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립도서관에서 무료로 전시회를 관람하고, 공공기관 로비에 걸린 유명 작가의 작품을 감상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예술을 접하는 방법이다. 이처럼 쉽게 문화를 향유하도록 해주는 기관이 있다. 소장품으로 도서관에서 전시회를 열고 공공기관에 작품을 빌려주는 미술은행이 그런 곳이다. 미술은행을 운영하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술은행은 어떤 곳인가. 미술은행은 미술작품의 구입과 대여를 통한 작가 창작지원, 미술시장 활성화, 국민의 문화향유권 향상을 취지로 2005년 2월 설립됐다. 정부 예산으로 유망한 작가들의 미술작품을 구입해 국가기관·지자체·공공기관·민간에 대여해주고 있다. 1년에 많게는 300여점을 구입한다. 민간 수요는 아직 많지 않고 기업이나 병원 등에서 주로 이용하고 있다. 2012년 10월부터는 정부미술은행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정부미술은행은 그동안 각 기관에서 개별적으로 관리되던 국가 소유 미술품을 전문적으로 취득·관리하기 위해 설립됐다. 미술은행과 정부미술은행의 차이점은 전자는 작품을 유료로 대여하고 후자는 국가기관을 대상으로 무료로 빌려준다는 점이다. 미술품의 소유권이 미술은행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정부미술은행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있다는 점도 다르다.
현재 몇 점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나. 미술은행은 총 3,400점, 정부미술은행은 2,030점의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 소장품 일부는 지난해 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개방 수장고에서 볼 수 있다.
작품 구입은 보통 어떤 절차를 거쳐 결정되는가. 작품 구입경로는 제안형과 공모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제안형에는 미술은행 운영위원이나 미술 분야 전문가가 제안하는 방식이 있고, 아트페어에 가서 작품을 선정하고 구입하는 형태가 있다. 공모형은 화랑이나 작가들이 직접 응모하는 방식이다. 작품 구입은 3단계의 심사를 거친다. 우선 ‘작품가치심사위원회’에서 작품의 적합성을 평가하고, ‘작품가격심사위원회’에서는 가치심사를 통과한 작품의 가격을, ‘작품구입심사위원회’에서는 앞선 두 심사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구입 여부를 평가한다. 분야별 미술 전문가 300여명으로 이뤄진 심사위원 인력풀이 구축돼 있으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를 위해 각 단계마다 다른 심사위원이 참여한다. 보통 5배수 이상의 작품을 제안받아 구입할 작품을 최종 결정한다.
1년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작품 구입 예산은 지난해 기준으로 미술은행이 19억5천만원(제안형 11억5천만원, 공모형 8억원), 정부미술은행이 13억원(제안형 10억원, 공모형 3억원)이었다.
미술은행이 설립목적인 ‘국내 미술시장 활성화와 미술문화 대중화’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다고 보는가. 미술시장 활성화에 대해서는 수치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일단 전국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직접 구입해 대여하거나 전시함으로써 작가의 창작활동 지원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고 본다. 또 미술작품을 접하기 어려운 구치소나 군부대 등에 무상대여하는 사업을 통해 문화 취약계층에 다가가고 있고, 지역·계층 간 문화격차 완화와 문화향유권 신장을 목적으로 소장품을 활용한 기획전시도 진행하고 있다. 미술은행은 단순히 작품만 대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예술의 복합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기획전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 기획전시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기획전시를 하는 것인데 문화 소외지역에 있는 미술관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고, 그중에서 선정된 지역을 찾아간다. 이 경우에는 우리가 기획에서부터 홍보까지 모두 맡아 진행한다. 또 하나는 지방 문화예술회관, 공공기관, 학교, 미술관 등에서 기획하는 전시에 작품을 대여만 해주는 형태다. 기획전시에 대한 반응은 좋은 편이다. 지난해엔 기획전시를 5회 진행했고 누적 관람객 수는 1만6천명 정도였다.
미술은행은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하는 제도라고 들었다. 해외사례로는 크게 캐나다·프랑스·미국·영국을 들 수 있겠다. 작가 지원, 미술시장 활성화, 국가미술품 보존·관리 등이 운영 목적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유사하다. 프랑스는 역사가 오래됐다. 18세기 말부터 컬렉션이 시작돼 현재 소장 작품 수가 10만여점에 달한다. 프랑스·미국·영국의 미술은행은 정부 산하기구로 운영되고 있고, 국가·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작품을 무상으로 대여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정부미술은행과 비슷한 성격이라고 보면 된다. 캐나다 미술은행은 1972년 정부 산하기구로 설립됐다가 2000년 자영기구로 독립 후 유료사업화했다. 우리 미술은행은 설립 초기부터 캐나다를 모델로 독립 법인화를 추진해왔다.
국내 문화예술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나. 우선 국민의 문화향유권 확산을 위해선 문화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지역 문화시설을 비롯한 인프라를 확충해야 하고, 이를 위한 예산지원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는 예술적 창의성 개발과 예술지능 발전을 위해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예술인이 안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경제적 지원방안도 있으면 좋겠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아티스트 피(artist fee; 미술작가 보수 제도)나 작가 추급권(artist’s resale right; 미술품이 판매될 때마다 작가가 수익의 일정 비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등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정책들이 많이 나와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