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국제 도서전(1~2월)을 시작으로 런던 국제 도서전(3월), 파리 국제 도서전(3월),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4월),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 도서전(9월) 등 다양한 국제 도서전이 매해 세계 곳곳에서 개최된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서전을 뽑으라면 매년 10월 독일에서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Frankfurt Book Fair, 이하 도서전)이 첫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장르 웹툰, 원소스멀티유즈 확장 가능성 높아
올해 71회째를 맞이한 도서전에는 전 세계 104개 국가 7,450개 출판사와 출판관계자 3만여명을 비롯해 30만명이 넘는 일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책을 중심으로 마련된 4천개의 행사와 각종 토론회·강연회는 독자와 저자의 만남을 주선하고 각종 지식을 나누며, 저작권·라이선스 등의 출판 비즈니스 계약도 이끌어낸다.
스웨덴에서 열린 2019 예테보리 국제 도서전에 참석하고 독일을 찾은 주재은 대한출판문화협회 팀장은 “학술 세미나와 북토크 중심으로 진행되는 예테보리 국제 도서전과 달리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출판 비즈니스를 위한 도서 박람회의 성격이 강하다”며 “출판 거래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곳곳에 자리 잡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최신 출판 트렌드를 파악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최근 도서전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급격한 디지털화와 다양한 매체의 출현으로 변화를 맞고 있다. 황신 한국콘텐츠진흥원 대중문화본부 만화스토리산업팀장은 “전통적으로 유럽은 출판시장이 여전히 강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더디게 성장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며 “해외 바이어들도 점차 출판·인쇄물에서 새로운 콘텐츠 쪽으로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도서전에 미디어 아트나 디지털 관련 쪽으로 참가자들을 모집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래서일까? 한국콘텐츠진흥원 공동부스에서 상담과 홍보를 진행하고 있는 만화, 스토리 부문 기업들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가상현실(VR) 만화 플랫폼을 서비스하는 스피어툰(Sphere Toon)은 VR 웹툰 체험 코너를 운영해 현장에서 관람객들이 직접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게임 쪽에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VR 기술이 웹툰과 결합됐다는 것을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웹툰은 이제 원래의 장르를 넘어 영화, 드라마, 게임 등과 어우러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로서 확장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만화 콘텐츠 전문기업 재담미디어의 노은정 이사는 “웹툰은 기존에는 없던 장르를 한국이 처음 만든 것이어서 다른 곳에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이 만화강국이지만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장르인 웹툰은 사실상 한국이 최고”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다만 이러한 대중의 관심과 위치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앞으로가 더욱 중요한데, 재담미디어의 장윤민 PD는 “웹툰 홍보와 작품 홍보가 동시에 이뤄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이런 전시회에 한국 웹툰 전용관을 만들어 알릴 필요가 있다”며 홍보와 선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디지털 플랫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콘텐츠 소비방식과 서비스 모델도 급변하고 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콘텐츠를 소비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종이책도 이용 환경에 맞게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디지털 출판을 가능하게 만드는 셀프출판이 대표적. 셀프출판의 선두주자로서 ‘킨들 다이렉트 퍼블리싱(누구나 자신이 쓴 전자책을 무료로 업로드하고, 출판하고, 판매까지 할 수 있는 서비스)’을 제공하는 아마존 부스에는 전자책 리더기 ‘킨들’과 해당 서비스로 발간된 실물 책들을 직접 보기 위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량 출판이 아닌 개인 작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요에 맞게 출판하는 유럽의 유명 셀프출판 업체 BoD(Books on Demand)의 부스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셀프출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출판은 더 이상 대형 출판사들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 있는 누구나 작가가 되고 출판인이 될 수 있는 구조로 바뀌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셀프출판 관심 급증…젊고 새로워지기 위한 다양한 시도 진행 중
출판 트렌드에 발맞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도 전자출판관 부스를 마련했는데 북이오, 아이포트폴리오, 조아라, 에스프레소북, JSC 5개사가 참여해 증강현실(AR) 기반의 융합형 출판 콘텐츠와 셀프출판 홍보를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2년 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에스프레소북은 책 집필을 어려워하는 고객들의 고민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책을 만들 수 있는 셀프출판앱 ‘하루북’을 출시했는데 반응이 뜨겁다. “인도네시아 교육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해외 반응을 전해준 최소혜 편집자는 “현지 인쇄소 활용과 같은 방법을 이용해 가격을 최대한 낮춰 서비스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며 해외진출 의지를 보였다.
셀프출판과 함께 오디오북을 위시한 오디오 콘텐츠 역시 새로운 독자를 계속 끌어모으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도서전에 마련된 오디오(Frankfurt Audio) 섹션에서는 오디오를 통한 콘텐츠 제작 및 보급과 관련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뤘으며 전문가들이 참여한 오디오서밋도 각광을 받았다. 오디오 콘텐츠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팟캐스트를 관람객들이 경험해볼 수 있도록 팟캐스트 스튜디오를 재현하기도 했다. 이 밖에 ‘미래 문화 축제’라는 부제를 달고 2016년부터 시작된 The ARTS+ 섹션에서는 책을 넘어 영화, TV, 게임,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등의 분야에서 예술과 디지털 기술 사이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시너지를 찾기 위한 논의도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책들이 다른 영역들과 어떻게 협력하며 진화할지, 더 젊고 새로워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를 깊이 고민하는 뜨거운 현장이었다.
올해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책을 뛰어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진정한 축제의 장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