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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끝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로 남길”
고경태 ㈜22세기미디어 대표, 전 『한겨레21』 편집장 2020년 02월호


“이건 신문이 아니다.” 『한겨레』 토요판 준비를 맡았던 고경태 당시 팀장이 발간 전 들었던 평이다. 신문에서 스트레이트 비중을 줄이고 스토리텔링 위주로 내용을 구성한다는 것은 당시로선 낯선 기획이었다. 하지만 발간 후 호평이 잇달았고 너도나도 비슷한 형태의 ‘토요판’을 내놨다. 『한겨레21』 막내로 들어온 후 편집장이 됐을 때도, 생활문화 매거진을 표방한 섹션 ‘esc’를 만들 때도 그는 늘 어렵지만 새로운 길을 갔다. 그리고 2017년 한겨레 자회사 ㈜22세기미디어의 대표를 맡은 그는 역시나 국내 ‘최초’ 블록체인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코리아』를 창간했다. 어느덧 기자, 편집자로 경력 30년을 맞은 그에게 그토록 추구해온 새로움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매체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물었다.

30대 이른 나이에 창간부터 몸담았던 『한겨레 21』의 편집장을 맡았다.
2005년 봄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떨리고 부담됐다. 내가 자존감이 높은 편이 아니어서 늘 스스로 의심하고 엄살 부린다. 그러나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게 훨씬 더 오래간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내가 절대 편집장을 해서는 안 될 사람은 아님을 확인받고 하겠다고 했다. 처음엔 잘해보려 눈에 핏발을 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고 유치하다.

30년간 꾸준히 지켜온 신념이 있다면.
‘약속은 지키자’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한번 뱉은 말은 지키는 게 도의다. 말만 번지르르한 것을 제일 싫어한다. 나도 그런 적이 없는지 돌아보려고 노력한다. 인생에서 한 번 만나고 말 것 같은 사람을 나중에 어디선가 또 만나는 경우가 많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경우가 빈번해진다. 약속을 지키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본인을 위해서도 실속 있는 일이다. 세상의 관계란 내가 남에게 한 만큼 나에게 돌아온다.

늘 새로운 이슈를 먼저 다뤘는데, 어렵진 않았는지? 
종종 다른 의견에 부딪히긴 했지만 지칠 만큼 힘들진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동물권 이슈가 시작 단계에 있을 때 토요판에서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새로운 주제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소화해낼 기자가 있느냐?’다.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제돌이’ 기사를 포함한 동물권 기사는 환경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후배 남종영을 믿고 시작했다. 동물권 기사를 쓸 때마다 “또 그거냐” 하는 지적을 듣기도 했는데 그런 비판이 있었기에 더 치열하게 ‘과연 이런 보도를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다.

어느덧 대표님 입사 당시 태어난 친구들이 후배로 들어오겠다. 
『한겨레』 창간(1988년) 때 태어난 친구들이 입사한 지는 꽤 됐고, 이젠 『한겨레21』 창간(1994년) 당시 태어난 친구들이 입사한다. 그들 중 일부는 부모가 내 또래다. 본 것, 들은 것, 체험한 것이 너무 다른 세대다. 언어, 문화, 역사가 달라 사고의 공통 기반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가 말한 걸 그들이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전혀 아닌 경우가 많더라. 그 틈을 줄이기 위해 서로의 노력이, 특히 윗세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콘텐츠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모든 뉴스는 본질적으로 사람 이야기다. 어떤 사건이든 인간의 의지와 욕망으로부터 비롯한다. 사람을 탐구하는 것은 결국 개별 사건과 역사를 탐구하는 일이다. 인간의 내면까지 파헤친, 잘 짜인 사람 뉴스야말로 재미있는 명품 콘텐츠가 아닐까. 사진 전문가는 아니지만, 인물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는 눈이다. 눈이 그 사람의 표정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눈을 볼 수 없이 멀리서 찍은 사진은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한다. 나는 인물기사가 사람 사진을 찍을 때의 눈이라고 본다.

『코인데스크코리아』를 창간했다. 왜 ‘블록체인’인가?
출판국장 시절 신매체팀을 만들어 새로운 매체를 모색했다. 그러다 블록체인 세계를 만났고, 『코인데스크코리아』를 창간했다. 블록체인은 한마디로 사회적 합의의 기술이다. 어떻게 다중이 서로 신뢰하고 사회적 제도를 운용하는지를 암호화 기술로 구현한 시스템이다. 이걸 이용한 최초의 가상화폐가 비트코인이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블록체인 생태계에는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참여해 개발 작업이나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구멍이 많다고들 하는데 그래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세계다. 가능성이 많은 분야라고 판단했다.

앞으로 미디어와 언론은 어떻게 바뀔까?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로 종이가 더 이상의 경쟁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은 상식선의 예측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해도 정보와 콘텐츠의 중요성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고 인공지능(AI)의 힘이 세지는 세상에서는 어떻게 정보와 콘텐츠를 최적의 유통기술로 구현해 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30년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삽질? 어찌 보면 다 삽질이었다. 30년간 덜 의미 없는 삽질을 했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싶다. 누구나 살면서 열망을 품고 실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거다. 나도 그랬지만, 결국은 삽질이 아니었을까. ‘열망과 안간힘’이라는 말은 좀 있어 보이고 사실은 애면글면, 안달복달이 더 적합한 말일 수도 있다. 그래서 무엇이 남았나. 편집자, 편집장으로서의 경험을 정리한 「굿바이, 편집장」 등 6권의 책이 남았고 내가 만든 매체가 남았다. 또 뭐가 남았을까. 한편으론 허무함도 남았다.

언론인으로서 목표가 궁금하다.
그동안 언론인으로서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책이 나의 대표적인 이야기가 된 것 같다. 그중에서 베트남 전쟁을 다룬 두 권의 책은 해외 번역서나 개정판으로 나올 예정이다. 끝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로 남는 게 목표라면 목표다. 『나라경제』 또한 많은 변화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꿋꿋하게 살아남길 응원한다.
김세영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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