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서비스는 가치의 저장과 이전, 자본의 모집과 투자, 위험의 분산과 관리를 위해 명목화폐(fiat money, 표시된 단위로 통용되는 화폐)를 기반으로 제공되는 용역의 일체를 뜻한다. 이 정의를 면밀히 살펴보면, 명목화폐가 형이상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고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다면 금융서비스는 가상의 세계에서 모두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디지털경제(digital economy)로 대변되는 미래경제에서 금융산업의 경제적 역할은 더욱 확대되고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래전부터 금융서비스가 발전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언제나 경제주체 간 자금의 잉여와 부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주체가 자금의 잉여와 부족을 직접 해소하려면 거래상대방을 탐색하고 거래조건을 협상하기 위해 공간을 이동하고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또한 거래상대방을 잘못 선택할 경우 원금손실 위험을 부담해야 하며 거래상대방의 도덕적 해이를 감시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이 때문에 경제주체의 자금융통 거래를 중개하는 금융회사가 출현하게 됐고 다양한 형태로 금융서비스가 발전하게 됐다.
절차혁신에 중점 둔 핀테크혁신
그간 금융서비스는 지속적인 금융혁신(financial innovation)을 통해 발전하고 진화했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자산운용사, 신용카드사, 여신전문금융회사, 대부업체 등 다양한 금융회사가 출현하고 셀 수 없는 금융상품이 설계돼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금융서비스에도 다양한 형태의 비효율성이 존재한다. 금융회사가 경제주체의 거래비용을 효과적으로 절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중하기도 하며 경제주체 간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보다는 확대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은행은 고객의 신용위험이 조금만 커도 대출을 거절한다. 이 경우 고객은 자신의 신용위험에 비해 과도한 대출금리를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증권사는 고객이 주식투자로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책임이라는 이유로 방관하고, 보험사는 높은 보험료를 청구하면서 보험금을 지불하는 데는 매우 까다롭고 인색하다. 자산운용사는 엇비슷한 펀드를 수없이 설계하고 판매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펀드상품이 약 1만5천개에 이른다. 신용카드사는 다양한 보상과 혜택을 주겠다며 외상구매를 재촉하고, 여신전문금융회사나 대부업자는 대출을 쉽게 내주는 대신 과도한 이자를 요구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위에서 서술한 금융서비스의 공급방식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핀테크혁신(fintech innovation)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2015년 이전까지는 말이다. 핀테크혁신은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기존 금융서비스 공급방식의 비효율성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점에서 핀테크혁신이 갖는 경제적 의의는 매우 크다. 그동안의 금융혁신이 금융산업의 영역을 확장하는 상품혁신(product innovation)에 초점을 맞췄다면 절차혁신(process innovation)에 중점을 두고 있는 핀테크혁신은 금융산업의 지형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금융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평가받
는다.
핀테크혁신에 의한 금융서비스의 디지털화는 플랫폼화, 자동화, 탈중개화, 세분화, 개인맞춤화라는 개념으로 축약될 수 있으며 이들 개념만 살펴봐도 향후 금융산업이 어떻게 변할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금융서비스의 플랫폼화(platformication)는 핀테크기업에 의해 촉진되고 기존 금융회사에 의해 강화되는 추세다. 간편송금과 간편결제를 내세운 핀테크기업이나 2017년에 출범한 인터넷 전문은행이 상당수의 고객기반을 확보하고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선보이자 기존 금융회사들도 오프라인 지점을 줄이고 모바일 금융서비스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금융서비스의 자동화(automation)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금융서비스가 제공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나 고도의 인공지능(AI)이나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Robotic Process Automation) 기술이 활용될수록 사람의 역할이 전반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다만 현재까지는 금융서비스의 자동화는 매우 더뎌 보인다. 여전히 많은 부분의 금융서비스가 오프라인 지점 방문을 요구하고 있으며 여러 금융회사가 야심차게 도입한 챗봇(chat-bot)의 활용도는 높지 않은 실정이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응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느냐가 관건
금융서비스의 탈중개화(disintermediation)는 기존 금융회사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을 뜻한다. P2P(Peer to Peer)금융이 지급결제, 자금조달, 보험계약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출현한 이유도 기존의 금융회사 없이도 개인 간의 금융거래가 디지털 플랫폼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서비스의 탈중개화가 금융회사의 무용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서비스의 공급 주체가 금융회사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되고 그 절차가 간소화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금융서비스의 세분화(unbundling)는 기존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복합의 금융서비스가 여러 핀테크기업에 의해 세분화돼 공급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핀테크기업이 기존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금융서비스의 공급방식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한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금융서비스의 디지털화가 진전될수록 다양한 금융서비스가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공급되는 재결합(rebundling)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서비스의 개인맞춤화(personalization)는 오프라인과 달리 디지털 환경에서는 선택의 주도권이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에게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 중 하나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금융소비자의 주목과 손끝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금융서비스라도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서비스의 자동화로 서비스비용이 크게 절감될 수 있기 때문에 금융서비스의 개인맞춤화는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10년 안에 금융서비스의 디지털화로 금융서비스의 공급절차와 금융산업의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핀테크기업뿐만 아니라 기존 금융회사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빠른 금융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얼마나 전략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