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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문화’를 넘어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19년 12월호


최근 SNS와 유튜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콘텐츠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했다. 이러한 인프라 변화에 힘입어 BTS를 비롯한 K-팝, K-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의 세계적 위상이 크게 높아지면서 콘텐츠산업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류가 보편화하면서 콘텐츠산업이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로 콘텐츠를 ‘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 1990년대 무렵부터 중국과 일본 등에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 그룹들이 진출했지만, 이때만 해도 ‘한국 문화’가 해외에 나갔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는 수준이었다.
콘텐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면서 한류에 ‘산업’이라는 존재감이 부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 IT산업의 총아인 게임이 중국시장의 성장과 함께 큰 폭의 수출 증가세를 보이면서 이 분야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콘텐츠산업은 크게 출판, 만화, 음악,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지식정보, 캐릭터·라이선스 등 10개 분야로 분류된다. 세계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 약 2조3,940억달러로 세계 반도체시장(약 4,462억달러)의 5배 수준이다. 이 가운데 지식정보(27.8%), 광고(21.4%) 등 가장 비중이 큰 분야는 여전히 영미 선진국이 주도하는 철옹성이다. 한국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는 게임, 음악, 영화 등은 세계 콘텐츠시장의 약 10% 내외다.

한류 성장과 함께 수출 비약적 증가…2018년 13대 수출 품목인 가전 넘어서
콘텐츠산업은 시장 규모는 크지만 전통적으로 내수 중심 산업으로 평가돼 성장성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한류의 성장과 함께 수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수출성장 산업으로 변모했다. 2018년 기준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95억6천만달러로 2014년 이후 연평균 16%씩 증가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이 연 1.4%씩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수출액 규모로는 2018년 우리나라 총수출액인 6,049억달러 가운데 약 1.6% 수준이다. 비중으로는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우리나라 13대 수출 주력 품목인 가전 수출액(72억달러)을 처음으로 넘어섰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13번째로 수출 비중이 큰 분야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콘텐츠산업은 주변 산업에 미치는 효과, 즉 긍정적 외부효과가 크다는 점 때문에 그 가치를 더 인정받는다. 콘텐츠산업을 비롯한 문화산업은 개별 소비자들이 상품 소비에서 얻는 즐거움과 효용 외에도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 관광 등으로 연계되는 지역경제 파급효과, 국가 브랜드 가치 제고 등과 같은 외부 편익이 강하게 발생하는 성향이 있다. 특히 한류 콘텐츠의 경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개별 비용 없이 ‘한류’ 이미지를 차용할 수 있고 그 편익도 동시에 누릴 수 있어 공공재와 같은 역할도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독특하게도 관련 소비재 수출 견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 간 무역량은 정치적 관계나 경제 규모, 물리적 거리, 교역정책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문화적 근접성(cultural proximity)’이 높은 경우, 즉 국가 간 문화가 서로 비슷한 측면이 많은 경우 서로의 무역량을 늘린다는 것이 실증 분석되고 있다. 언어, 종교, 민족 등과 같은 문화요인들을 공유하는 경우 소비자의 기호나 취향이 중요한 재화들의 교역량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및 SNS 등이 발달하면서 세계적으로 동일한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일이 증가했다. 이런 경우 동일한 문화상품을 공유함에 따라 문화적 친밀감도 높아지는데, 그 결과 해당 문화상품을 판매하는 국가의 소비재에 대한 선호도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콘텐츠와 소비재 수출 데이터로 실증분석을 한 결과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의 우리나라 콘텐츠 수출액과 소비재 수출액으로 구성된 패널 데이터(여러 개체를 복수의 시간에 걸쳐 추적해 얻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문화 콘텐츠 수출이 100달러 증가할 때 화장품, 의류, 가공식품, 가전 및 휴대폰 등 소비재 수출 248달러 증가를 견인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류 수출이 늘어날수록 한류 수출 증가액의 약 2.5배만큼 관련 소비재 수출이 늘어난다는 결과다. 한류 문화 콘텐츠 수출이 소비재 수출을 견인하는 무역창출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게 검증된 것이다.

게임, 영화 등 특정 분야 편향성은 과제…낮은 인건비,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도 필요
하지만 장점만 있는 산업은 없듯 콘텐츠산업에도 문제점들이 많다. 산업의 특성상 영세한 기업들이 많고 수익 변동성도 높아 기업의 안정성도 매우 떨어진다. 제조업과 같은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노동 투입 비중을 줄이기도 어려워 늘 비용압박 성향에 시달린다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이 산업이 외부에 미치는 효과, 즉 시장가격을 넘어서는 편익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에 정부나 기금, 공동체의 외부 지원이 정당화돼왔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정부가 문화산업을 지원하는 근거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 방식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을 찾아가고 있다. 과거 우리 정부가 활용해온 제조업 육성 방식과는 다른 형태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히 합의된 바가 없다. 다양한 정책 실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수출액 가운데 절반 이상이 게임에서 발생하고 펀드 투자금의 상당액이 영화로만 집중되는 등 특정 분야에 대한 편향성을 줄여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K-팝, 드라마, 영화 등과 같은 분야에서는 낮은 인건비, 열악한 노동 환경 등에 대한 개선도 계속 필요하다. 열정과 꿈으로만 이어지던 분야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풀어야 할 숙제들도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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