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반도체’가 최근 화두다. 문재인 정부의 중요 산업정책에 시스템반도체 분야를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천명되면서 학계·산업계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중요 아이콘이 되고 있다. 한국의 성장동력이 눈에 띄지 않는 상황에서 메모리반도체의 2배 정도 되는 시장인 시스템반도체에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부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의 시장점유율을 현재 3% 정도에서 2030년까지 1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그러나 이는 대기업을 주축으로 달성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시장점유율과 동시에 팹리스(제조시설을 갖추지 않은 설계 업체)를 육성한다는 목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팹리스가 육성돼야 건강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가지 목표인 시장점유율 확대와 중소 팹리스 육성을 위해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과 치밀한 실행계획이 필요하다.
설계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이 관건 〈그림〉은 시스템반도체를 반도체 칩 분야(예: 자동차 시스템반도체, 자동인식 시스템반도체 등)로 나누지 않고 칩 기능별 ‘플랫폼 기술’(예: 통신용 회로, 이미지 센서 등)로 구분한 것이다. 단일 품목으로는 메모리반도체, 중앙처리장치(CPU)가 크고 통신용 반도체, 이미지 센서(CIS) 등도 큰 시장을 형성한다. 또한 최근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시스템반도체가 발전한 경로를 살펴보자. 한국의 시스템산업은 TV·디스플레이 등 가전, 모바일, 통신 네크워크 장비용 시스템반도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현재 한국의 주요 팹리스 업체인 실리콘웍스, 텔레칩스, 제주반도체, 실리콘마이터스 등이 이러한 경우다. 그러나 통신 네트워크 장비 업체가 퇴보했고 데이터 센터, 서버 시장은 한국의 시스템 업체가 미미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시스템반도체 역시 성장하지 못했다. 반면 중국의 시스템반도체 업체가 약진하는 이유는 중국 시스템 업체(데이터 센터, 자동차, 통신용 장비)의 규모가 크고 중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형태로는 시스템반도체 업체가 시스템을 직접 제작해서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센서 기능을 내장한 반도체 칩이 이러한 경우가 많고 사물인터넷(IoT)이나 의료용 반도체 회사가 이에 해당한다. 이 역시 시스템반도체 업체가 고객을 직접 발굴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따라서 시스템반도체의 발전은 결국 설계 기술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 업체의 마케팅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팹리스 업계는 대기업에 비해 기술인력 확보가 힘들고 마케팅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발전을 위해서는 이 두 가지를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고 국가 프로젝트는 이러한 관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팹리스와 시스템 업체 연결해주는 시스템 필요 〈그림〉을 기반으로 어떻게 국가 프로젝트를 구성해야 할까? 좀 더 근원적인 것부터 기술하기로 하자. 첫째, 각각의 플랫폼 기술을 지원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기술개발 핵심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대학이 이 역할을 담당해 성공한 대표적인 예가 미국이다. 미국은 대학에서 원천기술과 우수인력을 공급하고 정부는 공정한 시장에서 게임의 룰을 정해 강제하는 역할을 한다. 국가연구소는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국가전략기술을 개발하는 역할을 한다. 우주기술, 국방기술 등이 그 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은 대학과도 겹치고 산업체와도 겹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경향은 기술이 극한적으로 가고 있고, 무어의 법칙(칩 성능을 높이기 위해 더 작은 칩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는 것)이 끝나감에 따라 시스템 구성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AI 반도체 기술의 진화가 매우 빠르다. 따라서 대학을 중심으로 각 플랫폼 기술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팹리스와 시스템 업체를 연결해주는 시스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인재와 자금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시스템 업체와 연결시키는 마케팅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시스템을 ‘시스템 래더(사다리) 지원’이라 명명할 수 있고 이 분야를 전문서비스 분야로 간주할 수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구매조건부 지원사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반도체칩을 개발할 때 개발 후 구매를 해주는 시스템 업체 또한 지원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국내의 시스템 업체뿐만 아니라 국내에 진출한 외국 시스템 업체(예: 자동차 반도체업체 등)도 포함해 나아가서는 외국 시스템 업체를 발굴하는 데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셋째, 파운드리(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제조업체)를 쉽게 사용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시스템반도체 업체와 대학을 지원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반도체 제작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에서 대학의 칩 제작을 MPW(Multi-Project Wafer; 국내 반도체 전문설계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대학에 지원되는 사업)로 지원해온 소중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삼성전자가 국내 스타트업에 파운드리를 지원하는 예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며 건강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만드는 최선책이다. 넷째, 한국이 강한 메모리반도체를 시스템반도체 육성의 기반으로 한다. 빅데이터, AI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커짐과 동시에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빠르게 저장하고 끄집어낼 수 있는 보조 시스템 칩, 그리고 시스템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 특히 AI와 같이 빠른 연산을 큰 데이터에서 해야 하는 경우(예; 자율주행차가 필요한 교통 상황을 빠르게 인식하게 할 경우) 메모리구조를 이용한 AI 칩, 메모리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반도체 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이 메모리를 잘한다는 이점을 십분 활용해 메모리 중심적인 시스템반도체를 특화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무어의 법칙이 끝나감에 따라 반도체 업계는 지속적으로 IT의 성장엔진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로 보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열세를 면치 못했던 시스템반도체 분야 중 팹리스에서 오히려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새로운 시스템이 출현할 때 새로운 시스템반도체 기술을 가진 강자가 출현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발전을 위해 정부 프로젝트는 MPW와 같은 생태계를 지원하고 원천기술과 인재 확보를 위한 대학과의 연계, 그리고 응용시스템 업계와의 연결을 위한 서비스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