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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학습 주체가 되는 평생교육 시스템 구축을
박윤수 KDI 지식경제연구부 연구위원 2019년 04월호




기술진보는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기술진보는 종종 불평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기술진보가 노동시장의 수요를 변화시킬 때 교육 부문이 수요에 맞는 인력을 양성해내지 못하면 결국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확대된다. 변화하는 기술과 보완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노동시장에서의 가치가 상승하지만, 기술로 대체되기 쉬운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그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제시된 이래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기술진보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갖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과거의 1~3차 산업혁명과 구분되는 주요한 특징은 속도다. 과거의 산업혁명이 선형적 속도로 진행됐다고 한다면, 다가오는 산업혁명은 기하급수적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언론을 통해 자주 인용된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미국에 존재하는 일자리의 47%가 기계로 대체될 위기에 있다고 한다.



급속한 기술진보로 지식 수명 짧아져…구조조정 촉발해 일자리 이동도 증가
다가오는 기술진보가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교육이 기술을 따라잡고 기술과의 경주에서 승리해야 한다. 현재의 교육 모형은 생애 초기의 집중적인 정규교육과 직장 내에서의 재교육·재훈련, 즉 직장 내 훈련(OJT; on-the-job training)으로 구성돼 있다. 학령기에는 학교에서 공부에 집중하고, 학교를 마친 뒤에는 직장에서의 OJT로 지식과 기술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미래에 이러한 전통적인 교육 모형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한계를 갖는다. 첫째, 기술진보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의 수명도 짧아진다. 생애 초기 12~16년간 배운 지식으로는 평생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따라잡기 어렵다. 둘째, OJT의 전제조건인 장기고용관계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고용관계가 장기간 지속된다는 믿음이 있을 경우에 사용자와 근로자는 현재의 일자리에서 필요한 역량을 연마하는 데 투자할 유인이 있다. 그러나 급속한 기술진보는 산업 간, 기업 간 구조조정을 촉발해 일자리 이동을 증가시킬 것이다. 또한 휴먼 클라우드를 비롯한 간접고용관계가 증가하면서 전통적인 장기고용관계는 점차 약화될 것이다. 장기고용관계가 줄어들수록 OJT에 대한 사용자와 근로자의 투자도 줄어들기 쉽다.
결국 다가오는 기술진보에 대응하는 새로운 교육 모형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기술진보가 빠르게 진행될 때마다 교육에 대한 투자를 증가시켜 왔다. 20세기 초반 공장을 통한 대량생산이 출현하자 기본적인 언어능력과 수리능력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는 중등교육을 대중화시켰다. 20세기 후반 IT 기술이 발달하며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대학 진학률도 함께 증가했다. 다가오는 기술진보는 과거에 비해 속도가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학습의 주체가 돼 정규 교육을 마친 뒤에도 꾸준히 재교육, 재훈련을 받을 수 있는 평생학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교육 수준 낮고 일자리 취약할수록 평생학습에서 소외되기 쉬워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평생학습 시스템은 다가오는 기술진보로 인한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을까? 2017년 한국 성인 1만1천여명의 평생학습 참여 실태를 조사한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고학력, 대기업, 정규직, 관리직/전문직 종사자일수록 저학력, 중소기업, 비정규직, 판매직/노무직 종사자에 비해 평생학습 참여율이 뚜렷하게 높다. 향후 급속한 기술진보로 노동시장에서 재교육, 재훈련의 중요성이 증가하면 할수록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없을 경우 임금 불평등은 완화되기보다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암시한다.
사실 교육 수준과 일자리 특성에 따른 평생학습 참여 편중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1~2014년 OECD가 주요 33개국의 평생학습 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교육을 많이 받고 안정적인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평생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교육 수준과 일자리 특성에 따른 평생학습 참여율의 격차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큰 편이다. 성별, 연령, 취업 여부를 통제한 상태에서 학력(대졸 여부)에 따른 평생학습 참여율 격차를 추정해보면, 한국은 33개국 중 4위로 격차가 크다. 또한 취업자만을 대상으로 해 성별, 연령, 직종, 산업을 통제한 상태에서 사업장 규모(250인 초과 사업장 여부)와 고용형태(무기계약 여부)에 따른 평생학습 참여율 격차를 추정해보면, 한국은 사업장 규모에 따른 격차는 33개국 중 2위, 고용형태에 따른 격차는 33개국 중 7위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교육 수준이 낮거나 일자리가 취약한 국민의 평생학습 참여를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재의 평생학습 예산 구조는 그 반대다. 평생학습은 크게 교육부가 주관하는 평생교육과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직업훈련으로 구분된다. 교육부 예산 중 평생교육 관련 예산은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17년 중앙정부의 평생학습 예산 2조9천억원 중 약 80%는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 예산(2조3천억원)이다.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 예산 중 약 80%는 고용보험기금(1조9천억원)에서 조달된다. 즉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평생학습 예산 중 80%의 80%, 즉 약 3분의 2는 고용보험기금에서 조달되는 셈이다.
고용보험기금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용자와 근로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재원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고용보험 미가입자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고용보험 미가입자는 주로 실업자를 포함한 미취업자, 자영업자, 영세기업 근로자, 비정규직 근로자 등이다. 일례로 2018년 8월 통계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87%인 데 반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43.6%에 불과하다. 일자리가 없거나 안정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주로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분포한 상황에서 고용보험 직업훈련사업 외의 평생학습 지원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보니, 교육 수준이 낮고 일자리가 취약할수록 평생학습에서 소외되기 쉬운 것이다.
이상의 논의는 고용보험 직업훈련 사업 일변도의 현행 평생학습 시스템을 일반회계로 보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학습 지원체계를 구축해나갈 필요성을 시사한다. 기술진보로 인한 일자리 또는 산업 간 이동에 필요한 역량 습득은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투자할 유인이 낮다.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학습의 주체가 돼야 하고,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이 노동시장의 큰 변화를 초래하기에 앞서 선제적으로 교육·훈련 시스템을 정비해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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