이버(Fiverr.com)라는 사이트가 있다. 그는 파이버에 숙취해소음료를 만들 수 있는 공장을 찾아달라는 등의 몇 가지 과제를 10~30달러대에 올렸다. 몇몇 인도인들이 대신 조사해서 답변을 줬고 그는 기대 이상의 힌트를 얻었다. 20172월 이 대표는 휴가를 내고 한국 등 아시아를 다시 방문했다. 미국인 바이어인 양 평소 입지 않던 양복을 빼입고 몇몇 공장을 방문해서 생산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리고 세 곳의 공장에서 샘플을 만들어 미국으로 돌아왔다.

 

20178월 테슬라 퇴사 후 창업현재 회사가치 3,300만달러 인정받아

20173월 그는 약장사로 변신했다. 주위 친구들에게 샘플을 나눠주면서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일일이 사람을 만나 샘플을 나눠주고 반응을 수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베타테스터로 신청하는 사람에게 샘플을 보내줬다. 이렇게 1천여명에게서 피드백을 받았다. 돌이켜보니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난 것도 이맘때였다. 한편 이 대표 본인도 거의 매일 열심히 술을 마시며 숙취해소 효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했다. 술을 마신 양과 시간 등 데이터를 블로그에 기록했다. 술을 너무 마셨는지 심장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찾기도 했다. 그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밖에 몰랐던 사람이 뭔가 손에 잡히는 제품을 만드니까 정말 재미있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그의 숙취해소음료 프로젝트가 프로덕트헌트라는 유명한 사이트에 소개됐다. 원래는 새로운 테크서비스나 제품을 주로 다루는 곳인데 이례적으로 숙취해소음료가 소개된 것이다. 갑자기 입소문이 나면서 2만개의 주문이 들어왔고, 재고는 1천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드디어 제품 양산을 준비했다. 공장에 대량으로 주문하려면 최소 주문단위를 맞춰야 하는데 판매량을 정확히 예상 못하는 상황에서 큰돈을 투입하기는 싫었다. 그는 인디고고라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제품을 올리고 원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선주문하면 몇 달 뒤 완성된 제품을 보내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해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25만달러어치의 주문을 받았다.

테슬라 엔지니어가 숙취해소음료를 만들었다고 하니 화제가 됐다. 몰래 비밀제품을 개발하는 스텔스 스타트업’, 독특한 기술로 숙취해소음료를 개발한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냥 멋쩍게 고개를 끄떡이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본업인 테슬라 엔지니어 일을 하면서 하는 사이드프로젝트였고, 테슬라를 그만둘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두니 생각이 바뀌었다. 테슬라의 직장 상사는 꾸짖기는커녕 너는 창업을 해야 해. 실패하더라도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라고 격려하고 투자까지 해줬다.

20178, 그는 드디어 테슬라를 퇴사하고 82랩스를 설립했다. 그동안의 성과로 시작부터 벤처캐피털에서 5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그리고 불과 창업 1개월 만에 매출 100만달러를 넘겼다. 이제 연매출은 700만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3월 알토스벤처스, 슬로우벤처스 같은 유명 벤처캐피털에서 8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회사가치는 3,300만달러 정도를 인정받았다.

이처럼 1년 반도 되지 않아 350억원 가치의 회사를 만들어낸 이시선 대표를 보면서 느낀 점이 많다. 우선 일상의 새로운 발견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파보는 열정에 감탄했다. 또 온라인을 이용해 잠재고객과 소통하며 시장수요를 확인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방법의 중요성이다. 그 과정에서 가능성을 증명한 뒤 그만큼 고객을 확보하고 투자를 받아 회사를 키워나간다. 이 대표는 이런 실리콘밸리식 창업방법이 비단 첨단기술제품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멋지게 보여줬다. 이런 신세대 창업자들이 앞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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