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성공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서비스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보다 훨씬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아이디어를 프로토타입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프로토타입 제품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어도 이를 양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돈도 많이 들고 제조공장 선정, 부품 수급, 배송 문제 등 온갖 시행착오에 시달린다. 기껏 어느 정도 쓸 만한 제품이 나왔을 때는 이미 몇 년이 지나버린 뒤이고, 그 사이 경쟁사나 중국에서 경쟁 제품이 쏟아져 나와 고객들이 떠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이유로 참신한 아이디어로 주목받고도 몇 년 뒤 좌초해버린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수두룩한 형편이다. 이 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첨단 카메라를 개발해 글로벌기업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있다. 삼성전자 출신 김용국 대표가 창업한 ‘링크플로우’다. 링크플로우는 목에 걸고 있으면 360도 촬영이 가능한 웨어러블카메라 ‘FITT 360’을 개발했다. 목에 거는 블루투스 무선이어폰처럼 가볍고 멋진 디자인에 양손을 자유롭게 쓰면서도 안정적으로 VR 동영상까지 찍을 수 있는 제품이다. 김용국 대표는 2년 전 44세, 중년의 나이에 삼성전자를 뛰쳐나와 이런 멋진 제품을 개발하고 큰 투자까지 유치했다.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궁금해서 그를 만나봤다.
360도 촬영 가능한 ‘FITT 360’, 크라우드펀딩, 해외 투자사에서도 주목 컴퓨터공학과 93학번인 김 대표는 2002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시스템제어 엔지니어로 7년, 전략기획팀에서 8년을 재직했다. 10년 전 신혼여행을 갔다가 느낀 불편이 창업의 아이디어가 됐다. “하와이의 멋진 풍경에 감동했는데요, 기존 카메라로는 그 감동을 다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멋진 광경을 360도로 찍어주는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이 아이디어를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었죠.” 그는 목에 걸고 다니기만 하면 자동으로 360도 사진을 찍어주는 카메라로 2014년 사내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도전해 대상을 수상했다. 사업화의 꿈에 부풀었지만 불행히도 삼성은 당시 카메라사업을 포기했다. 임원을 설득해도 방법이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당시 삼성전자는 사내에서 창업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직원을 육성하는 C랩 프로그램을 막 시작한 상태였다. 김 대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덕분에 1년 정도 내부에서 제품을 개발하다가 2016년 10월 삼성전자에서 5억원을 투자받아 공식적으로 독립해 나왔다. “당시 44세의 차장급 사원이었습니다. 상무님은 왜 나가냐고 만류하셨죠. 그래도 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고 싶어서 미련 없이 나왔습니다.” 삼성전자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는 5억원이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성공시키는 데 결코 넉넉한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 대기업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롯데액셀러레이터에 지원해 2기로 참가한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기술 못지않게 제품의 유통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유통이 강한 롯데를 선택했던 것. 링크플로우는 롯데에서 기대 이상의 도움을 받는다. “롯데는 계열사를 통해 첨단소재 플라스틱 개발을, 롯데상사를 통해 수출을, 캐논코리아를 통해 제품생산을 도와줬습니다. 앞으로 제품이 나오면 역시 롯데 계열사인 하이마트를 통해 판매할 예정입니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FITT 360은 지난해 말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38만달러를 모으는 데 성공, 내년 3월 시판 예정이다. B2B제품인 FITT 360 시큐리티는 LTE 무선망을 통해 8시간 라이브중계가 가능한 카메라로 대당 130만원 이상의 고가다. 9월에 출시될 예정인데 벌써 일본에 100대 이상 판매가 확정됐다. 일본의 정유·반도체 공장 관리자 등이 현장관리에 사용하고자 선주문한 것인데, 실시간 동영상으로 현장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일본의 일손부족 문제를 덜 수 있는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들어 제품의 완성도와 팀의 실력을 보고 많은 국내외 투자회사와 대기업들이 투자를 하겠다고 나섰다. 김 대표는 글로벌 진출을 위해 그중 해외 글로벌 대기업에서 투자받는 것을 선택했다. 최근 그 해외기업 임원들이 분당의 사무실까지 방문해 실사를 마친 뒤 거액의 투자가 성사됐다. 이제는 멋진 제품을 양산해 성장하는 일만 남았다.
삼성·롯데가 키워낸 간판 스타트업…“고프로 넘는 유니콘기업으로 키울 것” 한국에서 링크플로우처럼 성공적인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더 많이 나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하드웨어는 프로토타입에서 시작해 어느 정도 보여주는 수준까지 만드는 데도 최소 몇억원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상품화까지는 또 다른 얘기입니다. 대량제조 경험 없이는 쉽지 않습니다. 링크플로우는 삼성전자에서 양산을 많이 해본 베테랑들이 참여해 여기까지 오는 게 가능했습니다. 앞으로 저처럼 대기업 출신들이 더 많이 늘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중국회사가 비슷한 카메라를 만들어 시장에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패배주의적으로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대기업은 돈이 안 되는 사업을 무작정 하지는 않습니다. 스타트업이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면 선점효과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링크플로우는 국내특허 18개, 해외특허 10개로 방어막을 만들어 뒀습니다.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고 자신합니다.” 링크플로우의 직원은 21명이며 그중 16명이 엔지니어다. 김 대표는 대기업에서 비슷한 제품을 만들었다면 적어도 50~60명이 투입되고 개발기간도 훨씬 오래 걸리는 대규모 프로젝트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에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묻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링크플로우를 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답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농담으로 받아들이는데요. 링크플로우를 머지않아 고프로(Gopro)를 능가하는 회사로 키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프로는 운동, 야외활동에서 쓰는 액션카메라를 만들어내 세계적으로 성장한 실리콘밸리 회사다. 얼핏 들으면 무모하게 느껴지지만 링크플로우가 경찰이나 경비원들이 쓰는 바디캠시장에서 글로벌 주요 업체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의 경찰들이 주로 착용하는 바디캠시장에서 1위인 미국 액손(Axon, 구 태이저)의 시총이 약 4조원이다. 세계적으로 이런 바디캠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링크플로우가 바디캠시장에서 액손을 위협하는 회사로 성장하면 김 대표의 유니콘드림은 충분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링크플로우의 성공은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우선 삼성과 롯데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이 키워낸 간판스타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좋은 협업사례가 됐다. 또 스타트업이 청년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한국에서 40대에 창업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링크플로우가 쑥쑥 성장해서 한국 최초의 하드웨어 유니콘 스타트업이 되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