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헬스케어 트렌드는 기술 발전에 따른 스마트화 확산으로 대체 의료기기 등장,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가 건강관리, 공급자-서비스-정보 간의 융합으로 요약된다. 의료기술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ICT를 접목한 다양한 종류의 건강관리서비스를 기대해볼 수 있었으나 현실은 매우 다르다. 국내에서 성공적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보기란 매우 어렵다. 2018년 해외에서 성공한 상위 100개의 글로벌 헬스케어 스타트업 중 국내 업체는 단 한 개도 없었으며, 63개(누적 투자액 기준 75%)가 한국에 진출할 경우 사업이 제한되거나 불법으로 규정된다.
‘의료행위’ 개념 불명확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제한적
한국에서 헬스케어 분야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강력한 규제가 적용되는 산업이다. 이로 인해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다양한 혁신 기술과 서비스의 등장이 좌절되는 산업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된 휴이노의 손목시계형 심전도 측정기는 이미 2015년에 개발을 완료했음에도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어 지난해 출시된 애플워치4에 그 영광을 뺏겼다.
국민의료비의 36.5%를 차지하고 노인 10명 중 9명이 앓고 있는 만성질환은 의료가 아닌 생활습관을 변화시키는 건강관리서비스를 통해 충분히 예방 및 관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법」상 ‘의료행위’ 개념이 불명확해 제공할 수 있는 건강관리서비스가 제한된다. 현재 비의료인 및 비의료기관이 합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건강관리서비스는 운동, 식이, 금연, 절주, 스트레스 관리 정도의 소극적 관리에 해당한다. 비의료기관의 건강관리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올해 5월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비의료기관이 제공 가능한 서비스로 이용자와 제공자 간 대면 서비스, 앱 등을 활용한 서비스, 앱의 자동화된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서비스, 만성질환관리 서비스를 소개했다.
건강관리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건강관리서비스가 직접적인 의료인 개입을 필요로 하는 치료를 제외한 건강 증진 및 질병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 모두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의돼야 한다. 건강관리서비스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상을 기준으로 해당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건강검진 결과에 따라 건강군, 건강주의군, 질환군으로 분류해 대상별로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대상별로 적절한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국민 전체 건강 증진 및 의료비 절감을 이룰 수 있다.
이미 정부는 다양한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들을 통해 국민 건강을 증진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질병 대비 과다의료 이용자를 대상으로 방문·전화 상담 등을 실시하는 의료급여사례관리사업은 상시적인 관리 서비스의 효과성을 증명했으며, 올해
7월부터 보건복지부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집중형 건강관리모형 실증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건강보험 청구 자료와 노인장기요양보험 자료, 건강검진 자료를 종합적으로 활용해 노인 모형의 경우 건강증진·기능유지군, 만성질환군, 퇴원하는 이행기 환자군, 요양병원 장기입원군, 입원치료 반복군 5가지 유형으로, 장애인 모형은 7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맞춤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실증사업을 초석으로 부작용 및 사회적 우려를 최소화하고 보완해 향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함이 바람직하다.
서비스 활성화에 범부처 간 협력 필수…싱가포르 사례 참고할 만
국민 의료비용을 절감하고 국민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는 범부처 간 협력이 요구되는데, 싱가포르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싱가포르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의 식습관 및 생활습관 변화에 따라 비감염성 질환이 전체 질환의 80%를 차지한다. 비감염성 질환은 식습관 및 생활습관 변화를 통해 예방할 수 있는데, 싱가포르는 기존의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공급 측면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했다. 싱가포르 건강증진원(HPB; Health Promotion Board)은 여러 부처와 협력해 국민들이 속해 있는 환경에 해당하는 식료품점과 공공 기반시설 및 건축 등의 생태계를 변화시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바꾸도록 유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HPB는 건강캠페인 기간 동안 HPB에서 인증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평소 슈퍼마켓에서 건강한 식품을 구매하는 경우 영수증에 있는 QR코드로 주민등록번호별로 등록돼 있는 개인 건강 포인트를 쌓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적립된 포인트는 교통 및 식품 바우처로 전환할 수 있다. 또한 HPB는 식품 제조사들과 협력해 국수의 잡곡 구성 비율을 높이는 등 더 건강한 종류의 식재료 개발에 연구 및 재원 지원을 하고 있다. HPB는 싱가포르 국가발전부(MND; Ministry of National Development)와 협력해 신축 건물에는 운동할 수 있는 공간과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확보하도록 하고, 부동산 소유자들에게는 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빌려주도록 설득하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에는 맞춤형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해 제공하고 업체와 비용을 함께 부담하고 있다.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는 국민 스스로 잘못된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바꿀 수 있도록 생태계를 변화시켜야 하며 이는 싱가포르 사례가 보여주듯이 범부처 협력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충분한 기술적 역량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해 건강관리서비스의 대상과 범위 등을 지정하고,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협력할 수 있는 관리방안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